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궁 습격’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명호 전 교수. 지난 1월 17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동부지법에 들어서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 ||
지난 3월 초부터 서울동부지법 형사2단독 김용호 판사의 심리로 진행 중인 이 사건 재판에서는 검찰과 피고인 양측의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김 전 교수가 고의적으로 박 판사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검찰의 주장과 ‘두 사람의 승강이 과정에서 석궁이 발사됐을 뿐’(과실상해)이라는 변호인 측의 반박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것.
이런 가운데 최근 이 사건과 관련된 또 다른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재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김 전 교수의 변호인 측이 일부 증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해 법정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상태다. 이른바 ‘판사 석궁 습격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현재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는 핵심 쟁점들을 짚어봤다.
△화살은 어떻게 발사됐나
박 판사는 사건이 발생한 당일 자신이 입원해 있던 서울대병원에서 가진 최초 피해자 진술에서 “김명호가 나의 복부에 석궁 화살을 조준하고 쐈다”라고 진술했다. 다음날 2차 진술에서도 그는 김 전 교수가 갑자기 석궁을 자신에게 조준한 후 덤벼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10일 후 이뤄진 3차 진술에서 박 판사는 이전과는 다른 내용을 밝혔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발사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피의자와 실랑이를 벌이려는 순간 내 복부에 화살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뽑았다”라고 진술한 것. 이후 박 판사는 석궁 발사 순간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판사는 이렇게 진술 내용이 달라진 이유에 대해 “(진술이) 바뀐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김명호가 쐈다는 인식을 토대로 말한 것이지 내가 언제 목격했다고 말했나. 또 당시에는 다른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4차 진술조서)고 밝힌 바 있다.
반면에 김 전 교수 측은 “화살은 박 판사와 김 전 교수가 실랑이를 하다가 우연히 발사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전 교수의 변호인 이기욱 변호사는 그 근거로 박 판사의 몸에 생긴 상처를 들고 있다. 당시 박 판사를 치료한 의사의 소견서를 보면 박 판사가 입은 상처의 깊이는 1.5㎝ 정도다. 일반적으로 짧은 거리에서 석궁을 이용해 화살을 인체에 쏘면 그 상처의 깊이는 10㎝ 이상 나온다는 게 이 변호사의 주장이다.
박 판사와 김 전 교수가 처음 마주쳤을 당시의 거리는 약 1.5m. 박 판사의 주장대로 만약 그 거리에서 정면으로 석궁을 맞았다면 그 상처는 치명적일 것이라는 게 석궁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실제로 지난 3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석궁전문가 고 아무개 씨는 이번 사건의 경우 여타 석궁 사고보다 그 상처가 훨씬 가볍다는 점을 증언한 바 있다. 화살을 비켜 맞아서 상처의 깊이가 얕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의문은 남는다. 왜냐하면 비켜 맞았을 경우 화살이 복부에 ‘박힐’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한 전문의는 기자에게 “복부에 깊이 1.5㎝ 정도의 상처는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 그 정도면 화살이 박히기는커녕 (무게로 인해) 저절로 흘러내렸을 것”이라는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반면 검찰 주변에서는 사건 당시가 추운 겨울이었던 만큼 옷의 두께를 감안하고 화살이 비켜 맞았을 가능성 등을 생각하면 상처의 깊이만 가지고 석궁이 제대로 발사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난센스라고 전하고 있다.
한편 변호인 측은 법정에서 이뤄진 석궁 발사 실험을 근거로 화살이 발사될 때 제법 큰소리가 나는데 사건 당시 박 판사가 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점도 의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자체가 석궁이 ‘정상적으로’ 발사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의들은 사람이 뜻밖의 일로 갑자기 큰 충격을 받게 되면 오히려 일부 신체 감각기능이 무뎌질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화살 정말 바뀌었나
검찰은 현재 총 9개의 화살을 법정에 증거로 제출한 상태다. 이 가운데 1개는 김 전 교수가 박 판사에게 쏜 것으로 알려진 화살이고 2개는 김 전 교수가 몸에 지니고 있던 것, 그리고 나머지 6개는 김 전 교수의 석궁가방에서 발견된 것이다. 즉 김 전 교수는 박 판사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당시 3개의 화살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사건 발생 다음날인 1월 16일 이 화살 3개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보내 감식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그 결과를 2월 1일 경찰에 전달했는데 ‘혈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즉 3개의 화살에는 혈흔이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판사의 진술대로 화살이 몸에 박혔다면 피가 꽤 흘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찌 된 일일까.
▲ 경찰이 증거물품으로 압수한 김명호 전 교수의 석궁. | ||
지난 3월 21일에 열린 2차 공판에는 박 판사가 살고 있는 아파트 경비원 A 씨가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A 씨는 사건이 발생한 날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던 인물이다. A 씨는 이날 증언에서 당시 자신이 박 판사로부터 건네받은(박 판사는 자신이 몸에 박힌 화살을 빼 주위에 버렸는데 누군가 주웠다고 진술) 화살에 대해 “화살 끝이 뭉툭했다” “(화살이 훼손돼) 손으로 당기는 윗부분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즉 사건 직후 자신이 목격한 화살은 ‘정상적’인 화살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 법정에 증거로 제출된 화살 9개는 모두 끝이 뾰족하고 형태가 온전한 ‘하자’가 없는 화살이다. 경비원 A 씨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사건 당시 봤다던 ‘하자’ 있는 화살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뒷받침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증’은 다름 아닌 박 판사의 진술 내용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박 판사는 2월 2일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서 실시된 피해자 진술조서에서 “(복부에서) 뽑은 화살을 주위에 버렸다. 그 화살을 누군가 나에게 보여주었을 때 화살이 거의 중간 지점에서 부러져 있었다. 아마 몸싸움 과정에서 부러진 것 같다. 내가 뺄 때는 안 부러져 있던 게 확실하다”라고 증언했다. 박 판사도 자신이 맞았던 화살이 사건 직후 손상됐음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재판부는 5차 공판이 열린 8월 14일 현장에서 화살을 제일 먼저 압수했던 잠실지구대 소속 경찰관 B 씨를 증인으로 출석시켰다. 판사가 B 씨에게 화살에 대해 묻자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자신은 현장에서 압수된 화살과 석궁을 자신이 근무하는 지구대로 가져왔는데 그 이후에는 누군가가 경찰서로 인계해서 잘 모른다’는 것이 그의 진술이었다. 변호인은 문제의 화살에 대해 계속해서 추궁했지만 B 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답했다.
압수한 증거물품을 누가 어떻게 경찰서로 인계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그의 진술에 대해 변호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만약 사건의 증거물인 화살이 뒤바뀐 게 사실이라면 법원의 향후 사건 심리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증거물품에 대한 수사기관의 허술한 관리 체계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변호인 측은 사건 당시 발견된 화살의 촉이 뭉툭하기 때문에 날카로운 것으로 바꾼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과연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을 누군가 다른 화살로 바꾼 게 사실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왜 석궁을 수리했을까
사건 당시 압수된 석궁을 놓고도 갑론을박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경찰이 사건에 쓰인 석궁을 수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난 3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석궁제조전문가 고 씨는 “(사건 다음날인 1월 16일쯤) 담당 경찰서 측이 사건에 사용된 석궁을 당신에게 가져왔을 당시 석궁이 고장 난 상태였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면서 “당시 경찰서 측에서 석궁 핀이 한 개 없어 고장이 나 있는 것을 가지고 왔다”라고 증언했다. 즉 경찰이 현장에서 압수한 석궁을 사건 다음날쯤 고 씨가 확인해봤을 때에는 이미 고장 난 상태였다는 것이다.
또한 고 씨는 “만약 이 석궁 핀이 없다면 화살은 발사될 수 없다. 더군다나 김 전 교수는 박 판사를 계단에서 하향 사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상태에서 위에서 아래로 겨냥하면 화살은 흘러내려 발사가 불가능하다”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법정에 증거물로 제출된 석궁은 전혀 하자가 없는 석궁이다. 이에 대해 경찰 측은 “향후 법정에서 석궁을 가지고 실험을 할 것으로 알고 수리해놓은 것일 뿐”이라며 의혹을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김 전 교수의 변호인들은 “만약 실험을 한다면 똑같은 종류의 석궁을 구해서 하면 될 일인데 굳이 증거로 제출해야 하는 고장 난 석궁을 수리할 것은 뭐냐”라고 반박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재판에서 매우 중요한 물증 중 하나인 석궁을 변형했다는 것은 왠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만에 하나 석궁이 고장 나 있었다면 애초부터 화살은 제대로 발사되지 않은 셈이 된다. 이러한 가정을 토대로 김 전 교수 측은 심지어 ‘자작극 의혹’까지 제기한 상태다. 반면 화살이 발사된 후 박 판사와 김 전 교수가 실랑이를 벌이다 석궁 핀이 고장 났을 가능성도 있다. 대체로 현실적인 추론이지만 여기서도 의문점은 남는다. 당시 현장에서 고장 난 석궁 핀 부분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경찰이 석궁을 증거물로 압수한 뒤에 보관 과정에서 고장이 났을 가능성이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경찰의 증거물 관리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의혹은 재판에서 변호인과 검찰 양측이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는 대표적인 쟁점들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 외에도 좀 더 들여다봐야 할 부분들이 있다.
우선 박 판사의 사건 당시 행적을 보면 박 판사는 김 전 교수로부터 습격을 받고 나서 자신의 집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난 후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몸에 화살이 박힐 정도라면 심각한 부상인데도 그가 집에 다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구급차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김 전 교수의 행적에도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다. 김 전 교수 측은 이번 사건이 우발적인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김 전 교수의 교통카드를 분석한 결과 사건 발생 전에 이미 박 판사의 집 주변에 여섯 차례나 다녀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점으로 보아 사전에 치밀하게 습격을 준비한 것이 아니냐고 검찰은 지적하고 있다.
‘박 판사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김 전 교수의 진술은 과연 어디까지 사실일까. 단지 자신의 죄를 덜기 위한 억지 주장일까. 아니면 김 전 교수의 말대로 ‘숨겨진 진실’이 존재하는 것일까. 오는 28일 열릴 다음 공판에 피해자인 박 판사가 증인으로 채택된 상태라 판사 석궁 피습사건을 둘러싼 공방은 갈수록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