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를 둘러싼 다양한 비리는 연예계와 그 역사를 같이한다. 그만큼 이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는 몇 년 간격으로 실시되는 검찰의 연예계 전반에 대한 비리 수사다. 지난 75년과 90년 두 차례 검찰의 대대적인 연예계 비리 수사를 담당했던 심재륜 변호사는 “75년 수사는 인기 드라마의 배역을 둘러싼 로비에 집중됐고 90년 수사는 가요계 비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며 “당시에도 성상납이나 술 접대와 같은 얘기가 있었지만 방송국 PD들이 연예인이나 연예기획사로부터 불법적인 돈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 더 심각했다”고 회상한다.
성상납이나 술 접대보다 방송국 PD의 비리에 수사의 포커스가 더 집중된 데에는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한몫했다. 오늘날에는 연예인이 선망직종이 될 정도로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딴따라’로 불릴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았다. 비밀리에 이뤄지긴 했지만 정·재계 고위층의 술자리에 연예인이 동석하는 사례가 빈번했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이런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90년대 중·후반을 거치며 연예계는 급성장을 거듭했다. 연예계가 산업화하기 시작하면서 전체적인 시장이 확대됐고 스타라 불리는 연예인의 영향력도 급성장했다. 더 이상 연예인이 강요에 의해 술 접대를 하고 성상납까지 하는 상황을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검찰은 지난 2002년 대대적인 연예계 비리수사에 돌입했고 이 과정에서 ‘PR비’와 ‘성상납’이라는 연예계의 오랜 고름의 존재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애초 PR비와 관련해 시작된 수사는 성상납까지 확대됐고 검찰이 중간 수사발표를 통해 성상납의 실체를 추적 중이라고 밝히면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이처럼 검찰이 강력한 수사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애초 의도처럼 PR비 관련 수사로 마무리되고 만 것. 게다가 수사 도중에 담당 부장검사가 바뀌었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부장검사이던 김규헌 검사가 충주지청장으로 발령 난 것.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좌천 인사라는 얘기까지 들려왔다.
그러자 용두사미가 된 연예계 비리수사에 대해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국정감사에서 “현직 국회의원들이 연예인으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 게다가 “수사팀이 관련 진술을 확보하는 등 진상을 파헤치려 했으나 켕기는 것이 있는 정치권의 간섭으로 부장검사가 지방으로 쫓겨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 의원의 지적대로라면 2002년 검찰의 연예계 성상납 관련 수사를 막은 이는 국회의원들인 셈이다.
하지만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김규헌 검사의 입장은 다르다. 우선 좌천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 김 검사 측에선 외형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당시 검찰 인사 분위기나 다른 임용 동기 검사들의 인사를 볼 때에도 좌천이라 얘기할 순 없다고 설명한다. 성상납 수사에 대해서도 첩보가 있어 수사에 착수했으나 구체적인 단서가 포착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성상납의 경우 첩보와 진술만으로는 수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한계가 분명히 있다.
지난해 또 한 차례 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가 이뤄졌지만 이번에도 방송국 PD들이 주식 등 새로운 형태로 PR비를 받는 비리로 수사 범위가 한정됐다. 그런데 장자연 문건 파문이 불거지면서 이번엔 경찰이 연예인 성상납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경찰 수사가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수사 흐름에서 결정적인 포인트로 보이는 대목을 경찰이 아닌 매스컴이 먼저 지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 것. 대표적인 사례가 고인의 소속사 전 사무실이다. 침대와 샤워시설까지 갖춰져 성상납 장소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곳의 실체 역시 매스컴을 통해 먼저 공개됐다. 사건 초기 경찰은 소속사 현 사무실 등 아홉 곳을 압수수색했지만 문제가 된 전 사무실은 제외됐다. 주변 관계자에 따르면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들러 물건을 챙겨갔다고 한다. 이미 결정적 증거물이 될지도 모르는 물품이 모두 치워진 뒤에야 경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
또한 경찰 수사 방향 역시 서서히 성상납에서 술 접대 강요로 흘러가고 있다. 수사의 핵심으로 부각됐던 성상납 리스트가 담긴 문건 확보 역시 요원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누군가 성상납 수사를 막고 있는 것일까. 2002년 국정감사에서 문제 제기를 했던 홍 의원은 매스컴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성상납 의혹을 받았던 기획사 대표와 장자연 씨가 소속된 기획사 대표가 동일인”이라며 “그때 제대로 수사가 이뤄졌더라면 지금 ‘장자연 리스트’와 같은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인의 소속사 김 아무개 대표가 2002년 연예계 비리 수사에서도 성상납 의혹을 받았다면 이번에도 국회의원과 같은 정계 고위층 인사들이 ‘보이지 않는 손’일까. 이번 장자연 문건 파문이 기존 연예계 비리 수사와 달라진 가장 큰 차이점은 정계 고위층 인사의 이름이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번에는 금융업 관계자, 대기업 관계자, 언론사 관계자, 방송국 PD 등이 성상납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고 조폭의 영향력도 사라진 뒤 정계 인사들까지 성상납 의혹에서 멀어졌지만 그 자리를 재계 인사들과 미디어 관계자들이 대신한 셈이다.
항간에는 현재 수사 선상에 오른 이들은 술 접대를 받았을 뿐이고 성상납을 받은 핵심 인물들은 아예 수사 선상에도 오르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현재 수사 선상에 오른 이들은 공개된 문건에서 실명이 거론된 자, 유가족이 성매매 특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한 자, 다른 목격자의 증언을 통해 고인과의 술자리에 동석한 정황이 있는 자 등이다.
실질적인 성상납 리스트가 담긴 문건은 경찰이 확보조차 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정·관계 고위층 인사부터 검찰과 경찰 관계자까지 다양한 이들의 실명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은 문제의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이들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 이런 까닭에 경찰이 리스트가 담긴 문건을 이미 입수했지만 그 사실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물론 이번 경찰 수사에 ‘보이지 않는 손’이 관여하고 있다는 추측 역시 확인된 사안은 아니다. 2002년 연예계 비리 수사와 마찬가지로 성상납 수사 자체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어 우선 확인이 가능한 술자리 접대 등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이 오해를 불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한 경찰이 늑장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치열한 특종 경쟁으로 매스컴이 너무 앞서 나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 논란은 향후 경찰의 수사 결과가 얼마나 만족스러우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