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개수사로 전환된 강화 모녀 실종 사건 수배전단. 연합뉴스 | ||
이 사건의 핵심은 납치에 의한 실종이냐 아니면 자발적인 잠적이냐로 요약할 수 있다. 경찰은 수사전담본부까지 설치하고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목격자와 이렇다 할 단서가 확보되지 않아 수사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모녀가 실종된 전후 상황을 보면 자발적인 잠적으로 보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실종 10일 만에 공개수사로 전환한 강화도 모녀 실종사건을 둘러싼 갖가지 미스터리를 짚어봤다.
이 사건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부분은 윤 씨가 실종 당일 강화의 한 은행에서 1억 원을 인출했다는 사실이다. 윤 씨는 지난 4월 1일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받은 보험금을 포함해 총 5억여 원의 예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윤 씨에게 한꺼번에 1억 원이라는 거금을 인출할 만한 급한 사정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갑자기 돈을 인출한 배경을 둘러싸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윤 씨가 보관이 쉬운 수표가 아닌 현금으로 전액을 인출했다는 점, 돈을 인출한 지 약 1시간 후인 오후 2시경 두 모녀의 휴대전화가 동시에 끊겼다는 점은 자의에 의한 인출이 아닐 가능성과 누군가에게 건네졌을 가능성, 나아가 납치 등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하지만 윤 씨가 5억여 원의 예금 중 1억 원만 인출한 점은 의문이다. 윤 씨가 나머지 4억여 원을 통장에 남겨뒀다는 것은 잠적이든 납치든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종 당일 윤 씨가 수업 중인 딸을 조퇴하도록 종용했다는 점도 의문이다. 윤 씨가 애초부터 어떤 이유로 딸을 데리고 잠적하기로 결심한 것이라면 사전에 어떤 조짐이나 준비가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윤 씨가 실종 당일 거금을 찾고 굳이 학교에서 수업 중인 딸을 조퇴까지 시킨 것은 뭔가 다급한 상황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윤 씨는 당일 학교에 있는 딸과 무려 열 차례 이상 통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조퇴문제를 둘러싸고 딸과 실랑이를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경찰은 윤 씨의 딸이 ‘조퇴를 거부했었다’는 학교 측의 진술을 확보, 딸이 어머니 윤 씨의 요구를 탐탁지 않아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딸의 조퇴부분은 이번 사건이 범죄와 연결돼 있다면 중대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수업 중인 고등학생 딸을 어머니가 불러낼 만큼 중대한 이유가 있었을까. 집안에 어지간한 큰일이 일어나도 수업 중인 자녀에게는 알리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정서다.
모녀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가정하에서 추정해볼 때 범인들은 윤 씨만을 상대로 범행을 할 경우 완전범죄를 꿈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가정이 가능해진다. 즉 윤 씨와 잦은 교류를 한 탓에 딸이 범인의 얼굴을 알고 있고 딸을 남겨둘 경우 나중에 범행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범인이 윤 씨로 하여금 딸을 조퇴시키도록 종용했을 가능성이다. 실제로 은행 직원은 “윤 씨가 1억 원을 인출한 뒤 차량에 옮겨 실을 당시 윤 씨의 차량에 대기하고 있던 20∼30대 남자가 윤 씨와 대화 중 ‘이모’라고 부르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인척이 아니더라도 ‘이모’라는 호칭은 웬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쓸 수 없는 호칭이라는 점에서 범인은 이들 모녀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딸을 불러낸 것이 윤 씨의 자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제3자의 요구에 의해 한 행동인지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그렇다면 윤 씨 모녀의 실종에는 누가 관여되어 있는 것일까. 우선 은행 직원은 윤 씨가 돈을 인출할 당시 차량 안팎에 20~30대 남자 2명이 대기하고 있었으며 윤 씨는 돈을 인출한 후 은행 직원의 휴대전화를 빌려 자신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 ‘차를 대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윤 씨가 깜빡 잊어버리고 휴대전화를 차량 안에 두고 왔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해도 굳이 차량에 타고 있는 인물의 전화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지 않고 자신의 전화번호로 걸어 상대가 받게 한 것은 확실히 부자연스러운 부분이다. 이 역시 단서를 남길 것을 두려워한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행동일 수 있다는 점에서 범죄연루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문제는 윤 씨와 은행에 동행했던 의문의 남자 2명이 아직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이번 실종사건과 무관하다면 지금쯤은 나와서 자신들이 떳떳함을 밝혀야 마땅한데 이들은 사건 이후 지금까지 꼬리를 감추고 있다.
제3의 인물이 존재한다면 과연 누구일까. 이 인물은 면식범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윤 씨가 범죄에 연루될 것을 눈치채고서도 딸을 조퇴시켰을 리 없다는 점에서 윤 씨는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제3의 인물은 윤 씨가 믿고 따르거나 돈독한 친분을 유지해온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모녀가 범죄에 엮였다면 범인은 윤 씨가 남편의 사망으로 보험금을 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물일 것이다.
현재 경찰은 윤 씨가 30년 동안 믿어온 무속신앙을 버리고 특정 종교로 개종해 상당히 심취해 있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모녀의 실종에 이 종교단체 인물이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윤 씨가 돈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윤 씨와 가깝게 지냈다는 이 종교단체 관계자인 50대 남자에 대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상식적으로 종교를 바꾸는 것은 한순간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윤 씨의 경우는 갑작스런 남편의 사고사로 인해 상당히 큰 충격을 받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종교에 심취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 남편을 잃은 윤 씨가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가정해볼 때 윤 씨가 종교에 모든 것을 걸고 ‘잠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군복무 중인 아들을 남겨놓고, 한집에 살고 있던 시어머니에게 한 마디 언질도 없이, 무엇보다 공부에 한창 힘써야 할 고교생 딸을 학교를 포기시키면서까지 데리고 잠적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런 추리는 설득력은 떨어진다. 윤 씨의 딸도 신체적으로는 어른과 맞먹는 고등학생이라는 점에서 어머니에게 완력으로 제압돼 따라갔을 가능성도 낮다.
따라서 윤 씨가 돈을 건넨 후 범인들의 의도를 뒤늦게 눈치채고 항의하다 변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윤 씨의 딸은 그동안 특정 종교로 개종한 어머니를 못마땅해했으며 이로 인해 적잖은 갈등도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2시 30분께 조퇴한 윤 씨의 딸은 윤 씨가 돈을 인출한 후 윤 씨 일행과 합류한 것으로 보이는데 뒤늦게 어머니의 계획을 듣고 반발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평소 어머니를 탐탁찮게 여겼던 윤 씨의 딸은 어머니가 그들에게 거액을 건넨 사실을 알고난 뒤 강하게 따지다 변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모녀의 휴대폰이 연이어 꺼진 시각이 윤 씨가 돈을 인출한 후 대기하고 있던 남자들과 함께 떠나가 딸을 만난 시간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실종 보도 이후 끝내 모녀가 숨진 채로 발견됐습니다. 속보는 ‘뉴스플러스’ 사건과 사람 코너에 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