검찰이 자신이 담당한 고소 사건의 여성 고소인과 성관계를 맺은 경찰관을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해 향후 법정에서 뜨거운 논란이 예상된다. 지금껏 공무원이 제3자를 통해 성상납을 받은 것을 뇌물 수수로 인정한 판례는 있었지만 검찰이 민원 당사자와의 성관계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9월24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염웅철 부장검사)는 경찰서에 고소를 하러온 여성을 성폭행한 뒤 지속적으로 성상납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서울 S경찰서 소속 경찰관 김아무개씨(31)를 구속 기소했다. 애초 이 사건은 고소인인 이 여성이 고소사건 담당 경찰관인 김씨를 성폭행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어떻게 경찰관 김씨에게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된 것일까. 피해여성이 애초 뇌물 의도로 성상납을 했다면 성폭행으로 보기 어렵고, 성폭행을 당한 것이라면 자발적인 뇌물상납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하다.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경찰관 김씨가 피해여성 원아무개씨(32)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3월이었다. 단란주점 도우미로 일하던 원씨는 자신의 옛 동거남을 사기죄로 고소하기 위해 서울 S경찰서를 찾았다. 당시 동거남에게 많은 돈을 빌려주었는데 어느날 동거남이 잠적했기 때문이었다. 동거남은 호스트바에 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원씨가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깊은 관계였다고 한다.
경찰관 김씨는 이 사건을 맡으면서 원씨와 친해지게 됐는데 이후 과정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3월 말께 자신이 담당한 사건 고소인 원씨를 경찰서 부근의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을 했다고 한다. 또 김씨가 그뒤에도 4월 한 달간 8회에 걸쳐 경찰서 부근의 모텔에서 원씨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 검찰은 최초 성폭행 이후에는 두 사람이 합의한 가운데 성관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원씨는 경찰관 김씨가 ‘사건을 잘 해결해 주겠다’며 성관계를 요구했기 때문에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5월부터 두 사람은 따로 만남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가 그 뒤에도 아무런 사건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원씨는 지난 6월 그를 강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김씨는 지난 9월10일께 검찰에 출두해 성폭행 혐의 등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김씨가 조사 도중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나갔다 그대로 도주를 했다고 한다. 이후 김씨는 원씨에게 찾아가 합의를 했고 친고죄인 강간 사건은 결국 무혐의 처리됐다.
‘급한 불’을 껐다고 여긴 김씨는 그후 다시 검찰에 출두했다. 그러나 김씨가 생각한 것처럼 모든 것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검찰은 김씨의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해 그를 구속했다. 최초의 성폭행 부분은 원씨의 고소 취하로 혐의가 없어졌지만 그 뒤 김씨가 원씨와 합의 하에 가진 여러 차례의 성관계는 사건 해결을 위한 성상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검찰이 너무 무리하게 자신을 엮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강간 혐의는 고소인이 고소를 취하했고 원만하게 마무리가 되었는데 검찰이 왜 무리하게 사건을 엮으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씨가 조사 도중 도주했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과 김씨의 입장은 서로 다르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가 조사를 받던 중 자신이 곤란한 처지에 빠지자 원씨를 만나 합의를 보면 일이 잘 해결될 것으로 보고 도주를 했다는 것. 김씨가 현직 경찰이기 때문에 특별히 감시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반면 김씨는 조사가 끝난 뒤 검찰청에서 나왔을 뿐인데 도주로 모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성관계를 가진 것에 대해서도 검찰과 김씨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최초 성관계 이후 원씨를 일종의 애인으로 사귀었고 관계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사람의 통화내역이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원씨와 사귄 적도 없고 성관계를 가진 적은 더더욱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고소인 원씨의 진술이 일관성을 띤 반면 김씨의 주장은 오락가락한다고 판단해 원씨의 말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문제는 검찰의 기소 내용처럼 김씨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건을 담당한 검찰 관계자는 “당사자의 성상납도 충분히 뇌물이 될 수 있다. 가까운 일본의 판례도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 원씨가 김씨와 성관계를 가진 목적이 사건 해결을 도와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뇌물수수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원씨의 뇌물상납 혐의는 경찰인 김씨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상참작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씨의 변호인측은 이에 대해 법률적 근거가 없는 해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설사 두 사람이 성관계를 가졌다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뇌물수수는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 법원이 제3자인 여자를 이용한 성상납을 뇌물로 판단한 적은 있어도 당사자끼리 직접 맺은 성관계에 대해 뇌물로 본 판례는 지금껏 없었다는 것이다.
또 김씨측은 뇌물수수죄를 적용하려면 원씨가 자발적으로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봐야 하는데 이번 사건에는 정황상 일관성이 없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처음에 강간 혐의로 김씨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것은 강제적인 성관계를 가졌음을 전제로 한 것인데 이런 성관계를 어떻게 뇌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애매모호한 뇌물수수 공방은 이제 법원으로 무대를 옮겼다. 법원이 두 사람의 성관계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