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에 나선 경찰은 숨진 남성이 이 아파트 3층에 살던 김 아무개 씨(54·무직)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이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김 씨의 부인 한 아무개 씨(46·상담심리사). 한 씨는 경찰에서 “남편이 자살한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약 석 달 후인 지난 10월 16일 자살로 추정됐던 이 남성을 죽게 만든 범인이 밝혀졌다. 놀랍게도 범인은 바로 남편의 사망에 눈물을 글썽거리던 그의 부인 한 씨였다. 과연 이들 부부에겐 어떤 악연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7월 2일 발생한 김 씨의 추락사건은 “남편이 자살한 것 같다”는 부인 한 씨(46)의 진술에 따라 일단 종결된 것처럼 보였지만 경찰은 수사를 계속해 왔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은 애초부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자살을 하려면 옥상에서 뛰어내리든가 했을 텐데 김 씨가 뛰어내린 곳이 고작 3층 높이인 자신의 집이었다는 점이 우선 의심스러웠다. 3층에서 뛰어내리면 자칫하면 죽지도 못하고 고통만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김 씨가 생각 못했을 리가 없다는 것.
또 김 씨 누나의 진정서도 의심의 단초가 됐다. 김 씨의 누나는 자살할 이유가 없는 동생이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고로 숨지자 “동생이 집을 나와 우리집에 왔었다”며 “누군가에게 끌려간 것 같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냈던 것.
그러나 무엇보다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결정적 단서는 김 씨가 죽던 당일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이 들었다는 “살려달라”는 김 씨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자살을 할 사람이 었다면 “살려달라”고 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경찰은 본격적인 재수사에 들어갔고 결국 김 씨의 부인 한 씨가 남편을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한 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기에 이른다.
같은 날 오후 1시경 이를 알게 된 한 씨는 곧바로 자신의 내연남 박 아무개 씨(42)에게 연락을 취했다. 한 씨는 박 씨에게 함께 남편을 협박해 가지고 나간 돈 1억 원을 받아내자고 제안했고 박 씨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것.
당일 김 씨의 누나 집에서 김 씨를 발견한 한 씨는 “우선 집으로 가서 얘기하자”며 그를 달래 용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유인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김 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박 씨의 주먹다짐과 발길질이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후 박 씨는 김 씨의 온몸을 청테이프로 묶고 김 씨를 한 쪽 방에 감금했다.
악몽 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한 씨와 박 씨는 김 씨가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하루에 누룽지 한 끼만 주면서 수시로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폭행했다고 한다.
감금 사흘째인 지난 7월 2일 오전 김 씨에게 마침내 탈출의 길이 열렸다. 묶어뒀던 청테이프가 3일째가 되자 느슨해져 풀고 도망칠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문으로 빠져나가려던 김 씨는 박 씨와 한 씨에게 곧 발견됐고 급한 마음에 “살려달라”고 외치며 베란다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김 씨가 당일 오후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의 부인 한 씨의 “자살한 것 같다”는 어설픈 거짓말은 경찰의 끈질긴 수사로 석 달여 만에 들통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한 씨와 박 씨는 경찰에서 김 씨에 대한 폭행 부분은 한사코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는 “박 씨와 나는 내연관계도 아니고 남편을 폭행한 적도 없다”며 “가져간 돈을 돌려받으려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하지만 김 씨를 감금해 김 씨가 탈출하기 위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게 만든 상황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한 씨와 그의 내연남 박 씨는 지난 16일 ‘감금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