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9일 남대문경찰서에 출두하는 김승연 회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화 측은 조폭개입설에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가뜩이나 그룹의 위신이 실추된 마당에 조폭까지 동원시켰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회복 불능의 치명타를 입게 되는 까닭이다. 한화 측은 당시 동원된 인원이 모두 회장 비서진들이거나 경호원들로 구성된 회사 직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이번 파문이 불거진 직후 특별취재팀을 구성, 폭행 사건이 벌어진 북창동 유흥가 일대를 샅샅이 탐문했다. 이번 사건의 실체가 경찰 일부의 은폐 의혹에 의해, 또 피해자의 침묵이나 잦은 말바꾸기에 의해, 그리고 김 회장 측의 완강한 부인에 의해 여러 혼선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숨겨진 진실은 사건 현장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예상 외로 당시 사건의 잔재는 북창동 현지 여기저기에 아직 숱하게 산재해 있었다.
ːː 김 회장 청계산행 왜 부인하나?
지난 4월 29일 경찰에 출두한 김 회장은 “청계산에 전혀 간 사실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3월 8일 밤 11시경 북창동 S 클럽에 간 사실만 인정했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과 아들을 폭행한 당사자를 화해시키기 위해 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미 한화 측 경호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 김 회장이 청담동의 G 업소로 간 사실을 확인했다.
현재로선 김 회장의 당일 행적 가운데 청담동 G 업소와 북창동 S 클럽에 간 사실만 확인된 것이다. 그렇다면 밤 9시부터 11시까지 두 시간가량의 행적이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이 시간에 김 회장이 청계산에 함께 간 것으로 확신하는 분위기다. 범행 현장의 동선 세 곳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독 중간 단계에만 그가 빠졌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납득키 어렵다는 것이다.
피해자들도 청계산 현장에 김 회장이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진술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김 회장 측이 청계산 현장을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그만큼 당시 현장에서의 폭행이 조폭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무자비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제 피해자들의 최측근인 북창동 모 클럽의 전무 박 아무개 씨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G 업소에서 청계산으로 끌려간 4명 가운데 조 씨(S 클럽 전무)가 김 회장 일행에게 자신이 ‘윤 아무개’(김 회장 차남을 폭행한 당사자·S 클럽 전무)라고 (거짓으로) 신원을 밝히자 혼자 끌려나가 정신없이 맞은 후 어두운 산 속에서 얼굴만 내놓은 채 땅에 묻혔다고 했다. 주위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라이터 불을 켜놓고 ‘넌 오늘 죽는다’고 말했다고 했다. 조폭처럼 보이는 수 십여 명의 사람들도 주위에 빙 둘러 서 있었고, 당시 조 씨는 정말로 그날이 자신이 죽는 날인 줄로 알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경찰 한 관계자는 “구덩이를 파서 상대방을 거기에 묻고 어둠 속에서 라이터 불을 얼굴 앞에 비치는 것은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시키기 위한 조폭들의 전형적인 행태”라고 지적했다.
ːː 조폭 실제로 개입했나?
이택순 경찰청장은 4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조폭이 개입된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의 조폭 담당 관계자 역시 “조폭 개입에 대해 예의주시했지만 조폭은 아닌 것 같다. 단 조폭 출신이 개인적으로 얼굴마담 격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일 MBC가 ‘D 토건 김 사장이 7명의 사람을 동원해 김 회장 폭행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보도했지만 경찰 측에선 “이 역시도 단순히 협력업체 직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진이 북창동 현지에서 전해들은 주변 관계자들의 구체적인 증언은 전혀 달랐다. 이미 사건이 벌어지고 난 직후부터 현지에는 조폭들의 이름이 공공연히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북창동 업소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 차남을 폭행한 이들이 일반 직장인이 아니라 북창동 업소 직원들이라는 점을 확인한 이후 김 회장 측이 급하게 조폭 출신을 수소문해서 실제 동원했다고 한다. 업소 직원들이 조폭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즉 조폭에 대비하기 위해 조폭을 동원했다는 주장이다.
북창동 현지에서는 “자칫했으면 모처럼만에 북창동에서 조폭들 간의 전쟁이 일어날 뻔도 했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박 씨는 “북창동에서 룸살롱을 운영하려고 하면 어떤 식으로든 조폭과 연관되지 않을 순 없다. 어느 정도 친분관계도 필요하다. 필요에 의해서 조폭들과 ‘형, 동생’ 하며 서로 가깝게 지내게 된다”고 전했다.
▲ 북창동 S 클럽 | ||
S 클럽의 조 아무개 사장은 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목포 출신의 조폭 원로 C 씨가 용역업체의 김 사장과 함께 김 회장을 도우며 폭행사건을 주도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김 사장이 직접 동원한 인원이 7명이었고 당초 김 회장이 거느린 인원이 약 17명이었지만, 막상 북창동 S 클럽에 들이닥쳤을 때 그 인원이 30명이 훨씬 넘었다는 여러 관계자의 증언도 김 사장과 C 씨의 조폭 동원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 사장이 그날 밤 8시 반경 영동대교 남단에서 모 일행과 합류해서 청담동 G 업소로 향했다는 점 또한 김 사장 등에 의한 또 다른 인원 합류 가능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이 조폭이거나 조폭 출신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런 정황은 경찰 수사에서도 일부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북창동 현지 조사를 통해 8일 밤 11시 S 클럽을 급습한 김 회장 측 일행 중에 목포의 조폭이 포함됐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ːː 조폭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른바 조폭개입설의 실체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사건 발생 직후부터 북창동 현지에서는 이미 이번 보복 폭행 사건에 개입됐다는 조폭의 이름이 꾸준히 오르내렸다. 가장 유력하게 등장한 이름은 전남 목포에서 유명한 S파였다. 이에 대해 북창동 업소의 한 관계자는 “피해를 당한 S 클럽의 조 사장이 목포 출신이라는 점을 알아내고 김 회장 측에서 목포의 유명한 거물급 조폭을 등장시켰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 당사자가 S 클럽의 조 사장이 말하는 C 씨라는 것. 사건이 언론에서 보도된 직후 경찰 주변에서 끊임없이 목포의 유명 조폭 개입설이 나돈 것 역시 이런 점 때문이라는 얘기다.
S파는 목포를 대표하는 3대 폭력조직 중 하나로 유명하다. 이 조직의 두목급은 김 아무개 씨로, 그는 서울에 진출해서 강남 등 유흥가 지역에 뿌리를 내린 채 사업가로 변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창동 업소 주변에도 조폭들이 업주들과 상당한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폭 수사 전문가로 통하는 한 경찰관은 “목포 주먹은 과거 80년대부터 서울 유흥가로 진출해서 사실상 유흥업소 상권을 장악했다. 목포 조폭의 대부로 불리는 강 아무개, 김 아무개 등이 바로 그런 인물들”이라며 “이들은 특히 호남 지역의 정치인들과도 유착관계가 뿌리 깊고, 겉으로는 사업가 행세를 하면서 음으로 조폭의 배후 세력으로 활약하고 있는 인물들”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취재진은 현지 탐문 과정에서 A파라고 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조폭 이름을 여러 관계자들로부터 접할 수 있었다. 북창동 등 유흥가에서는 꽤나 알려진 이름인 듯했다. 북창동 업소의 한 관계자는 “A파는 목포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 조직으로 알고 있다. 이번 사건에 등장하는 목포 조폭은 S파가 아니라 A파로 알고 있다. A파는 전국구 조폭 성격인 S파의 방계조직이라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현지에서 전해들은 얘기에 따르면 A파는 목포에 뿌리를 내린 조직이라기보다는 목포 출신 주먹들이 서울의 유흥업소에서 활약하며 새롭게 형성된 조직이라는 것이다. 서울경찰청의 조폭 담당 관계자도 “A파는 처음 들어본다. 우리가 갖고 있는 조폭 리스트에도 A파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도 다른 유명 조직의 행동대 격이거나 조직을 은폐하기 위한 위장 조직일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ːː 김 회장은 조폭과 무슨 관계?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이번 폭행 사건에 실제 조폭이나 조폭 출신이 개입했다면 과연 김 회장이 어떻게 이들을 동원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평소 호방하고 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 회장이 원로급 조폭 두목 출신들과 가깝게 지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에 따르면 김 회장의 당초 계획에는 조폭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 김 회장은 자신의 비서진 및 경호원들만 17명 정도 대동하고 최초 사건이 있었던 G 업소로 향했다. 거기서 상대측이 북창동 유흥업소 직원이라는 점을 알아내고는 곧바로 협력업체 김 사장 등 추가 인원을 섭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 조폭 동원의 모든 의혹은 김 사장에게 모아지고 있다. 그는 사건이 불거진 직후 곧바로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 사장의 검거에 사활을 걸고 추적 중이다. 김 사장이 조폭 등에 선이 닿아 있고 목포 출신의 조폭 원로 C 씨와 연관되어 있다면 비록 김 회장이 직접 조폭 등과 선이 맞닿아 있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김 회장 측의 요청에 의한 조폭 동원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별취재팀 (감명국 기자 kmg@ilyo.co.kr, 이남훈 르포라이터 freehook@hanmail.net, 구성모 heymantoday.co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