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건은 지난 2000년 사기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이철희·장영자 부부 사건과 지난 96년 참여연대가 검찰에 고발해, 검찰이 지난해 12월에서야 관련자를 불구속 기소한 삼성 에버랜드 지분 변칙 상속 사건.
이 부장판사는 먼저 오후 3시에 423호 법정에서 열린 장씨 부부 사건 속행 공판에서 피고인의 느닷없는 돌출 행동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이날 피고인으로 출석한 장씨는 법정을 들어설 때부터 재판을 참관하러 온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파란’을 예고했다.
장씨는 지난 82년 무려 6천억원대에 육박하는 희대의 어음사기 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지난 92년 가석방된 뒤, 94년에도 차용 사기로 또 다시 수감되는 등 전력이 ‘화려한’ 큰손. 이날도 장씨는 ‘명성답게’ 검사나 재판장의 신문 도중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특유의 ‘속사포’ 언변을 과시했다.
특히 공판 검사가 증인 신문 도중, 사위인 탤런트 김주승씨의 어음과 관련한 얘기를 꺼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검사가 말로만 떠들고 있다”며 검사를 몰아붙였다. 뒤이어 장씨는 증인에게 신문할 질문까지 준비해와 피고인 신분으로는 이례적으로 증인을 신문했으며, 변호사에게 미리 통보하지 않은 증거 자료를 재판장에게 직접 제출해 재판부는 물론, 자신의 두 변호사를 머쓱하게 했다.
재판이 한 시간여 넘게 진행되자 장씨는 “음양식사법(하루에 아침, 저녁 2식을 하며, 저녁 식사 두 시간여 전에 가볍게 물을 마시는 식사법)을 실천하고 있는데 지금 물 마실 시간이 됐다”며 재판장에게 정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재판장이 이를 허락하자 법원 직원이 매점으로 달려가 생수를 사들고 오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이 사이 장씨가 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의 친척으로 알려진 큰언니와 동생 등을 이 부장판사 및 배석 판사들에게 일일이 소개하자 그때까지 묵묵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배석 판사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재판이 속개된 후에도 장씨의 ‘입담’이 줄기차게 이어지자 이 부장판사는 “내가 원래 재판을 딱딱하게 진행하는 스타일은 아니나 이 자리에 나온 참관인들이 이제는 내가 재판을 잘 진행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며 장씨에게 자제를 요구했다.
재판장의 자제 요청에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장씨는 재판장이 증인을 신문하던 도중, 증인이 자신과 연관 없는 얘기를 꺼냈다고 판단하자 곧바로 증인과 설전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증인이 눈물을 흘리며 재판장을 떠났다.
뒤이어 열린 에버랜드 사건 공판에서도 이 부장판사는 재판부가 검찰 요청을 받아들여 에버랜드 주식의 가치를 재평가를 하기로 결정한 부분에 대해 에버랜드 변호인들이 거듭 반대 의사를 보이자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양측의 의견을 조율한 끝에 기존 입장을 고수하기로 한 이 부장판사는 “주식 평가를 담당할 대학 교수들과의 접촉이 쉽지 않았다. 대학 교수들과 전화 한 통화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은 처음 알았다”며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