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 신용카드에 사용된 실물 카드, 신용카드 위조 장비, 위조 카드, 5만 원 현금다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책상 서랍에는 5만 원권 뭉치가 수북했다. 방 한편에 놓여 있는 책가방 안에는 카드 복제기가 다량으로 발견됐다. 도무지 중학생의 방에서 발견되기 어려운 물품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자 형사들조차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지난 2월 27일 경찰은 경기 남양주에 있는 이 아무개 군(15)의 집을 찾아 카드 복제가 다량으로 이뤄졌던 범죄 현장을 포착했다. 경찰은 입국기록이 없는 외국인의 신용카드가 계속 결제되고 있다는 카드사들의 제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위조로 추정되는 신용카드 내역을 추적해 사용처 인근에 CCTV와 피의자들의 동선을 파악했다. 신원을 확인해보니 위조 신용카드를 사용한 이는 놀랍게도 중학교 3학년 이 군이었다.
경찰에 체포된 이 군은 “잘못을 인정한다”며 고개를 떨궜다. 경찰 조사 결과 이 군의 ‘색다른’ 카드 위조수법과 방대한 사용 규모가 드러났다. 이 군은 3만 원짜리 개인정보를 사들여 손쉽게 위조 신용카드를 만들었고, ‘2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계산하고 다녔다. 이 군이 만든 위조 신용카드는 약 ‘60장’에 달했다.
이 군의 카드 위조수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이 군은 우선 해외 인터넷 쇼핑몰에서 시가 15만 원 정도인 ‘리드 앤드 라이터’ 두 대를 샀다. 리드 앤드 라이터란 카드 마그네틱에 정보를 입력하는 기계로 통상 회원카드를 관리할 때 사용되는 기기다.
이후 이 군은 해외 메신저를 통해 외국인들의 개인정보를 사들였다. 주로 이 군은 채팅을 통해 외국인들에게 개인정보를 사겠다며 접근했는데, 미국인 개인정보는 건당 1만 원에서 3만 원, 유럽인 개인정보는 7만 원씩 주고 구입했다.
개인정보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결제는 철저하게 ‘비트코인’으로 했다. 온라인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금융기관 등을 거치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개인끼리 직거래할 수 있어 흔적이 남지 않는다. 개인 정보가 어느 정도 모이자 이 군은 국내 ‘대포 카드’ 판매상을 찾아 실물 카드를 구입했다. 이후 실물 카드를 리드 앤드 라이터에 넣어 그동안 구입한 외국인 개인 정보를 마그네틱에 덧씌웠다. 이렇게 카드 한 장을 위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0초’였다.
이 군이 제조한 위조 카드는 놀랍게도 별다른 이상 없이 결제가 가능했다. 이 군은 용산 전자상가 등에서 부피가 작은 컴퓨터 부품을 사며 위조 카드를 시범 사용했다. 결제가 손쉽게 되자 신이 난 이 군은 중학교 친구들을 모았다. 이 군 외 친구들 다섯 명은 위조 신용카드를 들고 편의점, 노래방 등을 돌며 유흥에 흥청망청 쓰기 시작했다. 경찰 관계자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유흥이라고 술 마시고 그런 건 아니고 사격연습장에 가서 놀거나 PC방 정액권을 끊어서 사용하는 식이었다”라고 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대포차, 대포폰 등도 구입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위조 신용카드를 사용한 횟수가 795회, 액수는 약 2억 원에 달했다.
자신감이 붙은 이 군은 자신의 위조 비법을 전수해주기도 했다. 이 군으로부터 리드 앤 라이터기와 비법을 전수받은 송 아무개 군(19)은 신용카드 29매를 위조해 4000만 원을 부정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승승장구했던 이 군의 범행은 약 4개월 만에 경찰의 끈질긴 추적으로 결국 덜미를 잡혔다. 체포 직전 대포차를 운전했던 이 군과 친구들은 실수로 앞차를 들이박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군이 대포차를 인터넷에서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대포차 판매업자를 추적 중”이라며 “이 군은 학교도 그만둔 적 없고 겉보기엔 평범한 중학생이다. 다만 머리가 조금 좋아 보이고 이전에도 동종 전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리드 앤 라이터를 이용한 카드 위조 범죄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최근 이 군과 비슷한 수법으로 카드 위조를 한 위조범 8명을 구속하고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리드 앤 라이터가 불법 기기는 아닌데 최근 불법으로 많이 악용되고 있다. 카드 거래 시 카드 겉면과 매출전표상의 카드 번호 등을 면밀히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당부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