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형사기동대를 시작으로 경찰에 투신한 김건중 팀장(49·경위)은 기억의 편린을 들춰내면서 유독 ‘그냥 묻어두자’는 말을 많이 했다. 기사가 나가면 장 양의 가족들이 또다시 당시의 끔찍한 악몽을 떠올려야 하고 한동안 힘들어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수사를 진행했던 수사팀에게는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범인이 아이의 의붓아버지라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김 팀장은 여느 가정 못지않게 단란했던 장 양의 가정이 한순간 무너지게 된 것에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고 괴로워하던 박 씨와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후 충격에 빠진 장 양 어머니를 지켜보던 수사팀들의 마음 또한 결코 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사결과를 취합해볼 때 박 씨가 유력한 용의자이긴 했지만 사실 아무 증거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당시 아무 증거가 없었는데 왜 자백을 했느냐’고 넌지시 물어봤더니 ‘저 때문에 형사님이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라며 말끝을 흐리더라고요. 천성이 착한 사람이었다는데 어쩌다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건지…. ‘그럴 거면 부인 쪽 친지가 애를 달라고 했을 때 진작 주지 그랬냐’고 했더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더라고요. 이혼과 재혼이 흔한 세상인데 다신 제2의 장 양 사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