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디션을 보러온 가수 지망생들이 길게 줄을 선 채 대기하고 있다. | ||
지난 4월 <일요신문>에선 JYP엔터테인먼트(JYP)가 주최한 공개오디션 현장을 취재해 보도한 바 있다(<일요신문> 883호 참조). 한 번 공개오디션을 치르면 대략 500~600명이 몰려들지만 오디션을 통과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500~600명 가운데 오디션을 통과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확인 결과 단 한 명도 뽑히지 않는 공개오디션도 많아 ‘몇 대 일의 경쟁률’이라는 수치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다. 응시자의 대부분은 SM엔터테인먼트(SM) YG엔터테인먼트(YG) 등 유명 연예기획사 공개오디션에 매번 응시하는 이들로 같은 기획사 공개오디션에도 이미 여러 차례 씩 응시했던 경험자들이다. 말 그대로 하늘에 별 따기,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란 얘기다.
예를 들어 2NE1의 멤버 박봄은 수없이 공개오디션에서 떨어지며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매번 조금씩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 결국 YG의 연습생이 됐고 같은 그룹 2NE1의 씨엘은 데모테이프를 계속 우편으로 보냈지만 연락이 없자 직접 YG 사무실로 찾아가 건물 앞에서 며칠 동안 기다려 만난 양현석 대표에게 직접 데모테이프를 전달해 오디션 기회를 얻어 어렵게 연습생이 됐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뚫고 연습생이 되면 비로소 가수 데뷔의 길에 근접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어쩌면 이런 생각이 커다란 착각일 수 있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연습생이 된 이들과의 진검 승부를 벌여야 비로소 데뷔의 길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연습생 신분이 되면 해당 연예기획사 신인개발팀의 관리를 받으며 철저한 트레이닝 과정에 돌입한다. 통칭 연습생이라 불리지만 정확한 표현은 트레이닝을 받는 교육생이다. 먼저 해당 연예기획사와 계약을 체결한 뒤 교육생 프로필을 작성하고 출근카드까지 받아야 서류적인 과정이 모두 마무리된다. 계약 형태와 계약 기간은 연습생마다 천차만별이다.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기간이 길면 길수록 다른 연습생에 비해 데뷔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인 터라 기쁜 일이지만 이런 계약이 정식 데뷔 이후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전속계약 기간은 음반 발매 등의 활동 시작을 기점으로 해 연습생 시절은 전속기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 (위부터)YG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빅뱅, JYP 소속의 원더걸스와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의 2NE1. | ||
그렇다고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며 매주 두세 번만 하교 후 연습실을 찾아 수업 받으면 데뷔의 기회가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연습생은 거의 매일 나와 연습에 집중하는데 그들이 받은 출근카드는 그들의 연습시간을 기록되는 카드이기도 하다. 누가 더 많은 연습량을 보이는지가 출근카드에 기록되고 있는 것. 빅뱅의 태양은 연습생 시절 몸이 아파 병원에 가 링거를 맞았지만 링거를 다 맞자마자 쉬라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다시 연습실을 찾아 트레이닝 수업을 정상적으로 받을 정도의 열정을 보인 바 있다. 그러다보니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아예 학교까지 중퇴하고 연습에만 매달리는 경우도 종종 있어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 그룹 멤버들 가운데에는 중·고교를 자퇴해 검정고시를 준비 중인 이들이 여럿이다.
그렇지만 연습생이 돼 열심히 노력한다고 누구나 다 가수로 데뷔하는 것은 아니다. 연습생 운영 방식은 주요 연예기획사인 SM, JYP, YG가 각기 다르다. 가장 많은 연습생을 보유한 회사는 단연 SM. 아이돌 그룹의 메카로 이미 오래전부터 연습생 교육 시스템을 확보해둔 결과다. 그 다음은 JYP로 최근 몇 년 새 신인 개발팀이 강화되면서 각종 오디션을 자주 개최하며 연습생 수가 급증했다. 반면 YG는 소수정예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YG 황민희 홍보담당자는 “자칫 잘못하면 한 사람의 인생을 허비할 수 있는 위험이 있어 최대한 신중하게 연습생을 선발해 최소한의 인원으로 연습생을 꾸려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소수정예이다 보니 양현석 대표가 연습생이 트레이닝받는 동영상과 두 주에 한 번 치르는 외국어 시험지를 직접 챙길 정도다. 그래서인지 YG 소속 연습생의 일상은 다른 연예기획사의 일반 연습생이 아닌 데뷔 준비 돌입 연습생과 비슷하다. 하루 종일 연습실에서 살다시피하는데 회사 측에서 밤마다 이들을 집에 직접 바래다주고 있다.
이런 방식의 차이는 연습생들의 가수 데뷔 과정 및 그 이후 활동 형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SM의 경우 가장 많은 연습생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만큼 손실도 크다. 연습생으로 지내다 중도 포기하는 이들부터 그룹을 결성해 데뷔했지만 인기를 끌지 못해 소위 망하는 경우, 또는 내부 경쟁이 치열해 다른 회사로 옮겨 데뷔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비용을 일체 회사가 부담하는 연습생 트레이닝으로 상당한 손실을 보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이런 손실이 데뷔해 스타덤에 오르는 가수들의 장기계약 및 수익 분배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이번 동방신기 파문처럼 장기계약 파문이 종종 불거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SM의 장기계약 실태가 다소 지나치다는 시각이 많다. 지난 2006년 불거진 배우 유민호와 SM의 전속계약 관련 법정 분쟁에서 재판부는 “전속계약 가운데 계약기간과 손해배상액 규정이 원고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어 전속계약 전부가 무효”라고 밝힌 바 있다. 재판부 역시 SM의 연습생 육성 비용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유철환 부장판사)는 “신인을 육성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며 신인들 중 소수만 인기 연예인이 되는 등 그 위험이 높지만 위험도 높은 사업은 성공할 경우 높은 수익이 예상돼 투자 실패의 위험은 투자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당시 유민호는 SM과 첫 번째 음반 발매 후 10년째 되는 날 계약을 종료하는 것으로 계약했지만 유민호는 가수가 아닌 연기자 지망생이었다. 이에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의 요청이 없어 음반을 발매하지 못하거나 원고가 연기자 활동을 원해 음반을 발매하지 않을 경우 전속기간은 영원히 종료되지 않는 셈”이라며 전속계약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유민호는 현재 다른 연예기획사에 소속돼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반면 JYP는 많은 연습생을 보유하고 있으나 SM에 비해 전속계약 등으로 연습생을 얽어매지는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JYP 공개오디션 등을 통해 연습생이 됐다 다른 연예기획사에서 가수로 데뷔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JYP 공채 1기 오디션에 참가했던 구하라와 아이유는 그룹 카라, 공채 3기 오디션 출신인 남지현은 포미닛의 멤버로 데뷔했다. 이런 탓에 가수 비처럼 가수로 데뷔해 성공한 뒤 JYP를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법정 분쟁이 야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소수 정예인 YG의 경우 연습생 시절부터 가족적인 분위기라 데뷔한 뒤에도 소속사를 옮기는 가수들이 거의 없다.
문제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물론 가족과 친구들과도 거리를 두고 가수 데뷔에 매달린다고 모든 연습생이 가수로 데뷔할 순 없다는 부분이다. 연습생들은 대개 3~4년가량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 가수 데뷔의 기회를 잡는데 개인차가 크다. 연습생 신화의 주인공들 면면을 살펴봐도 데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JYP 최장기 연습생이던 조권은 8년 만에 그룹 2AM으로 데뷔했다. 또한 원더걸스 멤버로 데뷔하기 직전에 하차한 현아는 그룹 포미닛의 멤버로, 빅뱅 최종 멤버 후보에 올랐다가 유일하게 탈락한 장현승 역시 소속사를 옮겨 올 하반기 데뷔를 목표로 연습 중이다. 예전 신화의 소속사인 굿엔터테인먼트에서 진행한 베틀신화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아슬아슬하게 탈락해 데뷔의 기회를 날린 가인과 승리 태군 등은 각각 브라운아이드걸스와 빅뱅의 멤버와 솔로 가수로 데뷔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데뷔할 수 있는 탓에 전속계약 과정에서 회사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기간 및 수익 분배, 손해배상 조항 등이 정해지곤 한다. 결국 어렵게 연습생 생활을 거쳐 데뷔하는 영광을 안게 될지라도 스타가 된 뒤에도 고난이 끝은 아니라는 얘기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