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말의 대가로 스타덤에 오른 김구라는 평소 책과 신문을 꼼꼼히 챙겨 읽으며 방송 내공을 쌓는다고 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가히 김구라 전성시대다. 유재석과 강호동이라는 확고한 투톱이 버티고 있는 예능계에서 김구라는 자신만의 색깔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그만큼 요즘 가장 바쁜 MC는 단연 김구라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들과 자주 만나고 있는 것. ‘막말의 대가’로 스타덤에 오른 김구라는 호감과 비호감 사이를 오가며 팬들의 지지와 비난을 경험해야 했지만 이제는 비로소 그의 막말 콘셉트가 대중적으로 통하는 시대가 왔다. 말 그대로 ‘막말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다시 말해 ‘김구라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그를 만나 솔직 담백한 인터뷰의 시간을 가졌다.
김태진(태진): SBS 공채 개그맨 출신인데 참 많은 길을 돌아왔어요. 무명 시절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왜 흔치 않은 막말과 독설을 콘셉트로 잡았는지 궁금해요.
김구라(구라): 전략, 뭐 그런 건 아니고 인터넷 방송이 처음 시작될 때라 뭘 몰랐던 거지. 룰도 없었고. 공중파도 아니니 편하게 해야겠다, 딱히 격식 갖출 필요 없다는 생각만 했어요. 다만 뭔가 차별화된 게 필요하단 생각만 막연하게 했었는데 편하게 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욕도 나왔고 반응이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 나중엔 일부러 그런 면도 좀 있고. 그 후유증을 지금까지 겪고 있어요. 고생까진 아니지만 아직까지 뒷수습하러 다녀야 하니까.
태진: 그냥 누구 욕했다고 떴다면 잠깐 주목은 받다 말았을 텐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유는 ‘김구라는 뭔가 알고 그런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인 것 같아요.
구라: 그러게. 그때 팬클럽 보면 의외로 전문직이 많았어요. 뭐 내가 크게 가치관이 비뚤어진 사람도 아니고 내가 많이 배우고 똑똑한 건 아니지만 그 사람들 듣기엔 맞는 얘기였나봐요. 또 전달 과정이 거칠긴 해도 재밌잖아요. 인터넷 방송 하면서 나중엔 책임의식이 생겨 신문이랑 책을 많이 본 것 같은데 그 노력으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태진: 그러다 보니 진보적 연예인이란 얘기도 있어요. KBS 라디오 하차할 땐 마치 투사처럼 비춰지기도 하던데.
구라: 인터넷 방송할 때 연예인은 물론 사회 저명인사에 여야 정치인까지 거침없이 비판하니 그렇게 보였겠죠. 공중파에서 활동하는 지금은 또 다르죠. 제도권 안에 들어오니 한계가 있고 또 그 쪽 룰에 따라야 하니 모습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물론 내가 386 세대라 아무리 그쪽(운동)에 관심이 없어도 성향 자체는 진보에 가까울 순 있죠. 그런데 진짜 진보주의자들이 보면 나는 사이비예요. 난 단지 시사 문제에 관심이 좀 많을 뿐이니까. 또 언젠가 정치 풍자 코미디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더 공부하는 것일 뿐이니까.
김구라는 준비된 연예인이고 지금도 늘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대기실에 먼저 도착해 있던 김구라는 신문을 꼼꼼히 읽고 있었다. 인터뷰 당일 오전 폭설이 내려 대부분의 다른 출연자가 지각을 하고 그의 매니저 역시 늦었지만 그는 제 시간에 도착해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한 감기 기운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라: 그렇죠? <명랑 히어로>가 초창기엔 다소 시사적이었는데 그 전부터 그런 방송을 준비하고 트레이닝 해왔어요. 내 개인적인 목표는 45세 즈음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거예요. 공부를 해야 말의 무게가 실리니까. 그 즈음 본격적인 정치 풍자 코미디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요.
태진: 혹시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생각 아니세요?
구라: 주변 연예인들 가운데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도 있고 그런 행보 걷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절대 아니에요. 내 일신의 목표는 나이 들어서까지 방송 열심히 해 편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거예요. 올해 마흔 살인데 이경규 선배를 보면서 ‘저 선배 나이까지는 경쟁력 있게 방송 해야지’란 생각을 항상 해요. 또 우리야 인기 떨어지면 방송 떠나면 그만이지만 정치판은 추락할 경우 구속되잖아요. 난 그런 배짱 없어요.
태진: 인터넷 방송 당시엔 연예계의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자주 지적했는데 실제 연예계에 들어와서 보니 그런 문제점들이 어떻게 보이나요?
구라: 연예계 인사이드에서 보니 정말 왜곡된 부분이 많더라고요. 종종 나도 루머에 휘말리곤 하는데 정말 터무니없는 내용이 많아요. 예전에 내가 그런 걸 가지고 연예계를 마구 비판했던 게 참 안타깝기도 하고.
태진: 루머는 그렇다 쳐도 연예계의 구조적 문제점은 분명 존재하잖아요.
구라: 물론 내가 느끼기에도 구조적인 문제점들은 분명 있어요.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런 얘길 할 상황은 아니잖아요. 물론 사석에선 그런 얘기도 할 수 있지만 뜬금없이 <명랑 히어로>나 <황금어장>, <세바퀴> 같은 데서 얘기할 순 없잖아요. 예전에 <놀러와>에서 이경규 선배랑 같이 2008년 연예계를 진단했었는데 동료 연예인들도 재밌다고 그러더군요. 그건 어느 정도 공감했다는 얘기죠. 나중에는 연예 전문 프로그램 MC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그러려면 먼저 연예인들이 충분한 프로 의식을 가져야 해요. 내가 해당 연예인에게 악감정이 있어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연예인들이 먼저 받아들이는 풍토가 정착돼야죠. 지금 그러면 나만 ‘또라이’가 될 테니까.
물론 여전히 김구라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 최근에는 홍석천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는데 선배 개그맨 최양락은 “당하는 사람도 웃을 수 있어야 진짜 개그”라며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김구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카메라 밖에선 오히려 예의 바른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태진: 실제 성격과 방송 성격 사이에 차이가 많은 것 같아요. 방송 콘셉트와 달리 평소 모습은 예의 바른 연예인이란 얘기도 들었어요. 정말 실제 성격은 어떤 편인가요?
구라: 예의 바른 게 아니라 무관심한 거죠. 제가 워낙 좋아하는 것에만 관심 있고 다른 것엔 관심이 없는 편이라 오히려 예의 바르단 얘길 듣는 것 같아요. 성격 좋은 선배들은 대기실에서 후배들한테 먼저 말 걸고 장난도 치고 그러는데 난 그냥 보면 인사만 하는 편이에요. 그런 모습이 방송이랑 너무 달라 그런 얘길 듣는 것 같아요. 물론 나 자체가 사소한 걸로 욕먹는 걸 안 좋아하는 편이라 평소에 안 그러려고 노력하기는 해요. 사실 평소에도 방송에서 하듯 주변 사람을 대할 순 없잖아요. 나이 먹어서 처음 보는 후배한테 막 말을 놓고 그럴 수도 없고, 또 그런 게 먹히는 세상도 아니고.
태진: 기사를 검색해보니 김구라와 김제동이 대표적인 말 잘하는 MC인데 김구라가 막말 전성시대를 맞아 뜨고 있지만 ‘바른 말’ 김제동은 다소 시들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구라: 시대적 상황인 것 같아요. 제동이랑 굉장히 친한데 제동이도 분명한 자기만의 색깔이 있어요. 정선희나 김제동은 굉장히 논리정연하게 말 잘하는 애들이잖아요. 다만 제동이는 태생적으로 나랑 달라요. 난 카메라에 불 들어오면 전투적으로 변하는데 그 친군 정반대에요. 제동이도 고생을 많이 해 조금은 거친 면도 있어 나랑 둘이 있으면 정말 잘 통하고 재밌어요. 그래서 내가 “야! (방송에서도) 이렇게 가는 거야!”라고 말하곤 하는데 막상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면 제동이는 그걸 못해요. 체질적으로 그런 거야. 그런 차이가 있는 건데 제동이도 한때가 있었고 저도 뭐 한때겠죠. 저라고 쭉 가겠어요? 제동이도 사이클이 있고, 기본기랑 콘텐츠가 있는 애니까 나중에 또 올라가겠죠. 난 또 내려오면 내려가는 거고.
태진: 요즘 예능 프로그램은 마치 술자리에서 대화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방송 보면서 저런 연예인들은 술자리에서 정말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실제로 술자리에서 가장 재밌는 동료 연예인은 누군가요?
구라: 사적으로 만나면 뭐 다 비슷비슷하죠. (신)정환이도, (윤)종신이 형도, (이)경규 형도 그렇고. 그런데 오히려 난 사적인 자리 가면 별로 얘길 안하는 편이에요. 내가 사적인 자리에서 제일 재밌게 만나는 사람은 좀 뜬금없지만 부활의 김태원이에요. 정말 재밌어. 옛날 얘기 들으면 너무 재밌어요. 얼마 전에도 (홍)서범이 형하고 (김)태원이 형이랑 만나서 술 한잔 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내가 워낙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지 옛날에 음악했던 사람들 얘기가 너무 흥미롭거든요.
정리=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