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출신 아마추어 선수가 곧장 해외로 직행한 경우 KBO는 규정에 따라 2년간 국내에서 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정수민과 남태혁은 그 2년을 군 복무로 대신했다(대부분의 해외파가 이 기간에 군복무를 마친다). 정수민은 지난 3월 현역 제대했고, 남태혁은 오는 9월 중순 공익근무에서 소집해제될 예정이다.
시카고 컵스에서 활약한 후 현역 복무까지 마친 정수민이 NC 다이노스의 선택을 받았다. 왼쪽은 싱글A에서 뛰던 2009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모습. 사진제공=n2shot.com
“정말 긴장했어요. 드래프트에 참가하기 전, 8월 3일 고양야구장에서 열린 해외파 트라이아웃에 나가 각 구단 스카우트 앞에서 테스트를 치렀거든요. 그때보다 드래프트 현장이 더 떨렸던 것 같아요. 마지막 순서에라도 제 이름이 불렸으면 했어요. 군 복무로 2년여의 공백이 있었기에 구단에서도 저에 대해 긴가민가 하는 시각이 있었을 텐데 NC에서 제 이름을 첫 번째로 불러주더라고요. 정말 감격했습니다(웃음).”
현재 부산 동의대에서 훈련 중인 정수민은 원래 가고 싶었던 팀이 NC 다이노스였다고 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어느새 정수민한테 미국 마이너리그 생활은 추억 속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게 됐다. 혹자는 마이너리그 출신 해외파들의 한국 유턴에 대해 ‘실패’라고 단정 지어 말하지만, 선수는 그에 대해 또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딱 잘라 말하면 실패한 게 맞아요. 하지만 지금 제 야구인생이 끝난 게 아니잖아요.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실패다, 성공이다 말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전 그때도 미국 진출을 선택할 겁니다. 아무리 마이너리그라고 해도 그런 기회가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설령 고생만 하고 돌아온다고 해도 그 안에 배움과 경험이 있는 것이고, 한국이 아닌 미국의 마이너리그 선수들과 경쟁을 벌이며 성장한 터라 앞으로의 야구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아직 실패한 선수가 아닙니다.”
정수민이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을 때는 나름 유망주로 꼽히며 구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천천히 단계를 밟아 올라가던 중 2011년 어깨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1년간 재활군에 머물렀다가 방출 통보를 받은 것이다. 계속 미국에 남아 다른 팀의 테스트에 응하기도 했지만 병역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인 것 같아 귀국을 결정했다고 한다.
“최전방 복무를 자원한 것은 공익근무보다 현역 입대가 3개월가량 기간이 축소되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위의 GOP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1년 9개월 동안 야구는 할 수 없었지만, 덕분에 어깨를 제대로 쉬게 할 수 있었어요. 남자가 군대 다녀오면 철이 든다고 하던데, 딱 제 경우입니다.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NC 다이노스 지명 소식을 듣고 제일 반가워했던 사람은 가족들이었고, 그중에서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미국에 간 이후 단 한 번도 정수민이 야구하는 걸 직접 보지 못했던 할머니는 내년 시즌부터 NC 유니폼을 입고 활약할 손자 모습에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고 한다.
“가끔 후배들이 물어요. 해외 진출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물론 한국에서 프로를 먼저 경험하고 도전하는 것도 좋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과감히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마이너리그를 경험하고 돌아와 한국에서 프로야구 선수로 뛰다가 나중에 다시 메이저리그 문을 노크할 수도 있잖아요. 전 지금 그 꿈을 갖고 있습니다.”
전체 1번 지명권을 가진 kt 위즈가 LA 다저스에 입단했던 거포형 우타자 남태혁을 호명해 야구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연합뉴스
“정말 부담이 컸어요. 혹시나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주위에선 ‘된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도 하고. 그런데 신인드래프트 시작하자마자 kt에서 제일 먼저 제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얼떨떨했던 거죠. 무엇보다 kt라서 더 좋았어요. 신생팀에선 많은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직 공익근무 중인데 소집해제가 며칠 안 남았으니까 점점 기대가 커져요. 빨리 선수단에 합류해서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요.”
5년여 동안 미국에서 단체훈련보다는 혼자 운동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남태혁은 한국 프로야구 선수단 문화가 많이 그리웠다고 말한다.
“미국은 팀 훈련이라고 하지만 결국 개인 운동이잖아요. 훈련 시간도 짧고. 한국은 훈련도 많이 하고, 선후배 사이의 끈끈한 정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훈련이라고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국에서의 남태혁은 이상하게 부상이 잦았다.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에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번번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시합 뛰다가 뇌진탕도 당하고, 이빨이 깨진 적도 있고,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도 하고…. 중요한 시기 때마다 다쳤어요. 그러다보니 상위 단계로 올라가야 하는데도 부상으로 재활군에 머무는 바람에 그 기회를 놓치곤 했죠. 절망감이 엄청 났어요. 한두 번도 아니고 반복해서 안 좋은 일이 생기니까요. 무엇보다 한국에선 제가 체격이 큰 편인데, 미국에선 평균이었어요. 거기선 거포가 아니었던 셈이죠. 그리고 은근히 자행되는 인종차별도 무시 못했습니다. 결국 거듭된 부상이 절 한국으로 돌아오게 만든 원인이 됐습니다.”
남태혁은 2013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류현진과의 만남을 잊지 못한다. 마이너리그 캠프와 메이저리그 캠프가 맞닿아 있는 터라 류현진과 인사를 나누게 됐고, 짧은 친분을 만들어갔다고 회상한다.
“현진이 형이 메이저리그에 첫 발을 내딛던 상황이었어요. 형이 현지 상황을 잘 몰라 제가 몇 가지 일들을 도와줬습니다. 그 당시 행복한 상상을 했었어요. 제가 하루 빨리 성장해서 빅리그로 올라가 현진이 형이랑 한 팀에서 야구하는 상상을요. 꿈이 참 야무졌죠.”
남태혁도 다시 인생의 진로를 선택할 기회가 온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120% 다시 (미국으로) 갈 거예요. 돈 주고도 못 배우는 야구 경험, 인생 경험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그걸 알기 때문에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어요.”
한편 이번 신인드래프트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뛰었던 외야수 나경민(24)이 3라운드 24순위로 롯데 자이언츠에 호명됐고,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출신인 김동엽(25)은 9라운드 86순위로 SK 와이번스에 지명됐다. 재미교포 투수 이케빈(23)은 지난해 8월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 입단 후 드래프트를 준비했는데 원더스가 해체되는 불운을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국에서 훈련을 계속한 덕분에 삼성 라이온즈 2라운드 1순위에 뽑히는 행운을 안았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스카우트가 말하는 고교 출신 해외진출 “고생 두렵다고 포기하면 안돼” 많은 고교 야구선수들이 ‘제2의 추신수’를 꿈꾸며 메이저리그에 노크한다. 시카고 컵스는 권광민에게 120만 달러(약 14억 2000만 원)의 많은 계약금을 안겼다. KBO리그를 거치지 않고 미국에 직행한 한국인 아마추어 선수 중 역대 7번째로 높은 계약금이었다. 권광민은 기자회견을 통해 “3년 안에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겠다”라고 말했지만 이전 미국에 진출했던 한국 선수들의 사례를 봤을 때 권광민의 목표는 일단 ‘꿈’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빅리그에 진출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히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도 2000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 후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기까지 6~7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추신수는 거액의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맺으며 성공했지만, 대부분의 어린 선수들은 마이너리그의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유턴하거나 아예 야구를 접기도 한다. 시카고 컵스와 입단계약을 한 장충고 권광민. 연합뉴스 “만약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야구할 수 있는데, 고생할 게 두려워 미리 포기한다면 그건 운동선수의 마인드가 아니다. 편하려고 야구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한국 프로야구를 일찍 경험하는 것보다 일단 미국에 진출해서 선진 야구 경험을 쌓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실패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2군 선수들이 1군에 올라가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있지 않나. 즉, 야구 할 사람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어디에서든 야구를 할 것이고, 잘하는 선수는 어느 리그에서도 인정받으며 살아남을 것이란 얘기다.” 박찬호 이후에 미국 진출을 꾀했던 선수들 중에는 한국 에이전트의 사탕발림에 속아 미국에서 고생만 하고 돌아왔다는 무용담이 소문처럼 나돌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서도 성민규 스카우트는 “에이전트는 선수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계약을 이끄는 사람이다. 에이전트에게 미국 생활의 도움을 바라는 건 한국적인 마인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