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은재 역의 장서희(왼쪽) 신애리 역의 김서형 | ||
드라마를 보기 위해 전 국민이 ‘귀가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아내의 유혹>. 평일 7시 반, 많은 시청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간대임에도 신드롬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아내의 유혹>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불륜, 이혼, 납치, 감금 등 안 나오는 소재가 없다. 지극히 통속적인 소재들에 과장을 덧입힌 <아내의 유혹>은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흔하게 쓰여 왔던 요소들의 극한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전 국민의 절반가량이 보고 있는 <아내의 유혹>. 다양한 취향을 가진 각계각층의 시청자들은 어째서 이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할까.
“막장의 끝을 한번 보고 싶어요. 제 생각인데 이러다 이혼한 신애리(김서형 분)가 임신해서 구은재(장서희 분)처럼 유산하는 복수도 당하지 않을까요?”, “구은재가 정교빈(변우민 분) 가정을 어떻게 파괴시키는지 보고 싶어요.”
강남의 한 카페에서 <아내의 유혹>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20대와 30대 여성 직장인이 ‘이 드라마를 왜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두 여성 모두 앞으로 어떤 자극적인 내용들이 전개될지가 가장 궁금하다고 했다.
주 시청층인 40~50대 여성들은 어떨까. 방배동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박 아무개 씨(여·47)는 “요즘 찜질방이나 목욕탕에 가면 <아내의 유혹> 얘기만 한다”며 “주인공들을 욕하면서도 바람피거나 맘에 들지 않았던 남편들에 대한 불만이 해소돼서 통쾌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한다.
남성 시청자들의 반응은 술집에서 쉽게 들어볼 수 있다. 마침 <아내의 유혹>이 방영되는 시간대에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던 남성들 중 회사원 한 아무개 씨(44)는 “지인들끼리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그래도 부부였는데 구은재가 다시 정교빈과 결혼해서 부부의 연을 맺게 돼도 정말 알아채지 못할까’라고 얘기한다”며 “정교빈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충격 받는 모습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전문직에 종사하는 김 아무개 씨(37)는 “어떻게 보면 우리 모습과 닮아있던 약자 구은재가 보란 듯 강해지고 멋있게 변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가지각색의 이유로 <아내의 유혹>을 보는 시청자들. 그렇다면 <아내의 유혹>처럼 소위 ‘막장드라마’라는 평을 받았던 드라마의 관계자들은 <아내의 유혹> 신드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극중 구은재의 복수 대상인 정교빈과 신애리. | ||
아침드라마 <흔들리지마>를 연출했던 이계진 PD는 ‘복수와 욕의 힘’에 무게를 싣는다. 이 PD는 “현업에서 느끼는 점은 욕을 먹는 드라마는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것”이라며 “특히 경기가 안 좋고 힘든 일만 있는 상황의 시청자들은 <아내의 유혹> 주인공이 답답한 상황에 있다가 나중에 철저히 복수해나가는 것’을 보며 통쾌해하는 것 같다”고 인기의 이유를 답했다.
<조강지처클럽> 때문에 수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욕을 먹은 배우 안내상은 “스케줄이 바빠 <아내의 유혹>을 보진 못하지만 탄탄한 연기력이 공감대를 형성, 인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 막장 드라마라는 욕은 먹지만 캐릭터에 몰입해 있는 배우로서는 어떻게 이 역할을 더 완벽히 소화해낼 것인가에 집중하기 때문에 몰입도 높은 연기가 나온다는 것. 덧붙여 안내상은 “사실 지금 <아내의 유혹> FD들이 <조강지처 클럽> FD들이다”라며 “<조강지처클럽> 출연진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막장 드라마 전문 FD들’이란 말도 하는데 이 점도 시청률에 조금은 일조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명품드라마’라는 평을 들었던 드라마 관계자들은 전국에 불고 있는 <아내의 유혹> 바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지난해 호평받았던 <달콤한 인생>의 김진민 PD는 “한 편의 동화 같다”고 평했다. 김 PD는 “권선징악이 뚜렷하고 이야기 구조가 심플해서 시청자가 보기가 쉽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진정성과 재미 중에 재미를 먼저 추구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런 점도 잘 맞물린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렇듯 시청자뿐 아니라 드라마 관계자들까지도 <아내의 유혹> 인기를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인기가 높아갈수록 ‘막장 드라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만 간다.
그 첫째는 드라마의 방향성이다. <흔들리지마>의 이 PD는 “막장 드라마의 신드롬은 1~2년 정도가 한계인 트렌드”라며 “이를 벗어나야 하는데 일단 시청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계속 답습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달콤한 인생> 김진민 PD 역시 “이런 경향으로 가다보면 드라마가 예능과 다른 게 뭔가, 나중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뭘 만들어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든다”고 우려했다. 이어 “사실 김수현 작가도 비슷한 소재를 사용할 때가 있는데 왜 김수현 드라마는 명품이고 <아내의 유혹>은 막장 소리를 듣겠는가”라고 덧붙였다.
방송사 시청률 경쟁 때문에 막장 드라마를 추구하는 것도 문제다. MBC의 한 관계자는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가는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나섰던 PD들이 시청률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는 일이 많다”며 “<사랑해 울지마>가 초반엔 명품이란 호평을 들었다가 자극적인 소재들을 끼워넣으며 막장 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경우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조강지처클럽>의 한 관계자는 “원래 대본에는 없었는데 당하는 사람이 더 아프고, 악행을 저지르는 이는 더 악해보이도록 설정을 바꾸는 일이 종종 있었다”며 “시청자가 욕을 하면서도 보니까 우리도 더 과장하는 면이 있다”고 속사정을 토로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한 드라마 관계자는 “<흔들리지마> 당시 스토리가 초기와 다르게 바뀌고 점점 격해지는 것을 본 남자주인공 김남진이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며 “다행히 양해를 구한 다음 촬영을 이어갔지만 작가와 연출자 사이, 연출자와 배우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소위 막장드라마에 참여하는 관계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최종적인 목표와 기획의도가 확실하니까 밀고 나간다”는 소신을 밝힌다. 전개과정에서 욕을 먹더라도 처음 의도만큼은 분명하게 보여주겠다는 것. <아내의 유혹>도 ‘확실한 권선징악’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에 대한 기대와 우려 속에 <아내의 유혹>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