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따르면 박 씨 남매는 지인들에게 “대기업 사장 A 씨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싼 값에 사들여 장외에서 거래하면 큰 차익을 남길 수 있다”고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자신이 그 대기업 전략기획실 직원일 뿐 아니라 A 씨와 연인 관계임을 과시하며 투자자들을 현혹했다고 한다. 일단 경찰은 이번 사건을 단순 사기로 일단락지은 상태지만 몇 가지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경찰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박 씨 남매의 사기 행각을 따라가 봤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가 범행을 계획한 것은 지난해 9월경. 당시 신용불량자였던 박 씨는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 해외로 나간 이후 생계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전혀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평소 박 씨가 “재벌기업에서 근무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 씨의 남동생마저도 누나가 그 회사 직원인 줄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 씨는 한 아이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박 씨는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자 돈을 벌기 위해 사기 행각을 벌이기로 작정했다. 우선 첫 번째 피해자는 박 씨의 친척들이었다. 박 씨는 자신의 친척들에게 “주식 투자로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수억 원을 빌렸다. 하지만 이 돈은 고스란히 박 씨의 개인적 용도로 사용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씨는 또 다른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이번엔 새로운 사기 ‘아이템’을 추가했다. 자신이 다닌다는 유명 대기업 사장 A 씨의 내연녀 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 경찰은 박 씨가 “당시 A 씨가 언론 등에 여러 차례 보도되는 것을 보고 이러한 생각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박 씨는 또 자신의 남동생도 범행에 끌어들였다. 당시 박 씨 남동생 역시 신용불량자였고 직업이 없는 상태였다. 박 씨 남동생은 자신이 활동하던 스포츠 동호회 회원들로부터 “누나가 대기업 사장의 애인인데 관계 청산을 대가로 계열사 스톡옵션을 받기로 했다. 이것을 장외에서 거래하면 수십 배의 차익을 얻을 수 있다”며 10억 원이 넘는 돈을 끌어들였다. 지금까지 박 씨 남매로부터 사기를 당한 것으로 밝혀진 피해자 7명 중 대부분이 박 씨 남동생과 함께 스포츠를 즐겼던 사람들이었다. 박 씨 남동생은 회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누나로부터 받은 돈으로 외제차를 구입하고 고급 술집에서 여러 차례 술을 사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 씨 남동생은 누나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대기업 직원인 누나가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 오히려 그는 동호회 회원들로부터 받은 투자금 중 일부를 빼돌리는 식으로 누나를 속이기까지 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 남동생이 가로챈 돈만 3억 원가량인데 대부분이 유흥비로 쓰였다고 한다. ‘배달사고’가 난 줄도 모르고 박 씨는 맹활약(?)을 펼친 동생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척척 내줬다. 박 씨 자신도 고가의 사치품을 사는 등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자신의 친척들로부터 빌린 돈의 일부를 갚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박 씨 남동생은 누나의 말이 모두 거짓임을 알게 됐다. 누나가 벌인 사기 행각에 자신도 모르게 공범이 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기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허위 공증이 더해진 위조문서를 보여주며 더욱 손쉽게 투자자를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박 씨 남동생에게 돈을 빌려준 피해자 중 한 명이 박 씨가 그 대기업에 근무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 피해자는 바로 피해사실을 경찰에 신고했고 박 씨 남매는 7월 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피해액은 20억 원가량이지만 추후에 접수된 피해액을 합치면 40억 원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지금도 피해자들의 신고가 계속되고 있어 피해금액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박 씨는 자신의 사기 행각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피해자들을 찾아가 “고소를 하지 않으면 꼭 돈을 돌려주겠다”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돈을 돌려받기 위해 신고를 하지 않고 있는 피해자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추정이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돈을 벌기 위해 그랬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 남동생 역시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고 한다. 경찰은 박 씨가 실제로 그 대기업에 근무했는지 확인해봤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측은 “수사 결과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그 회사와 A 사장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박 씨의 일방적인 자작극”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우선 평범한 가정주부였다던 박 씨가 과연 혼자서 문서를 위조하고 허위공증을 작성하는 방안을 생각해냈을지 의문이 간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보통의 경우 일반인들이 이런 방법을 알기는 어렵다. 박 씨의 이력을 감안하면 누군가 도와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경찰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박 씨의 단독 범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박 씨가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해 ‘A 사장의 스톡옵션 장외거래’를 언급한 부분에도 의문이 남는다. 경제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사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 이러한 정황을 보면 박 씨가 ‘평범한 가정주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밖에 피해자들이 박 씨 남매의 말만 듣고 선뜻 거액의 돈을 빌려준 것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