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주변에 재력가로 알려진 A변호사(37)가 지난달 13일 출근한다며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두절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애를 태우던 가족들은 A변호사의 실종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게 됩니다.
경찰은 “직장과 가정에서 특별히 가출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가족의 말에 따라 A변호사가 범죄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에 나섰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지역 변호사 업계도 ‘A변호사가 혹시 납치당한 게 아니냐’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지난해 12월 수원의 한 변호사가 의뢰인을 가장한 일당에 의해 납치당했던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그러나 A변호사가 집을 나간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는 한 통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주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A변호사가 사업과 주식투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이 포착됐습니다. 경찰은 이때부터 ‘단순 가출’ 쪽에 무게를 두고 A변호사의 행적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휴대폰 통신내역 조회 결과 A변호사가 실종 닷새째인 18일 절친한 친구인 B변호사와 통화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B변호사는 “A변호사가 ‘개인적으로 정리할 것도 있고 머리가 복잡해 바람이나 쐬러 나왔다’고 하더라”면서 “그간 일이 잘 안된 것 같다. 그 친구, 성격도 낙천적이지 않아 작은 일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곧 돌아올 거라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A변호사가 무사히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사실상 ‘사건’에서 손을 뗀 상태입니다. 도대체 A변호사는 왜 가족에게조차 아무 말도 없이 가출했던 걸까요.
경찰에 따르면 A변호사는 사법연수원생 시절부터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주식투자에 손을 대는 등 적극적으로 재테크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업은 여의치 않았고, 변호사 개업을 한 뒤에도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해 빚에 허덕였다는 겁니다. 결국 과도한 빚과 피로한 심신이 A변호사를 일탈케 한 원인이었던 거죠.
기자가 만난 한 사법연수원생(25)은 “요즘 연수원 수료 후 바로 개업한 선배 변호사들 보면 다 죽는다는 소리뿐이다. 하지만 연수원생들 사이에서 ‘그래도 변호사가 굶어 죽기야 하겠나’라는 인식이 아직도 남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연수생에 따르면 연수원 2년 동안 5급 공무원에 준하는 급여를 받고 있지만 소위 ‘품위유지’ 차원에서 쓰는 돈이 더 많은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합니다. 사법연수원생은 시중은행에서 최고 1억원짜리 마이너스 통장도 만들 수 있어 적지 않은 연수원생이 이 마이너스 통장에 의지하는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즉 사법고시 합격과 동시에 ‘마이너스’로 법조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겁니다. 어쩌면 A변호사의 빚 문제도 연수원생 시절의 마이너스 대출이 그 뿌리가 된 것인지도 모르죠.
아무튼 해프닝으로 끝난 ‘변호사 가출사건’은 한때 우리 사회의 귀족으로 통했던 변호사들의 ‘피 말리는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