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예계를 가장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 가운데 하나인 안재환의 죽음. 수사기관에선 ‘자살’로 최종 발표했다. 고인의 죽음이 알려진 직후부터 의혹을 제기한 유가족은 검찰에 탄원서까지 내면서 강하게 재수사를 촉구했고 거듭해서 재수사가 이뤄졌지만 최종 수사 결과는 ‘자살’이었다. 그럼에도 유가족은 여전히 고인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애초 유가족이 제기한 의혹은 상당 부분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우선 자살 방식에 대한 의문이다. 더위를 못 견디는 고인이 더운 여름날 차량 안에 연탄불을 피워 자살했다는 부분과 배고픔을 극도로 싫어하는 고인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위가 비어 있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고인의 누나인 안미선 씨는 “차라리 겨울에 얼음물에 빠져 자살했다면 믿었을 것”이라 항변한다.
남겨진 증거들 사이에도 의혹이 있다. 우선 사체가 발견된 차량 안에서 발견된 담배꽁초가 모두 같은 담배가 아닌 여러 개의 다른 종류 담배라는 점. 이에 대해 안 씨는 “이것이 차량 안에 누군가가 더 있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또한 사체 바로 옆에 있던 음료수가 엎질러 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는 부분도 의문이다. 안 씨는 “자살하려 했다 해도 더위를 못 참는 동생이 괴로워하다 조금만 몸을 뒤척였어도 음료수가 엎질러졌을 것”이라며 “이미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동생을 누군가 차량으로 데려와 눕힌 뒤 연탄불을 피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의혹이 해소됐다. 담배꽁초의 경우 유전자 감식 결과 단 한 개를 제외하곤 모두 동일인이 피운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위가 비어있고 소주 빈 병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빈속에 술을 마셔 만취하면 연탄가스를 마셔 괴로워도 꼼짝할 수 없는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찰의 수사 발표 내용이다. 더운 날 연탄을 피운 자살 방식은 일본 연예인의 사례를 모방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애초부터 자살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업 실패로 사채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정황이 확실한 데다 4개의 유서까지 남겼기 때문. 재수사에 들어갈 즈음 만난 노원경찰서 형사1팀 김성철 반장은 “자살이 확실하다”면서 “유가족이 유품만 찾아가면 수사 종결될 사안인데 아무래도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지 자살임을 믿지 못하는 것 같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사망추정 시점을 두고는 여전히 의혹이 남아있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고인의 마지막 행적은 2008년 8월 22일 오전 10시 39분 노원구 하계동 소재의 한 가게에서 번개탄을 구입한 것으로, 경찰은 이것을 토대로 그날 저녁 무렵을 사망 시간으로 추정하고 있다.
▲ 최근 고 김성재의 모친이 아들의 죽음과 관련 목소리를 내 눈길을 끌고 있다. | ||
지난 2007년 2월 애인의 집 욕실에서 스테인리스 수건걸이에 목욕용 거품수건으로 목을 매 숨진 정다빈의 자살 역시 의문사로 남았다. 고인의 죽음이 알려진 직후부터 소속사는 연이어 의혹을 제기했지만 유가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듭되는 소속사의 의혹 제기에 결국 유가족이 동의해 발인을 앞둔 시점에 사체 부검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유가족인 고인의 모친이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해 재수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고 정다빈의 죽음은 고 김성재의 의문사와 닮은 부분이 많다. 사망 즈음에 애인이 함께 있었다는 점과 활동을 한창 하려던 상황이라는 점 등이 그렇다.
소속사 측에서 제기한 의혹은 이렇다. △전 소속사와 분쟁이 그 즈음 모두 해결됐다는 점 △이에 따라 공백을 깨고 새로운 작품에 출연하기로 확정해 강한 의욕을 보인 점 △그 즈음 유니가 자살하자 연예인의 자살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 점 △그리고 한 달 뒤인 3월엔 정선희와 동남아시아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돼 있던 점 등이다. 이런 심정적인 의혹 외에도 사체를 둘러싼 의혹도 있다. 정다빈의 소속사였던 세도나미디어 관계자는 “자살하는 사람은 보통 입을 벌리고 사망하는데 정다빈은 사망 당시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면서 “얼마나 꽉 깨물었는지 입 주위가 시커멓게 변했을 정도”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이웃 주민에게 “한밤중에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하면서 타살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자 고인의 애인 이강희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는데 소속사에선 그의 진술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우선 당일 고인이 술에 만취했다는 이강희의 진술과 달리 취하지 않았다는 다른 이의 진술이 나왔고, 이미 한 차례 자살을 시도해 주저흔이 있었다는 이강희의 진술과 달리 유가족은 주저흔이 아닌 학창시절 다친 흉터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소속사에선 그의 경찰 진술서가 일목요연하게 잘 쓰인 점까지 의혹으로 제기했을 정도다.
그러나 경찰의 최종 결론은 자살이었다. 부검까지 했지만 타살의 정황이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강희를 향한 세간의 눈빛도 의혹에서 연민으로 변했다. 신인 연예인이던 이강희는 얼마 뒤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개봉되는 등 본격적으로 연예계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세인들 앞에 나서지는 않고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현재는 군복무 중이다.
▲ 고 안재환의 발인. 맨 왼쪽 반쯤 실신한 상태로 업혀 있는 정선희가 보인다.(위) 정다빈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사망 시각 즈음 같이 있던 애인에게 관심이 집중됐었다 . | ||
안재환이 세상을 떠나기 바로 하루 전인 8월 21일 배우 이언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새벽 1시 30분경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한남동 고가도로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경추 골절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이언 역시 많은 의혹을 남겼다.
이번에도 의혹을 제기한 것은 소속사였다. 애초 의혹은 사건 당시 정황에 의한 것들이었다. 이언이 갑작스럽게 차선을 변경할 이유가 없으며 가드레일과 충돌해 이언이 떨어진 뒤 바이크가 운전자 없이 앞으로 나간 게 뒤쪽에서 충격을 받아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렇지만 이런 의혹보다는 개인과실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에 더 무게감이 실렸다.
그런데 소속사에서 CCTV 기록과 목격자 증언 등을 확보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소속사는 이를 바탕으로 재수사를 의뢰했다. 목격자로 나선 이는 한 택시기사. 사고 상황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외제 고급 승용차가 비상등을 켜고 사체 앞에 서 있었으며 누군가가 이언을 흔들어 깨우려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것. 그는 “워낙 차들이 빨리 지나는 곳이라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해도 차를 세우기 불가능한 지역이었다”며 “당연히 그 차가 바이크를 쳤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료 택시기사가 고인의 바이크와 외제승용차가 충돌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꾸고 경찰 증언을 거부했다는 얘기도 전했다.
하지만 용산경찰서는 개인 과실에 의한 교통사고로 수사를 종결지었다. 소속사 측이 제기한 뺑소니 여부를 밝힐 증거나 목격자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 역시 사고 상황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었다. 소속사에선 사건 현장 주변에 플래카드까지 붙이며 목격자를 찾았지만 결국 목격자는 나서지 않았다.
이제는 소속사와 유가족 역시 경찰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목격자가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 소속사 관계자는 “(이)언이를 위해서라도 의혹을 남기지 않기 위해 유가족에게 위임을 받아 재수사를 요구했던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