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원주경찰서 중앙지구대 양영용 반장이 전하는 사건 역시 이와 흡사한 사례다. 두 불륜남녀가 헤어지는 과정에서 여성의 지독한 집착과 분노가 빚어낸 ‘내연남 아내 살인사건’에 대한 것이다. 서울 성북경찰서 강력팀에 근무할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양 반장은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잘못된 인연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는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매몰차게 돌아선 내연남을 향한 한 여성의 애증과 집착은 그의 부인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끔찍한 방법으로 표출됐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한 여성의 엽기적인 복수극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동시에 한 가정을 풍비박산 내고 말았다.”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2004년 5월 28일. 서울 성북구의 한 연립주택에서 주부 A 씨(당시 37세)가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다. 이날 오후 1시께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초등학생 아들이 어머니의 사체를 목격했던 것.
신고를 받고 관할서인 성북경찰서 형사들이 현장에 급파되었다. 연립주택에 도착한 형사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는 사체를 보고 잠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양 반장의 설명. “사체를 본 순간 ‘아! 이럴 수가!’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동안 내가 본 사체 중 몇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끔찍했기 때문이다.”
사체의 상태와 주변 정황으로 볼 때 A 씨가 살해된 시간은 이날 오전으로 추정됐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등교한 후 혼자 집을 보고 있던 A 씨가 누군에게 살해된 것이다.
도대체 누가 왜 이같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걸까. 그 무렵 서울 고척동과 대림동 등 서남부지역에서는 부녀자 피살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었다. 수사팀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양 반장의 얘기.
“첨단 과학수사기법을 동원해서 그 무렵 발생한 살인사건들과 비교해봤지만 이 사건은 그 사건들과는 연관성이 적은 것으로 판단됐다. 집 안에 금품이 그대로 남아 있던 점으로 보아 전형적인 강도살인사건으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철저한 현장감식을 실시했지만 범인을 특징 지을 만한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우리는 범행수법이 너무나 잔인하다는 점에 주목해 우선 원한에 의한 살인 쪽으로 가닥을 잡고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팀은 남편을 포함한 A 씨의 주변인물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특별히 의심스러운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잠복과 탐문수사, 통신수사 등을 실시하던 형사들은 수사에 착수한 지 10여 일 만에 A 씨의 남편 B 씨와 한때 내연관계를 맺었던 C 씨(당시 39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기에 이른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해도 아무도 남편의 내연녀였던 C 씨를 용의선상에 올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남편이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점에서 금전이나 채무관계 등으로 원한을 맺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변인물들에 대한 탐문 수사를 진행하던 중 감춰져 있던 C 씨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수사 결과 남편과 C 씨의 순탄치 못했던 내연관계가 밝혀지면서 조금씩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C 씨의 행적에 대한 조사 결과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사건 당일 오후 C 씨가 서둘러 미국으로 출국한 것이 큰 의문이었다. 사건 며칠 전 피살된 A 씨에게 10여 차례 전화를 걸었던 사실도 파악됐다.
수사 결과 A 씨의 남편 B 씨와 C 씨는 2003년 초 노래방 도우미와 손님의 관계로 연을 맺었다. 놀라운 것은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던 C 씨가 미국 유학까지 마친 인텔리 여성이라는 사실이었다. 다음은 양 반장의 설명.
“87년 부산의 한 대학을 졸업한 C 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학위를 받은 엘리트 여성이었다. 미모 또한 상당한 C 씨는 89년 미국인과 결혼, 두 명의 자녀까지 낳았다. 하지만 C 씨는 외국인 남편과의 문화적 충돌로 적잖은 갈등을 빚는 등 그다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친정이 있는 한국에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C 씨는 영어강사로 틈틈이 일을 했다. 그런데 시간당 수입이 높은 노래방 도우미를 아르바이트 삼아 하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깔끔하고 준수한 외모에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B 씨는 노래방 도우미인 C 씨에게 친절하고 매너 있게 대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손님과 도우미의 사이를 넘어 급속도로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불륜’이라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이들 사이는 머지않아 삐거덕거리게 된다. 이어지는 양 반장의 얘기.
B 씨와 C 씨의 관계를 알게 된 수사팀은 조금씩 사건의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B 씨와의 결합을 간절히 원했던 C 씨에게 B 씨의 부인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을 터. B 씨에 대한 배신감과 집착에 빠져 있던 C 씨가 B 씨의 아내를 상대로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문제는 C 씨를 범인으로 단정 지을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현장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도구는 물론 범인의 지문이나 족적,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수사팀은 C 씨의 범행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단서를 잡기 위해 C 씨의 주변을 다시 한번 샅샅이 훑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수사팀은 사건 전날 C 씨와 같이 있었다는 조카를 찾아가게 된다. C 씨가 범행 직전에 같이 있던 조카에게 은연중에 범행동기나 어떤 심리적인 동요를 드러냈을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었다.
“C 씨의 조카를 본 순간 ‘뭔가 알고 있다’는 감이 오더라. 서너 시간을 붙잡고 설득했다. 조카는 한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눈물을 흘리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C 씨의 엄마에게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는 거였다. 사건 당일 C 씨가 엄마를 찾아와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한 뒤 허겁지겁 나갔다는 것. 또 C 씨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의 부엌칼을 갖고 가서 범행을 저지른 후 모처의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거였다.”
수사팀은 범행에 사용된 칼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쓰레기 집하장까지 모조리 뒤졌지만 끝내 문제의 칼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이어지는 양 반장의 얘기.
“칼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간 우리가 수집한 모든 정황들은 C 씨가 범인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특히 C 씨가 자신의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또 우리는 C 씨와 B 씨 사이의 더 내밀한 얘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C 씨의 조카가 한 얘기는 이후 조카의 엄마에게 들은 얘기와도 정확히 일치했다. 특히 미국에 도착한 C 씨는 전화로 ‘사건이 어떻게 됐는지’를 물어왔다고 하더라. 수사팀은 모든 정황과 주변인물들의 얘기를 종합해 C 씨가 범인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또 공개할 수는 없지만 범행 전 C 씨가 A 씨에게 전화를 건 통화내용 등을 분석한 결과 역시 범행 정황을 확실히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수사팀은 미국에서 잠적한 C 씨를 인터폴에 수배하는 한편 신병인도를 요청했다. 그리고 얼마 후 범죄인인도조약을 통해 미국 경찰로부터 C 씨의 신병을 넘겨 받았다.
하지만 C 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자신보다 몸무게가 13㎏이나 더 나가고 체격도 훨씬 큰 A 씨를 어떻게 살해했겠느냐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C 씨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살해혐의로 기소된 C 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006년 3월 항소심 재판부도 원심대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경찰의 수사가 적법하게 이뤄진데다 채택된 간접사실 및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고, 피고인이 아닌 제3자에 의한 범행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의견이었다.
이 사건은 목격자나 범행에 사용된 흉기 등 직접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경찰의 수사를 어렵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목격자 진술 등 직접증거가 없는 사건에서 유죄의 심증은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위반되지 않는 한 간접증거에 의하게 된다’고 판시, 적절한 수사에 의한 간접증거의 채택을 인정했다.
항소심 판결에 불복한 C 씨는 곧바로 상고를 했으나 2006년 6월 27일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인해 15년형이 확정됐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