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스포츠도박 파문에 휘말린 KBL이 프로농구 개막을 강행했다. 12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와 안양 KGC 인삼공사의 개막전 모습. 오리온의 장재석, KGC의 오세근, 전성현 등 양팀의 기둥 선수들이 도박 혐의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승부조작 및 불법도박 파문으로 직격탄을 맞은 팀은 김선형과 오세근을 잃은 서울 SK와 안양 KGC 인삼공사다. 고양 오리온스 장재석도 ‘대어급’이지만 김선형, 오세근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더욱이 선수 한두 명의 기량에 좌우되는 농구에서 주축 선수들의 이탈은 곧장 팀 전력 손실로 이어진다.
SK 나이츠 김선형
SK 구단은 10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대학 재학 시절 불법 스포츠 도박을 했다고 스스로 인정한 김선형이 깊은 반성과 함께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수사 결과에 따른 법률적 책임과 KBL의 징계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A 해설위원은 “누구보다 김선형의 이름이 불법 스포츠 도박에 오르내렸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면서 “물론 철없던 대학 시절에 저지른 일이고, 이미 KBL에 자진 신고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선형이 갖고 있는 프로농구의 상징성으로 인해 농구인들도, 팬들도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선형이 2013년 신인 오리엔테이션 당시 설문 조사에서 자신의 불법 스포츠 도박을 자진 신고했기 때문에 정상 참작을 해야 한다는 KBL의 입장에 대해서 A 위원은 “아직도 KBL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정상 참작을 하려 했다면 2013년에 그 사실을 공지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그때는 쉬쉬하고 있다가 사건이 밝혀진 후에 정상 참작하겠다는 건 결코 선수를 위한 행동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선형은 이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목사로 사역 중이라고 밝히면서 “아버지가 목사님이시기 때문에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행동을 조심하는 편이다. 만약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아버지는 물론이고 종교가 욕을 먹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쑥대밭이라는 표현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이러다가 정규리그 1라운드에서 1승이라도 거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
KGC의 오세근(왼쪽)과 전성현이 불법 도박 혐의로 출전보류 처분을 받았다. 사진제공=KBL
오세근과 전성현을 빼고 시즌을 치르는 김승기 감독대행은 “쑥대밭이 됐다”는 표현으로 복잡한 심경을 대신했다. 사실 인삼공사는 선수들 이름만 놓고 보면 올 시즌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강병현, 양희종, 오세근, 박찬희, 이정현에다 검증이 필요 없는 최정상급 외국인 선수, 찰스 로드의 파워는 인삼공사의 전력을 급상승시켰다. 그런 가운데 전창진 감독 문제부터 오세근, 전성현까지 악재들이 쏟아지면서 팀이 구심점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센터 장재석이 불법 스포츠 도박 혐의로 한동안 뛸 수 없게 된 고양 오리온스는 앞선 SK와 인삼공사에 비해 타격이 덜한 편이다. 김동욱, 이승현에 문태종과 애런 헤인즈가 뛰고 있고, 슈터 허일영과 베테랑 김도수도 포진돼 있다. 그러나 오리온스의 센터로 활약했던 장재석이 빠지면서 높이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승현이 대표팀에 뽑히면서 그 공백까지 채워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오리온스는 타 구단 감독들로부터 우승 확률이 가장 높은 팀으로 꼽힌다.
한편 KBL은 지난 8일 재정위원회와 긴급 이사회를 열고 경찰 수사를 받은 프로농구 선수 11명에 대해 경기 출전 보류 처분을 내렸다. 서울 SK 김선형, 인삼공사 오세근과 전성현, 원주 동부 안재욱과 이동건, 인천 전자랜드 함준후, 울산 모비스 신정섭, 창원 LG 유병훈, 고양 오리온스 장재석, 부산 KT 김현민과 김현수가 불법 도박 혐의로 수사를 받아 ‘기한부 출전 보류’ 처분 조치를 받았다.
‘기한부 출전 보류’는 혐의 사실이 최종 확정되는 시점에 다시 재정위원회를 열어 해당 선수들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는 절차다. 따라서 해당 선수들은 지난 12일 개막한 2015-2016 KCC 프로농구 경기에 혐의 사실이 최종 확정될 때까지 출전하지 못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음주운전 사고 KCC 김민구 컴백 뒷얘기 허재 감독 사퇴소식에 눈물 뚝뚝 음주운전 사고로 큰 부상을 입었던 전주 KCC 김민구가 돌아왔다. KBL은 음주사고에 대한 징계를 출전 정지 없이 경고와 사회봉사활동으로 결정했다. KCC 측은 아직 김민구가 1군 무대에서 제대로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농구 인생을 포기할 뻔했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시 코트로 돌아온 김민구에 대한 관심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비난과 응원이 더해지면서 말이다. KCC로 돌아온 김민구(왼쪽)와 KCC를 떠난 허재 감독. 김민구의 복귀를 지켜보는 농구팬들은 자연스레 허재 전 KCC 감독을 떠올리게 된다. 허 전 감독은 김민구의 사고와 부상으로 팀 전력에 큰 손실을 입었지만 김민구의 회복을 돕기 위해 강원도 태백에서 고관절 회복에 좋다는 고가의 약술을 구입해서 전달했을 만큼 김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허 전 감독은 감독 사퇴 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민구가 사고 났을 당시엔 중요한 시기에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폭발했지만 선수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선 병원에 가기가 두려웠을 정도였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허 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퇴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민구가 미안한 마음에 울었다는 소식을 듣고 허 전 감독도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내용인데, 내가 물러났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민구가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 어린놈이 여기 와서 크고 싶었는데, 부상으로 뛰지도 못하고, 팀 성적은 하위권에서 맴돌고, 감독은 그만두고…. 모든 게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민구가 더 이상 가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수 관리도 감독 몫이고, 선수단을 이끄는 것도 감독이 하는 일이다. 우리가 이렇게 헤어지게 된 것은 서로의 운이 안 맞았을 뿐이다.” 허 전 감독은 사퇴 전에 김민구가 코트에서 뛰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지금은 밖에서 응원하고 있지만, 그는 제자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회복하는 데에만 집중하길 바랐다. 그러면서 남긴 한마디가 짠하다. “민구가 코트에서 뛰어다니는 걸 보면 마음이 울컥할 것 같아.” [영] |
김승기 KGC 감독대행 인터뷰 “그분의 피가 흐른다…틀린 말은 아냐” 올 시즌 KGC 인삼공사 김승기 감독대행처럼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내는 이도 드물다. 이미 팀의 감독이 승부조작 혐의로 사퇴를 했고, 주축 선수들은 불법 스포츠 도박 혐의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전 감독이 사퇴할 당시 자신도 그 뒤를 따르려 했지만, 여름 내내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의 눈빛을 떠올리곤 물러나지 않고 남아서 버텨내자고 마음먹었단다. 도박 혐의를 받고 있는 전창진 전 감독을 대신해 벤치를 지킨 김승기 감독대행.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후 김 대행의 ‘그 분’ 발언을 놓고 농구계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새 시즌의 각오를 말하는 자리에서 승부 조작 혐의를 받고 사퇴한 전임 감독의 이름을 거론한 것은 경솔했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김승기 감독대행과 문제의 발언에 대한 배경을 직접 들어봤다. ―미디어데이에서 전창진 전 감독을 거론한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까지 전 감독님 밑에서 농구 지도하는 걸 배웠고, 인삼공사도 감독님의 팀이었기 때문에 좋지 않은 상황에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성적을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물론 감독님 이름을 거론하는 것과 관련해서 비난 여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독님의 혐의가 입증된 것도 아니고, 여전히 검찰 조사 중이고, 어떤 결론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감독님을 비난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물론 그런 말을 함으로써 ‘김승기도 전창진이랑 똑같은 놈이다’, ‘김승기도 조사해봐야 한다’라는 비난이 있었다고 하더라. 하지만 난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안 날 자신이 있다. 무엇보다 선수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관리하는 것과 관련해선 전 감독님이 최고였기 때문에 그 분의 피가 흐른다고 말한 것은 좋은 뜻의 메시지였다.” ―오세근과 전성현이 불법 스포츠 도박 혐의로 전력에서 제외됐다. 타격이 엄청날 것으로 보이는데. “정말 ‘멘붕’이 왔다. 오세근도 오세근이지만 전성현은 올 시즌을 앞두고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들어 놓은 선수였다. 외곽에서 3점슛 5개는 꽂아 줄 수 있는 자원이었다. 컨디션이 최고라 내심 올 시즌 히트상품으로 전성현을 꼽을 정도였는데, 이런 일이 ‘뻥’ 하고 터진 것이다. 강병현, 양희종 말고는 주전으로 뛸 만한 선수가 없다. 5명의 선수를 말 그대로 꾸역꾸역 맞춰서 내보내는 상황이다. 농구는 주전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종목이다. 그런데 주전들이 대거 이탈한 상황에서 시즌을 맞이하다 보니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가 심하다.” 2014년 부산 KT에서 감독과 코치로 호흡을 맞춘 전창진 전 감독(오른쪽)과 김승기 감독대행. 사진제공=KBL “희망? 글쎄, 방송용으론 희망을 운운해야 하는데, 현 상황이…. 지금 전력에서 부상 선수가 한 명이라도 나오게 될 경우 우린 어마어마한 데미지를 입는다. 경기도 경기지만, 나가 있는 선수들이 돌아올 때까지 부상자 없이 시즌에 임하는 게 관건이다.” ―코치로 오랫동안 활약하면서 언젠가는 감독을 맡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감독대행이지만 그래도 팀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다. “물론 감독이 되는 꿈을 꾼 적은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팀을 맡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10년여 동안 코치 생활을 해왔는데 지금까지 경험한 최악 중 이번이 가장 심한 최악이다. 그래도 난 여기서 죽지 않을 것이다. 죽으려 했다면 이전에 물러났다. 독한 승부사의 기질을 보이고 싶다.” ―오세근, 전성현과 대화를 나눠봤나. “당연하다. 자신들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컨디션 조절은 하고 있지만, 게임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을 했다. 큰 돈이든, 작은 돈이든 (도박을) 한 건 한 거다. 누구 탓 하지 말고, 조사가 끝난 후 제대로 벌 받고, 그 다음에 코트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난 두 선수들이 한 번의 실수로 농구 인생 전체가 망가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지금의 아픔과 좌절을 잘 견뎌내서 코트로 돌아와야 한다. 팬들한테 진 빚을 코트에서 갚아야 한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