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아무개 씨(71)의 말에 사업가 김 아무개 씨(61)의 눈이 번쩍 띄었다. 타이어 판매 대리점과 유아복 사업으로 연 수십억대 매출을 올리던 사업가 김 씨는 항상 ‘민원 창구’가 절실했다. 그러다가 마침 우연히 알게 된 민 씨가 청와대 직원으로 스카우트됐다니 귀가 솔깃했던 것. 당시 동네 우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민 씨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었다.
민 씨에게 공을 들인 김 씨가 그 결실을 맺게 된 순간은 지난 2004년이다. 무려 18억 원을 투자한 인·허가 사업이 좌초를 맞으면서 김 씨는 사업상 큰 위기를 맞았다. 김 씨는 곧바로 민 씨를 찾았다. 곰곰이 김 씨의 말을 듣던 민 씨는 “내가 인·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힘을 써 주겠다. 내가 경기도 의원, 이명박 대통령 처남과도 잘 안다”라고 김 씨를 안심시켰다.
민 씨는 인맥을 동원하려면 접대비가 필요하다며 김 씨에게 계속 돈을 요구했다. 그렇게 김 씨가 2011년까지 전달한 돈은 450여 차례 총 ‘7억여 원’에 달했다. 하지만 민 씨가 약속했던 인·허가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김 씨는 급기야 파산 위기에 몰렸다.
그래도 민 씨를 철석같이 믿던 김 씨는 매형에게 손을 벌려 민 씨에게 돈을 건네려 했다. 매형은 그런 김 씨와 민 씨의 관계가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매형은 급기야 지난해 11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국정원에 민 씨의 재직 여부를 확인하는 편지를 넣었다. 답신 내용은 놀랍게도 ‘민 씨는 청와대 근무 직원이 아니다’라고 적혀있었다. 매형은 민 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17일 민 씨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민 씨가 빚을 갚느라 생활비가 부족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라며 “계좌추적을 통해 민 씨의 여죄를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 직원을 사칭한 전직 우체국장의 말로는 일단 구치소행을 면치 못하게 됐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