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그 후 공주에서는 부녀자들이 하나둘 홀연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종된 여성들은 하나같이 공주 소재 야산 등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이번에 김원배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80년대 충남 공주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일명 ‘공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연쇄강간살인범, 계룡산 늑대 강춘삼’이라는 제목의 수사파일을 재구성한 것이다.
우선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발견 당시 홍 여인은 옷이 벗겨진 상태로 물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외상이 없는 데다가 계곡 주변에서 홍 여인이 멱을 감은 흔적이 발견돼 홍 여인의 죽음은 심장마비에 의한 단순변사로 처리됐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는 무더운 여름에 멱을 감다 변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발생한 한 여인의 죽음은 그렇게 ‘단순 사고사’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7개월 후인 84년 2월 21일 공주에서 또 한 명의 부녀자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실종자는 역시 공주시 ○○면에 사는 이정금 씨(가명·51)로 실종 당일 내흥리에 소재한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며 집을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약 두 달 후 이 여인 역시 내흥리의 한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국과수 감정 결과 외상이 없는 데다가 위액에서 독극물도 발견되지 않는 등 타살로 단정지을 만한 단서들이 발견되지 않아 이 여인의 죽음도 단순 변사사건으로 처리되고 만다.
몇 달 간격으로 발생한 두 부녀자의 죽음이 범죄에 연루된 낌새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그해 여름, 공주시 ○○면에 사는 박정순 씨(가명·21)가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에게 변을 당할 뻔한 사건이 발생하면서였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8월 19일 오후 2시경 박 씨가 용봉리에 소재한 소룡골 산길을 지날 때 사건이 일어났다. 인적이 드문 길이긴 했지만 대낮인 데다가 평소 익숙한 길이라 박 씨가 별 경계 없이 길을 가고 있었는데 웬 남자가 숲에서 뛰쳐나왔다고 한다. 그 남자는 박 씨를 가로막고 낫으로 위협하며 ‘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박 씨를 깊은 산속까지 끌고간 그 남자는 박 씨를 성폭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박 씨가 소리를 지르며 격렬히 반항하자 그 남자는 포기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박 씨는 저항하는 과정에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변을 피할 수 있었다. 벌건 대낮에 마을 야산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강간미수사건은 소리소문 없이 퍼져 부녀자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주민들의 경계 때문이었을까. 한동안 공주에서는 이렇다 할 강력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채 예전의 평화로운 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하지만 마을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박 씨 강간미수사건이 발생한 지 약 1년이 지난 85년 8월 말 또 한 건의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공주시 ○○면 마티고개 인근의 한 계곡에서 한 여성의 변사체가 발견된 것이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사체는 완전히 부패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현장에는 범인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더구나 나중에 알고보니 피해자는 외지인인 탓에 실종신고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사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어떤 수사도 진행되지 않았던 셈이었다. 한참 후에 밝혀진 사실이었지만 네 번째 피해자는 21세의 젊은 여성이었다. 하지만 부패가 워낙 심해 사인규명조차 어려웠다. 관광객인 이 씨는 마티고개 인근에 있는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길이었던가 보더라.”
이 사건 역시 목격자가 없었다. 결국 타지에서 온 젊은 여성의 석연찮은 죽음은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만다.
그로부터 5개월 후인 87년 1월 29일 조용한 시골마을을 또다시 공포에 떨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다섯 번째 피해자는 공주시 ○○면에 사는 주부 김명자 씨(가명·47)로 암자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며 집을 나선 것이 마지막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그녀가 평소 다니는 길과 사찰 주변, 인근 야산 등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헛수고였다.
그런데 이런 경찰의 수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 달 후인 87년 2월 28일 공주시 ○○면에서 여섯 번째 사건이 일어났다. 이곳에 사는 서혜숙 씨(가명·57)가 또다시 사라졌던 것이다. 수사 결과 사건 당일 서 씨는 마을 외곽에 위치한 교회에 간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실종 당일 저녁 8시경 버스정류장에서 서 여인을 봤다는 목격자가 있었다. 정황상으로 볼 때 서 여인은 예배를 마친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는 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사흘 후 서 여인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발견 당시 서 여인의 사체는 볏짚으로 덮여진 채 농로에 버려져 있었는데 목에 찰과상이 있는 데다가 버선과 팬티가 벗겨져 있는 상태였다. 명백한 강간살인이었다.”
공주시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부녀자들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관할서는 발칵 뒤집혔다. 특히 서 씨의 사건을 계기로 수사팀들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끼게 된다. 홀로 길을 나섰던 부녀자가 홀연히 사라져 사체로 발견되는 사건들이 분명 어떤 연관이 있음을 짐작케했던 것이다. 그간 사인을 알 수 없었던 피해 여성들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가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일곱 번째 피해자가 발생하기까지는 불과 한 달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87년 4월 1일 공주시 ○○면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이금순 씨(가명·47)가 사라진 것이다. 실종 당일 장사에 필요한 간이 상수도 호스를 점검하러 간다며 집을 나선 것이 마지막이었다.
3년 9개월 동안 공주시에서 부녀자 6명이 실종돼 사체로 발견됐고 한 명이 ‘변’을 당할 뻔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충격을 받은 경찰은 무려 60여 명의 강력반 형사들을 차출해 수사팀을 꾸렸다. 수사팀은 그간 사인불명으로 변사처리됐던 사건들까지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홀로 집을 나선 부녀자들이 변을 당했고 △살인 전에 강간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 △사체가 인적이 드문 야산이나 계곡 등지에 유기되어 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범행수법이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리고 낮시간대 인적이 드문 곳에서 범행을 시도한 것으로 보아 범인은 공주 일대 지리에 익숙하고 또 일부 피해자의 발견 당시 상태로 보아 돈이나 금품갈취보다는 성적인 욕구에 집착하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피해자를 강간한 후 살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이 제기됐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동일범에 의한 연쇄강간살인으로 가닥을 잡은 수사팀은 공주시내 동일수법 전과자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실시했다. 그러던 중 수사팀은 한 스님으로부터 중요한 진술을 듣게 된다. ‘키 165cm가량의 30대 남자가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미티고개 정상에서 내리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 남자는 항상 검정 옷을 입고 다녔는데 눈이 사팔뜨기였다’는 진술이었다.”
스님의 진술대로라면 그 남자는 분명 수상한 인물이었다. 불자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불공을 드리러 가는 사람들이 주로 타는 버스를 타고가다 아무 것도 없는 고개 정상에서 자주 내렸다는 사실은 충분히 의심할 만했다. 그리고 얼마 후 수사팀은 또 한 건의 중요한 첩보를 듣게 된다.
“당시 공주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85년에 공주시 ○○면에서 한 남자가 같은 마을에 사는 부녀자를 상대로 몹쓸 짓을 벌인 사건이 있었는데 당사자끼리 합의를 보고 조용히 무마했다’는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형사들의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84년 여름에도 한 남자가 동네 주민을 상대로 성폭행을 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었던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공주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과 동일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형사들은 당시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결국 당시 피해자와 합의를 본 남자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문제의 남자는 공주시 ○○면에 사는 독신남 강춘삼 씨(가명·30)였다. 놀랍게도 강 씨는 스님이 목격한 수상한 사내와 인상착의가 비슷했다. 은밀히 내사를 진행한 수사팀은 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하고 강 씨의 집을 급습했다. 잠을 자고 있던 강 씨는 “잡으러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라는 말로 순순히 경찰의 체포에 응했다.
조사 결과 강 씨는 홀로 외진 길을 지나는 부녀자들을 위협, 강간하고 범행은폐를 위해 목을 졸라 살해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간 단순 변사처리됐던 여성들도 모두 강 씨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강 씨의 첫 번째 범행은 83년 7월의 마지막 날, 아주 우연히 시작됐다. 공주시 ○○면에 소재한 한 계곡 근처로 꼴을 베러 간 강 씨는 계곡에서 멱을 감는 주민 홍영숙 씨를 발견하고 몹쓸 마음을 품게 된다. 강 씨는 홍 여인의 머리를 물에 집어넣어 실신시킨 뒤 강간했다. 그리고 범행을 숨기기 위해 홍 여인을 익사시킨 강 씨는 사체를 물속에 넣어 유기한 뒤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첫 번째 범행이 의외로 쉽게 성공하자 강 씨는 외진 길에 혼자 다니는 부녀자들을 상대로 성적 욕구를 풀기로 마음 먹었고 이후 이를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순진한 시골 총각이었던 강 씨는 어쩌다 강간·살인마가 된 것일까. 강 씨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몹시 어려운 생활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정형편상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강 씨는 형의 집에 얹혀살면서 시멘트 미장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강 씨는 사팔뜨기인 데다가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갖고 있었으며 10대 때부터 간질병까지 앓아왔다고 한다. 게다가 강 씨의 주변에는 그를 보듬어줄 사람도 그가 의지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강 씨는 항상 외톨이였고 어릴 때부터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여자들은 강 씨가 쳐다보기만 해도 기겁을 하며 도망가거나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했다고 한다. 외적인 콤플렉스와 그로 인한 주변사람들의 놀림과 왕따가 계속되면서 강 씨의 마음속은 분노로 가득차 갔다. 특히 결혼도 하지 못하고 여성들에게 무시당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해오던 강 씨는 서서히 여성에게 증오심을 품게 되고 급기야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여성들을 상대로 자신의 비뚤어진 성욕과 분노를 표출했던 것이다.”
6명의 무고한 여성들을 강간·살해한 강 씨는 뒤늦게 자신의 범행을 참회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은 것으로 전해진다. 90년 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강 씨는 참회의 표시로 자신의 눈과 신장을 기증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