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생활 중 이처럼 완벽히 베일에 가려진 인물은 처음이었습니다. 조사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정말 컸어요. 웬만한 악질범도 6시간 정도 조사하면 입을 열기 마련인데 정 씨는 달랐어요. 3일 동안 묵비권으로 일관하던 정 씨는 조서를 쓸 때마다 아주 조금씩 감질나게 흘리는 겁니다. 총 10회 조사를 받았는데 수사기록만 4000페이지에 달했으니 말 다했죠. ''중미산까지 간 것은 인정하지만 소 씨 일은 모른다''고 하다가 ''소 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는 모른다''고 하다가 ''와보니 불이 났길래 그냥 돌아갔다''고 하는 등 말 바꾸기는 기본이고 나중에는 과실치사로 돌리려고 애쓰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법정에 가서는 경찰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억지를 쓰는데 대꾸할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형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초라한 발버둥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죠.”
86년 경찰에 투신한 최영우 소장(49·경위)은 당시 피말리는 수사과정에 대해 얘기하며 여러 번 혀를 찼다. 화려한 언술과 포장술로 희대의 사기극을 벌여온 정 씨는 사건 발생 6년이 지난 지금도 이따금 형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인물이라고 한다. 정 씨의 현란한 사기극에 농락당한 피해자들은 확인된 인물만 5명, 피해액은 4억이 넘었기 때문이다. 특히 검거하지 못했더라면 정 씨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을 상대로 추가범행도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형사들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는 후문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