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따르면 범인 김 아무개 씨(43)는 두 사건 모두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연습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때는 가족들과 잘 지냈고 이웃들로부터도 좋은 평을 들었던 김 씨가 돌변한 이유는 뭘까.
지난달 27일 오전 9시 30분경 옥천경찰서 수사과로 한 여성과 어린 딸이 한꺼번에 숨진 채 발견됐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자는 숨진 여성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인 김 아무개 씨와 친분이 있던 한 지인. 신고자는 “김 씨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내와 딸이 죽어 있다고 나한테 전화를 걸어와 내가 대신 신고를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즉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그곳에서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다. 숨진 백 아무개 씨(여·35)는 목과 배 등 10여 곳을 흉기에 찔려 숨진 채 안방에 쓰러져 있었고 바로 옆에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딸이 질식해 숨져 있었다. 수사경력이 10년 이상 되는 베테랑 형사들조차도 당시 상황을 “지금껏 본 사건 중에 가장 참혹한 광경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곧바로 현장조사에 착수한 경찰은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전혀 없고 사라진 금품도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범행이 면식범의 소행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다. 또한 백 씨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으로 보아 필시 원한에 의한 살인 사건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경찰이 가장 먼저 주목한 사람은 바로 숨진 백 씨의 남편인 김 씨였다. 여러 가지 정황이 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살인사건 당일 경찰에 출두한 김 씨는 “처남이 운영하는 포장마차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사우나에 들렀다가 아침에 집에 들어갔다”며 “집에 들어가 보니 안방에 아내가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 수사 결과 김 씨의 진술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사우나 주인도 김 씨가 왔었다고 확인해줬다. 김 씨의 지인들 역시 김 씨와 함께 아침까지 술을 마셨다고 증언했다. 김 씨의 알리바이는 완벽했다.
하지만 김 씨의 진술에는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경찰이 주목한 것은 우선 김 씨가 아내와 딸의 사망을 신고한 시간. 김 씨는 오전 8시경에 숨진 아내와 딸을 발견했다고 말했지만 경찰에 신고가 걸려온 시간은 그로부터 1시간 30분이나 지난 오전 9시 30분이었다. 경찰은 김 씨가 그토록 늦게 신고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김 씨가 경찰에 직접 신고하지 않고 그의 지인을 통해서 했다는 점도 의심이 갔다. 김 씨는 “아내와 딸이 숨져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친한 사람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고 주장했다.
의심이 풀리지 않은 경찰은 김 씨에게 “아내와 딸을 당신이 살해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지만 김 씨는 끝까지 부인했다. 그러나 김 씨의 거짓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현관과 엘리베이터에 설치돼 있던 CCTV 테이프에 오후 11시경 집을 나서는 김 씨의 모습이 있었던 것. 백 씨와 아이의 사망추정 시간은 10시였다. 김 씨는 애초에 “아내는 나와 함께 술을 마시다 많이 취해 지인을 시켜 11시경에 집에 데려다 주게 하고 나는 아침까지 술을 마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CCTV에는 8시경 남편 김 씨와 함께 귀가하는 부인 백 씨의 모습이 찍혀 있었고, 11시경 김 씨가 집을 나서는 장면도 찍혀 있었다.
경찰이 내민 CCTV 영상을 본 김 씨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시간을 잘못 알았나보다” 등등 온갖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찰의 계속된 추궁에 결국 김 씨는 범행을 시인했다. 김 씨는 “아내가 너무 사치스럽게 생활을 하며 빚을 지기 시작해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김 씨의 아내가 1억 원짜리 생명보험에 들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은 보험금을 노린 범행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김 씨가 사건 당일 지인들과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사우나에서 잤던 것 등은 모두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김 씨는 “아이는 죽일 마음이 없었는데 시끄럽게 울어서 술김에 목을 졸랐다”고 자백했다. 김 씨가 지목한 집 앞 공터에서 범행에 사용됐던 흉기도 찾아냈다. 수사가 곧 종결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수사팀은 김 씨가 2년 전 한 사건의 용의자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2년 전 김 씨의 노부모가 방화사건으로 숨졌고 당시 김 씨가 방화 용의자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은 노부부의 동반자살로 종결된 상태였다.
사건은 지난 2006년 7월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부부의 집 거실에서 시작된 불은 노부부가 잠들어 있던 안방까지 번졌고 이들은 소방관에 의해 구조됐지만 병원으로 옮겨진지 이틀 만에 숨을 거뒀다.
불이 난 장면을 목격했던 이웃집 사람은 “노부부의 아들로 보이는 사람이 집에서 뛰쳐나온 뒤 집에 불이 났다”고 증언을 했다. 하지만 김 씨의 아내 백 씨가 “남편은 어젯밤에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었다”고 증언을 하면서 김 씨는 경찰의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노부부가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숨졌기 때문에 이 사건은 노부부의 동반자살로 종결됐다.
하지만 경찰은 김 씨가 여전히 미심쩍었다. 처자식을 살해한 김 씨의 잔인성은 노부부 집 방화사건에 대해서도 충분히 혐의를 둘 만했다는 것. 이에 경찰은 당시 사건에 대해서도 추궁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자포자기했는지 범행 일체를 털어놓았다. 당시 사업을 하다 수억 원의 빚을 진 김 씨는 부모님이 살고 있던 집에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노부모가 집을 파는 것을 반대하는 상황이었지만 집은 이미 자신에게 증여된 상태였기 때문에 부모님만 사라지면 맘대로 처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것. 김 씨는 얼마 후 이를 실행에 옮기고야 말았다.
김 씨는 “범행 하루 전날 부모 집을 방문해 뒷문 시건장치를 해제해둔 뒤 새벽에 이 문으로 들어가 부모님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거실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지른 뒤 빠져 나왔다”고 자백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상당히 태연하게 범행을 자백했다고 한다. 외아들로 자란 범인은 평소 부모님과 특별한 원한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가족들과의 관계도 무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주변에 친구도 많았고 이웃의 평도 좋았다. 한 주민은 “평소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도 잘하고 부부관계도 좋았었다”고 말했다.
동국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곽대경 교수는 이 같은 김 씨의 이중성에 대해 “주변에서 착한 이웃, 착한 가장의 이미지를 쌓아왔다는 점에서 범인이 ‘지킬박사와 하이드’같은 인물로 보인다”며 “최초 범죄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자기합리화가 심해지고 범죄가 더욱 대담해졌다”라고 말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의 이수정 교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족들 즉, 부모와 아내 심지어 자식까지 살해한 김 씨는 이상성격장애자로 보인다”며 범인 김 씨를 사이코패스로 규정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