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뿐만 아니라 예능 방송에서도 남다른 끼를 발산하고 있는 박준규. 그가 말하는 예능 비법은 ‘힘 빼고 내뱉는’ 꾸밈없는 태도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여전히 촬영 현장에선 주위를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인 그는 늘 웃는 얼굴로 동료들과 드라마 촬영에 열심이다. 그를 만나 요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태진(태진):어떠세요? 요즘 드라마 반응이 너무 좋은 것 같은데.
박준규(준규):나름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특히 아줌마들이 좋아해주는 것 같고.
태진:가부장적이지만 딸들 때문에 눈물짓는 연기가 너무 멋져요. 이런 진지한 연기는 오랜만인 것 같아요.
준규:본래 시놉시스도 그렇고 초반부에는 진지하고 가부장적인 모습이 강했는데 가면 갈수록 박해미랑 유치한 코미디를 하는 장면이 많아져요. 그런 유치한 코미디가 사실 정말 쉽지 않은 연기인데 (박)해미랑은 동갑이고 성격도 비슷해 연기 호흡이 잘 맞아 다행이에요. 다른 여배우였으면 좀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태진:출연 작품을 정할 때마다 고민이 많겠지만 이번 드라마는 더욱 그랬을 것 같아요.
준규:아버지 역할은 좋은데 딸들 나이가 좀 많았어요. 벌써 50대 초·중반 역할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거든(실제 그는 40대 중반이다). 아시는 분들하고 얘길 해봤는데 나이 든 역할을 일찍 하는 게 연기자에겐 좋은 면이 있다고들 그러더라고요. 너무 자기 또래 역할만 고집하면 그만큼 한계가 많아지는 거라고.
태진:액션부터 코믹까지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셨는데 본인과 잘 어울리는 장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준규:젊은 시절에 액션 연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쌍칼’ 연기를 할 때가 가장 편했죠. 대사 분량이 너무 많은 게 좀 흠이었지만. 사실 코미디가 어려워요. 자꾸 뭘 만들어내야 하니까. 같은 코믹이라도 예능 프로그램에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만 보여주면 되지만 코믹 연기는 또 달라요. 작가들이 조금 오버해서 쓴 대본을 자연스럽게 연기로 소화해야 하니까.
태진:예능 프로그램에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감각이 뛰어나세요. 어지간한 후배 연예인보다 더 젊은 감각의 소유자 같고.
준규:예능 프로그램에선 ‘자기 위치’와 ‘자신감’이 포인트예요. ‘이게 웃길까’ ‘내가 저 사람보다 못나가는 데 어쩌나’ 등을 생각하면 안돼요. 자신만만하고 편하게 ‘안 웃기면 말지’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유재석도 울렁증 있던 신인 시절엔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 드라마 <내 사랑 금지옥엽>에서 박해미와 함께한 박준규(위). 아래 사진은 <해피투게더>에 출연할 당시. | ||
준규:전혀 안 그렇죠. 여전히 내가 제일 밝아. 그런 건 내가 용납이 안 돼요. 늘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거든요. NG낼 때도 마찬가지고. 촬영하다 NG내는 건 죄가 아니에요. 연기는 배우가 분명한 선을 그어 놓고 어떤 연기를 어떻게 구상을 해서 하느냐가 중요한데 드라마에선 대사를 빨리 외우는 게 연기를 잘하는 기준이에요. 대본도 늦게 나오는 상황에서 금방 외우는 건 머리가 좋은 거지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니잖아요.
태진:예능 프로그램에서 종종 미국 유학 시절 얘길 하시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 시절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준규:다시 한 번 돌아가고 싶은 시절.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는데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보단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공부 좀 더 하고 미국 생활도 실컷 즐기고, 또 미국을 더 많이 배워가지고 나왔어야 하는데 그땐 그런 생각을 못했죠.
태진:미국 유학 시절에 좀 놀았다는 얘긴가요?
준규:놀았죠. 아버지가 돈을 많이 줬거든. 부잣집 아들이니 인생에 걱정이 없었어요. 미국에서도 풀장 있는 좋은 집에 비싼 차를 몇 대씩 갖고 있었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난 그렇게 자랐어요. 스물 대여섯 정도 됐을 때부터 가세가 기울어 철이 좀 늦게 든 편이에요. 어려서 놀아볼 걸 다 놀아본 터라 와이프 만나고 곧장 정신 차렸죠.
태진:아버님 얘길 하셨는데 부친 고 박노식 선생님에 대한 기억도 궁금해요.
준규:정말 대단하신 분이고, 늘 닮아가고 싶은 선배 배우시죠. 옛날에 우리 아버지 정도 되는 영화배우는 정말 신 같은 존재였어요. 우리 같은 경우는 TV만 켜면 나오지만 당시엔 박노식이라는 배우를 한 번 보려면 날 잡아서 극장에 가야 했으니까. 또 그땐 길바닥에서 우연히 그런 배우를 보면 돌아버릴 만한 일이었는데 요즘 연예인이야 방송국 주변에 가면 흔히 만날 수 있잖아요. 연예인의 개념이 달라진 것 같아요. 요즘 우리는 대중화돼 있으니까.
태진:아버님께 크게 칭찬받거나 혼난 기억도 있을 것 같아요.
준규:칭찬은 내가 연기를 시작하면서 많이 받았는데 아버님은 늘 뭘 지적하고 혼내기보단 칭찬해서 자신감을 북돋아주시는 편이었어요. 연기자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며. 물론 어렸을 땐 사고 치면 망치로도 맞아보고 골프채로도 맞아봤죠. 잘 때리시는 편은 아니었는데 한번 화나면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팼으니까. 골프를 치기 시작한 뒤 아버님 생각을 많이 해요. 어릴 때 아버님이 젊을 때 골프를 배워야 한다며 같이 하자고 하셨는데 난 골프보다 농구나 축구가 더 좋았거든. 아시아인이 세계를 재패할 수 있는 스포츠는 골프뿐이라던 아버님 말씀이 이제야 실감나요.
준규:나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를 둘러봐도 아역배우가 우리 나이 때까지 잘 풀린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고등학생인 큰놈이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는데 군 입대 직전이나 직후에 배우로 데뷔했으면 좋겠어요.
태진:둘째도 정말 끼가 있어 보이던데.
준규:끼는 있지. 그런데 그게 어떻게 풀릴지는 또 모르는 일이잖아. 그래서 어려서부터 이쪽 일을 하는 것은 싫어요.
태진:아버님한테 망치로까지 맞았다고 그랬는데 선배님도 엄한 아버지세요?
준규:그렇진 않지만 아빠가 화나면 정말 무섭다는 것 정도는 애들도 알고 있죠. 이것도 다 아버님한테 배운 거지 뭐. 같이 놀아줄 땐 격의 없이 지내지만 지킬 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갔다 들어오는데 현관까지 애들이랑 와이프가 안 나오면 굉장히 불쾌하거든. 나도 어린 시절엔 그렇게 했으니까. 집에 무서운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하고 그게 아빠라고 생각해요.
태진:반면 가족들에게 미안한 점도 많을 것 같아요.
준규:그거야 뻔하지, 뭐. 어디 놀러갈 때도 제대로 못 다니는 거. 연예인 부모도 좀 알아야 될 게 동네 찜질방을 하나 정하면 계속 거기만 가야 돼요. 처음에만 괴롭지 조금 지나면 다 익숙해지거든. 그걸 모르고 여긴 괴롭히니까 딴 데 가야지하고 다른 데 가면 또 괴롭혀요. 그냥 이웃이 되면 나도 편하고 애들도 편해지고 그렇거든.
태진:<내사랑 금지옥엽>을 보면 박해미 씨랑 서로 “꽃사슴” “허즈~”라고 부르며 정겹게 지내는 데 실제 집에선 어떠세요?
준규:우리 와이프 이름이 진송아인데 어려서 본인이 지은 별명이 ‘예쁜 송아’래요. 내가 “예쁜 송아 어디 갔니?”라고 부르면 정말 좋아해요. 자기도 같이 TV 보다 졸리면 “이제 예쁜 송아는 가서 자야지”그래요. 그게 너무 귀여워요. 부부는 그런 것 같아요. 누구 하나만 잘해서가 아니라 서로 잘해야 진짜 행복하거든.
정리=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