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200여 명의 취재진에게 점령당했던 경기도 분당경찰서 형사들은 요즘 심사가 편치 않다. 거의 매일 야근을 하다시피했지만 중간수사발표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너무나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판교 붕괴사고에 이어 고 장자연 문건 파문까지 올해 들어 제대로 쉴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지만 두 건 모두 편파·부실 수사 의혹에 휩싸이고 말았다. 한창 취재 경쟁이 치열하던 당시 안면을 튼 형사 한 명과 중간수사결과 발표 직후 만남을 가졌다. ‘편한 자리’를 약속하고 만난 터라 장자연 사건 수사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는 오가지 않았지만 당시 경찰서 분위기에 대해선 몇 가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미처 몰랐는데 연예계라는 곳이 참 복잡하고 구린 곳이더라. 특히 말이 너무 많다. 수사가 채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이미 엄청난 루머가 터져 나왔다.”
연예계에 떠도는 말의 위력은 참 대단했다. 한번은 관련 연예인을 방문 조사하는데 해당 연예인이 경찰에게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고 한다. 해당 연예인이 이번 사건에 깊이 개입했으며 경찰도 이를 수사 중이라는 루머에 격분한 것. 당시 경찰의 방문 조사는 루머와 무관한 내용의 단순한 관계자 진술 확보였다고 한다.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경찰서를 점령한 취재진을 의식해 소환에 응하지 않아 형사들이 일일이 방문 조사를 벌여야 했던 것. 사실 초기부터 결과가 뻔한 수사라는 얘기가 많았다. 장자연이 세상을 떠난 터라 피의자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빨리 일상에 복귀해 범죄자를 잡으러 다녀야 하는데 강력반 형사들이 그 건에 총출동했다. 팀장들만 남아 다른 사건을 모두 담당하느라 일손이 부족했다. 특히 유장호 대표 소환 수사 때에는 일손이 너무 없어 다른 팀 팀장이 조사실 앞에서 보초를 섰을 정도다.”
요즘 가장 난처한 상황에 처한 곳은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다. 주지훈을 불구속 입건하는 데까지는 좋았지만 추가 연예인 검거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준엽을 방문해 조용히 마약 투약 검사를 했는데 이에 격분한 구준엽이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에 강한 불만을 토로한 것. 서울경찰청의 한 형사는 마약수사대가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인권위 제소 얘기까지 나와 안타깝다고 얘기한다.
“연예인 마약 수사에는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지난 2007년 다른 경찰서에서 은밀히 마약수사를 진행했는데 언론을 통해 신하균 씨가 수사 선상에 올랐다는 기사가 보도돼 상황이 난처해졌다. 특히 신하균 씨가 자진해서 마약 투약 검사를 받아 혐의를 벗자 경찰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었다.”
마약 수사의 경우 제보가 중요하다. 복수의 관련자들로부터 마약을 투약했다는 확실한 진술만 확보되면 마약 투약 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올지라도 경찰은 기소를 한다. 그렇지만 연예인의 경우 진술이 있어도 음성 판정이 안 나오면 수사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검거보다 ‘제2의 신하균’ 방지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게 경찰이 처한 상황인지도 모른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가장 확실한 ‘편의 제공’(?)으로 매스컴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HOT 출신 가수 이재원이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직후 수십 명의 취재진이 경찰서로 몰려들었지만 담당 부서 팀장은 단 한마디도 답변하지 않았다. 아예 이재원이란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았을 정도. 게다가 합의로 석방이 확정된 뒤에도 경찰은 취재진이 대부분 돌아갈 때까지 이재원이 구치소에 머물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이재원의 구속 사실은 법원에 구속적부심을 받으러 온 모습을 법원 출입기자가 발견해 기사화되면서 알려졌는데 그전까지 경찰은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
“피해 여성이 사건의 언론 노출을 최대한 피해달라고 부탁해 어쩔 수가 없었다. 경찰 입장에선 국민의 알권리를 앞세운 기자들보다 피해자의 인권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는 게 경찰 측의 얘기다.
연예인 사건사고가 거의 없던 노원경찰서는 지난해 안재환 자살이라는 큰 사건을 맡았다. 수사 초기엔 형사들이 취재진에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자살로 수사가 일단락됐음에도 유가족의 거듭된 문제 제기와 재수사 요구로 수사가 늘어지면서 형사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수사 초기부터 기자와 친분을 쌓은 한 형사는 나중에 기자들이 무섭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처음엔 기자들이 몰려드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들도 고생하는 것 같아 도움을 많이 줬는데 나중엔 우리가 지쳤다. 정선희 씨와 유가족 등 관계자를 소환할 때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우리한테 조사받으면서 한 얘기랑 기자들에게 한 얘기가 서로 달라 재소환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연예인 수사에 외압이 많다는 풍문에 대해 대부분의 형사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물론 유명 연예인 수사에는 상부의 관심이 집중되곤 하지만 외압까지는 없다고. 다만 가족 친지들까지 큰 관심을 보이는 게 어려운 부분인데 특히 해당 연예인의 팬인 딸이 외압(?)을 행사해 난처했다는 형사도 있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