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행정관 이 씨가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는 모습과 홀로 들어오는 모습이 엘리베이터 CCTV에 찍혔다. | ||
더욱이 숨진 이 아무개 씨가 열린우리당 미디어지원팀의 간부이고, 범행이 청와대 여직원 사이의 불륜 문제가 발단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파문의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또한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경찰이 사건을 서둘러 봉합하려고 하면서 국민들의 궁금증은 증폭됐다. 뿐만 아니라 이해찬 전 국무총리 골프 파문과 이명박 서울시장의 테니스 파문이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권력의 최정점인 청와대와 관련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야권은 인사 시스템 및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아 여권을 공격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지 우발적인 치정 살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던지고 있다.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 본다.
일단 경찰이 밝힌 사건 전모와 의문점을 살펴보자. 경찰은 이 행정관의 우발적인 범행으로 결론 내린 채 서둘러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이 행정관이 자신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청와대 여직원 문제로 부인과 말다툼을 벌이다 순간적으로 감정이 폭발, 부인을 목 졸라 숨지게 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행정관의 구속영장 등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 시각은 지난 3월 17일 새벽. 전날 오후 10시쯤 동대문구 휘경동 H아파트 자택으로 귀가한 이 행정관은 아내와 술을 마셨다.
서울 소재 S대학 85학번과 90학번인 이 행정관과 아내 이 씨는 대학 시절 학교 민주동문회라는 모임에서 만나 학생 운동을 함께해왔으며 10년간의 교제 끝에 지난 2003년 11월 2일 결혼식을 올렸다.
전대협 사무국장까지 지낸 이 행정관은 민주당 C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으며 지난 대선 때는 선대위 인천본부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도왔다. 참여 정부가 들어선 후 이 행정관은 참여기획실과 국정상황실 행정관으로 근무했으며 최근 홍보기획관실로 자리를 옮겼다.
아내 이 아무개 씨도 지난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K 전 의원 선거운동본부와 L 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한 뒤 열린우리당 미디어지원팀 부국장 직책을 맡고 있었다.
자정 무렵 일이 벌어졌다. 이 행정관과 내연 관계였던 청와대 여직원 C 아무개 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아내와 이 행정관은 심한 말다툼을 벌였고 아내는 참다못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새벽 1시 30분경, 이 행정관은 승용차에 아내를 태우고 동네를 배회하다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동대문구 전농동 C교회 앞 노상에 정차했다.
잠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차에서 내린 이 행정관은 아내가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겨 음주상태에서 차를 운전하려 하는 것을 보고 급히 승용차 뒷좌석에 올라타 운전을 제지했다. 이에 아내가 이 행정관을 향해 “죽여버리겠다”고 하자 자신의 코트 주머니 속에 벗어두었던 넥타이를 꺼내 아내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뒤 그대로 차에서 나와 집으로 귀가했다. 여기까지가 경찰이 밝힌 범행 전모다.
이 행정관은 다음날 오전 6시 청와대로 정상 출근했으며 무슨 의도인지 당에 전화를 걸어 아내 출근 여부를 확인하는 행동을 취했다. 아내 이 씨는 오전 10시 35분쯤 주차단속요원에 의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주차단속요원에 따르면 이 씨는 승용차 운전석에 앉아 목이 젖혀진 상태였으며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였다.
경찰은 이 행정관이 아파트의 CCTV를 의식하지 않았고 넥타이를 살해 지점 주변 하수구에 던져 놓은 점 등으로 보아 우발적인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 행정관이 넥타이를 코트 주머니에 넣고 쫓아갔다는 점과 17일 오전에 이 행정관이 당 지인에게 아내의 출근 사실을 확인한 부분에선 여러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비록 새벽 시간이라 할지라도 큰 도로 변, 더구나 교회 바로 인근에 파출소가 있는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이 행정관이 아내가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겨 승용차를 운전하려 했을 때 운전석 문이 아닌 뒷좌석 문을 열고 들어가 제지를 했던 점, 목이 졸려진 아내가 거센 저항을 할 수 있었음에도 아내의 손이나 목덜미, 안면부에 특별한 상처가 없고 승용차 앞좌석도 특별히 파손된 부분이 없다는 점도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다.
그러나 범행이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문제는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청와대 언로 역할을 했던 사람이 여자 문제로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범죄적인 측면보다는 그 사회적인 책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청와대 등은 이 사건을 서둘러 처리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이 행정관의 진술만을 토대로 사건을 마무리하고 간단한 사건 개요만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후 서둘러 검찰로 송치했다.
청와대도 이 행정관과 C 씨의 관계에 대한 보도가 있은 후 “이 행정관이 C 씨와 사귀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며 청와대가 이 사건에 관련되는 것을 피하려는 자세로 일관했다. C 씨에 대한 정보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C 씨가 사건 후 사직했다는 이야기만 나오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잘 아는 여당 관계자들, 또한 비공식적으로 흘러나오는 청와대 소식통에 의하면 실제 이 행정관과 C씨의 관계는 아는 사람은 알 만큼 깊은 관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에 따르면 운동권 출신인 이 행정관과 아내는 결혼 이후 성격 차이로 자주 충돌했다고 한다. 더구나 아이도 없어 업무에 몰두하면서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서로 좋은 감정을 유지하기도 힘들었을 것으로 이들은 추측한다.
이러는 사이 국정상황실에 재직하던 이 행정관은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C 씨에게 마음을 열었고 사건 직전까지 교제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 행정관 부부와 대학 민주동문회에서 함께 학생 운동을 했던 동문들은 이 행정관이 단지 불륜 문제가 탄로난 것 때문에 아내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숨진 이 씨와 대학 동창이면서 민주동문회 활동을 이 행정관 부부와 함께했던 A 씨는 “향후 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등 정치적으로 큰 꿈을 가져왔던 이 행정관이 도대체 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도 불륜 외에 다른 정황이 있는지를 집중 수사하고 있다. 상당 기간 불륜 문제 때문에 감정싸움을 벌이다가 다른 이유가 불거져 살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이 씨 주변 사람들과 가족은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부부가 거주했던 아파트도 철저하게 취재진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주민들의 합의로 취재진의 접근을 막기로 했다는 것이다. 다만 숨진 이 씨의 부친이 장례식장에서 “눈으로 사건을 보지 않은 이상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며 사위 진술에만 의존했던 경찰 수사에 크게 한탄했다는 후문만 들리고 있다.
이 행정관의 변호인도 입을 다물고 있다. 공교롭게도 변호인은 이 행정관과 대학 및 동문회 후배이며 담당 검사도 이 행정관의 S대학 1년 선배다.
사건을 송치 받은 검찰이 과연 공소장에 이번 사건의 전말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