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인면수심’의 어머니와 아들은 또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모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주변 평판이 좋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들은 신학대학을 나와 사회복지사로 활동할 정도로 신앙심이 깊은 청년이었다. 사건을 맡은 인천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범인들을 붙잡아 놓고도 ‘정말 이들이 아버지이자 남편을 죽인 사람들일까’하고 의심이 들 정도였다”며 허탈해 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들 모자가 인륜을 저버리고 잔인한 살인극을 벌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경찰 수사 결과 이번 사건의 피의자 심아무개씨(여·51)는 평소 남편 권아무개씨(55)의 의처증과 폭력으로 고통을 겪어오다 이혼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이 같은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씨가 구체적으로 범행을 결심한 시기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집들이를 하던 지난해 11월28일. 이날 심씨의 초등학교 동창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하던 중 남편 권씨가 동창생들이 보는 가운데 심씨에게 심한 욕설과 모욕적인 언사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심씨는 “남편과 함께 산 30여 년 동안 많은 폭언과 폭행을 당했지만 아는 사람들 앞에서 그러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심씨에 따르면 남편 권씨는 가족들이 말대꾸를 하거나 반항하면 칼을 집어던지는 것도 예사로 할 정도로 가족들에게 심한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심씨는 경찰조사에서 “남편에게 이혼 얘기를 꺼내면 ‘당신하고 친정식구들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남편이 정말 그럴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결국 심씨는 이혼도 못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남편과 함께 살 수도 없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떠올리게 됐다.
범행을 결심한 심씨는 아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놨고 아들 권씨는 심씨에게 “차라리 내가 죽이겠다”고 나섰다. 아들 권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려서부터 아버지 때문에 온 가족이 고통 받고 특히 어머니 심씨가 무척 괴로워하는 것을 잘 알기에 어머니 대신 내가 범행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어머니의 고통 외에도 아들 권씨가 아버지를 살해하려 한 이유는 또 있었다. 아들 권씨는 자신의 진로문제와 재산문제로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착실했던 권씨는 아버지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왔으나 그가 기대와 달리 신학대학을 진학해 사회복지사의 길을 택하면서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는 급격히 벌어졌다.
또한 지난해 결혼까지 한 아들 권씨가 생계가 어려워지자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는 과정에서도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방앗간을 운영하며 10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아버지 권씨는 “사회복지사 그만두고 너도 방앗간을 운영해보라”며 아들에게 방앗간 하나를 얻어줬다. 하지만 아버지 권씨가 얻어준 것은 강원도 횡성의 첩첩산중에 위치한 방앗간이었다. 게다가 이 방앗간은 가건물인 데다 천막으로 지어져 허름했고 인근 마을도 농사를 짓는 몇 가구가 전부였다.
아들 권씨는 가족들이 있는 김포에서 방앗간을 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버지 권씨는 냉정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고 대신 아들을 아무 연고도 없는 산골마을에 내보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가 쌓이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만 키워온 아들 권씨는 어머니 심씨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였다.
살해계획을 세운 두 모자는 아버지 권씨에게 “자동차 명의변경을 위해 아버지가 횡성으로 와야 한다”며 아들 권씨의 집으로 유인했다. 사업상 아버지 명의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던 아들 권씨가 꾀를 냈던 것이다. 아버지 권씨는 아들의 말에 따라 지난해 12월11일 부인 심씨와 함께 아들의 집으로 찾아갔다. 아들 권씨는 자신의 부인에게 미리 “친정에 가서 좀 쉬어라”며 범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8시께 아들 권씨는 아버지에게 “안마를 해드리겠다”며 안마를 하는 척하면서 흉기로 아버지의 머리를 내리쳐 숨지게 했다. 이 과정에서 저항하던 권씨가 몸을 피해 거실로 도망가자 부인 심씨가 남편의 팔을 붙들어매고 뒤따라 나온 아들 권씨가 흉기를 휘두르기도 했다.
‘상황’이 종료된 뒤 이들 모자는 권씨의 사체를 권씨가 타고 온 승용차에 싣고 인적이 드문 인천 서구의 한 농수로 다리 밑에 유기했다. 이들은 또 강도로 위장하기 위해 숨진 권씨를 다시 흉기로 찌르고 권씨의 승용차 차문을 열어놓은 채 인근에 버리고 달아났다.
한 수사관계자는 “권씨의 사체가 발견됐을 때 머리에 심한 상처가 있고 양쪽 갈비뼈가 모두 부러져 원한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봤다. 그러나 숨진 권씨의 주변을 아무리 뒤져봐도 권씨와 원한 질 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권씨 또한 주변 평판은 좋았다고 한다. 가정에서는 폭군 행세를 했지만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 다른 사람과 다툼이 될 만한 일은 하지도 않았고 혹 문제가 생기더라도 권씨 자신이 꾹 참는 스타일이었다. 동네에서는 사회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교회에 기부금도 많이 내 숨진 권씨는 가족들을 제외하면 모두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한 수사관은 “주변사람들이 워낙 숨진 권씨에 대해 칭찬을 많이 했다. 권씨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술, 담배도 안하고 여자관계도 깨끗해 ‘권씨가 혹시 단순강도를 당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경찰은 권씨가 숨진 당일 행적에 대해 부인 심씨와 아들 권씨를 조사하다가 수상한 점을 포착했다. 두 사람의 진술이 어긋나고 자꾸 이를 번복했던 것. 결국 경찰은 이들을 집중 추궁한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한 수사관계자는 “아들 권씨가 처음에는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심씨도 모든 것을 털어놨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두 모자가 인륜을 어긴 범행을 저질렀지만 이들의 진술을 받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부인이나 아들이나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착한 사람들이었는데, 어쩌다 이런 일까지 저지르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아버지 권씨가, 그리고 부인과 아들이 밖에서 사람들을 대하듯 서로를 배려했다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