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용산경찰서는 P씨(71)를 성폭행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P씨는 2000년부터 ‘합법적’인 방법으로 조선족 출신 A양(입양 당시 12세)을 입양해 자신의 ‘성노리개’로 삼았고 A양이 집을 나간 뒤 또 다른 조선족 소녀를 입양해 성폭행을 일삼은 혐의를 받고 있다.
P씨가 조선족 소녀를 상대로 이런 ‘인면수심’의 행각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돈만 주면 얼마든지 어린 아이들을 ‘공급’해 주는 입양전문 브로커가 존재했기 때문. 경찰은 상당수의 전문 브로커들이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인신매매를 주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P씨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상태. 그는 오히려 “배은망덕”이라며 A양을 비난하고 있어 향후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과연 P씨와 A양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경찰 수사와 A양의 고소장 내용을 토대로 사건의 진상을 들여다봤다.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P씨는 지난 99년 입양할 소녀를 물색하기 위해 중국을 드나들었다. 그러던 중 아는 사람을 통해 A양을 소개받게 된다.
당시 남편과 사별한 A양의 어머니 L씨(48)는 돈을 벌기 위해 딸을 중국에 두고 먼저 한국으로 들어온 상황. L씨는 자신의 딸을 P씨에게 입양 보내면 모녀가 한국에서 같이 생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적극적으로 입양에 찬성했다.
실제로 L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가 한국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해야 딸을 데려올 수 있는데 그러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었다”면서 “딸을 P씨에게 입양시키면 바로 함께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국내법상 외국인을 입양하기가 어렵게 되자 P씨는 편법을 동원한다. 2000년 9월께 ‘입양전문브로커’ Y씨(50)에게 2천만원을 주고 자신이 중국에서 A양을 낳은 것처럼 산부인과 서류를 조작해 A양을 입양했던 것. A양은 엄마와 함께 한국에서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 뿐, 이것이 악몽의 서막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P씨는 A양을 한국에 데리고 오자마자 자신의 지하방에서 성폭행을 시작했다. 완강히 거부하는 A양을 완력으로 누르고 ‘성노리개’로 삼았던 것.
P씨는 A양에게 “일주일에 2~3차례 성관계를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로 세뇌와 협박을 번갈아가며 자신의 마음대로 어린 A양을 조종했다. 그는 나이가 많았지만 성관계를 맺을 때 항상 발기부전 치료제를 직접 주사해 A양을 유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에 불과한 A양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한국말이 서툴러 동네주민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릴 방도도 없었다. 어머니 L씨 또한 나이트클럽에서 주방일을 하느라 딸을 자주 찾아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자신의 딸이 이런 끔찍한 일을 당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뿐만 아니라 L씨가 딸을 입양시킬 때 P씨에게 써줬던 소위 ‘양육계약서’도 족쇄로 작용했다. 당시 P씨는 L씨에게 “죽으라 하면 죽는 시늉도 해야 하고… 살인죄가 아닌 이상 기타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형사 거론까지 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내용의 각서를 작성하게 했다. P씨가 처음부터 다른 목적으로 A양을 입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P씨의 이런 엽색(獵色)은 2002년 11월 한국인 남편이 병사하면서 오갈 데가 없게 된 L씨가 P씨의 집에 들어와 A양과 함께 살게 되면서 그치게 됐다.
그렇게 5개월여가 흐른 2003년 5월, L씨는 딸 A양과 함께 P씨의 집에서 나오고 만다. A양이 나이가 들었는데도 P씨가 호적에만 올려놓고 학교에 보내지도 않은 것에 불만을 갖고 있던 터에 ‘욕구불만’ 상태인 P씨와 갈등이 자주 빚어졌기 때문이었다.
이후 L씨가 딸 A양을 직업교육센터에 보내면서 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드러났다. A양이 수녀와의 상담시간을 통해 끔찍했던 지난 일들을 털어놓았던 것. 자신의 기구한 사연이 세상에 알려진 뒤 A양은 청소년 성보호 상담을 하던 강지원 변호사의 도움으로 지난해 12월 P씨를 서부지검에 고소하게 됐다.
사건 담당 경찰관은 “A양이 어린 나이긴 하지만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것 같다. 한번은 A양이 P씨에게 ‘내가 임신하게 되면 더 이상 괴롭히지 마세요’라며 메모(각서)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에 P씨는 ‘임신하면 (성관계를) 않는다. P’라고 메모를 작성해 A양에게 건넸다.
다행히 A양이 이 메모를 가지고 있다가 수사가 시작되면서 경찰에 제출해 유력한 증거로 채택됐다. 자필로 써내려간 A양의 진술서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필체로 ‘끔찍한 앙몽(악몽)’ ‘구박’ ‘성폭행’이라는 단어들이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P씨는 자신의 혐의 일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오히려 P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가 그 아이에게 들인 돈이 얼마인데, 이제까지 키워준 날 배신했다. L씨도 처음 각서에서 계약한 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P씨는 A양의 입양을 위해 브로커에게 준 돈 2천만원으로 A양의 모든 것을 소유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경찰은 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L씨와 A양이 P씨의 집을 나간 후 P씨가 또 다시 브로커를 통해 아홉 살 난 조선족 여자아이를 입양해 1년 정도 함께 산 정황이 드러난 점이다. 경찰이 밝힌 대로라면 A양이 떠난 후 P씨는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았던 셈이다. 한 경찰관은 “P씨가 이 여자아이와 1년 정도 함께 살다가 자신의 말을 잘 안 들었던지 ‘맘에 안 든다’며 소개시켜 준 브로커에게 다시 넘겼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천인공로할 P씨의 행각은 드러났지만 정작 A양의 생모인 L씨가 A양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다. 엄연히 법적으로는 아직 P씨가 A양의 아버지이고 L씨와 A양은 남남이기 때문이다.
한 경찰관은 “L씨가 A양을 P씨에게 입양 보내면서 A양의 양육권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L씨가 다시 자신의 딸을 데리고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전했다. L씨로서는 P씨가 A양에 대한 친권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P씨의 허락이 있어야 A양을 키울 수 있는 기막힌 현실에 맞딱뜨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