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 사건은 형사 생활 25년간 쌓아온 정일권 팀장(51·경위)의 ‘내공’이 빛을 발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정 팀장은 사건 해결의 기쁨보다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갈 피해여성들에 대한 안쓰러움을 나타냈다.
“여성에게 강간은 살인에 버금가는 범죄라고 합니다. 김 씨는 징역 15년형이 확정됐지만 피해여성들이 받은 상처를 과연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82년 경찰에 투신한 정 팀장은 겉보기에는 온화한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인상이지만 피의자 검거에서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의 집요함과 근성을 지닌 수사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정 팀장은 오랜 형사생활로 터득한 직감을 중요시한다. ‘일반인들의 눈과 형사의 눈은 다르다’는 것이 정 팀장의 지론.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을 법한 작은 단서나 움직임까지도 포착해내는 예리한 그의 시선은 각종 강력사건들을 해결하는 든든한 원동력이다.
하지만 도둑 하나를 열 사람이 막기 어려운 게 현실. 정 팀장은 형사들이 수사과정에서 겪는 애로사항에 대해 털어놓으며 시민들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죠. 보복을 당할 것이 두려워서 혹은 귀찮아서 진술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강간’범죄의 경우 피해여성들의 진술을 받아내기가 정말 어렵죠. 이 사건 역시 여경까지 동원해 피해자들을 설득해 진술을 받아내느라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경찰은 제보자나 피해자의 신변보호에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건이 제보나 진술을 확보하지 못해 미제로 남거나 수사에 걸림돌이 되는 걸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결국 침묵은 시민들로서도 커다란 손해입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