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처럼 중요하고 기쁜 소식을 ‘리스크’로 구분할 순 없지만 최근 영화배우 이영애의 독특한 결혼 발표가 연예관계자들 사이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연예기획사가 아닌 법무법인을 통해 발송된 보도자료를 통해 결혼 사실을 공개한 이영애의 행보가 아직까지 국내에선 상당히 낯선 장면이다. 물론 소속사가 따로 없는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매니저 업무를 보는 측근들까지 모두 결혼식 참석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있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보도자료 발송 업무를 법무법인이 맡았을 수도 있다. 다만 법무법인 동인은 보도자료 발송 까닭을 “법부법인 동인의 변호사가 이영애의 법률자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법률적 사정 등을 고려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결혼 자체는 리스크가 아니지만 결혼 발표 이후 발생할지도 모를 리스크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법률적 사정’이라 표현하며 ‘사전 리스크매니지먼트’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적극적인 리스크 매니지먼트 덕분인지 아직까지 이영애의 남편의 이름과 사진 등 정확한 정보는 언론을 통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 있었던 연예 전문 변호사의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대표적인 사례는 주지훈의 엑스터시 투약 사건이다. 권영찬 성폭행 사건, 송일국 기자 폭행 사건 등에서 모두 연예인의 무죄를 받아내며 ‘무죄 제조기’라 불리는 이재만 변호사는 대표적인 연예 전문 변호사다. 그는 주지훈 엑스터시 투약 사건에서 주지훈의 법적 대리인을 맡았다. 그렇지만 이미 본인이 투약 사실을 자백함에 따라 무죄 선고를 받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이 변호사는 선고 공판을 앞두고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주지훈의 심정을 언론에 대신 전달했다. 특히 “이미 1년 2개월 전의 일이라 검사를 해도 (마약 투약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양심에 반하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자백했다”는 얘길 언론에 전달해 비난 일변도이던 여론의 흐름을 바꿔 놓기도 했다.
이처럼 요즘 연예계에선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린 연예인을 대신해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담당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김상혁이 음주운전에 휘말려 기자회견을 직접 가지며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했다”고 말실수를 했던 것과 같은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찬 이민영 법정공방이 한창 벌어지던 상황에서도 언론 대처법은 상반됐다. 이찬이 주로 직접 기자들을 접촉한 데 반해 이민영의 경우 김재철 변호사가 대신 기자들을 만났다. 김 변호사는 당시 연예인이나 연예기획사가 관련된 사건을 많이 맡는 것으로 유명한 법무법인 백상 소속이었다. ‘주식회사 이영애 사건’을 비롯해 ‘한혜진과 전 소속사 분쟁’ ‘탤런트 이진욱과 전 소속사 분쟁’ 등의 사건을 맡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김 변호사는 적절하게 기자회견을 활용하며 언론과의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는 등 축적된 ‘노하우’를 십분 발휘했다 . 이로 인해 공방 초반 여론을 이민영 편으로 돌려 세우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연예 전문 변호사들은 승소를 위한 변호 자체도 중요하지만 연예인의 경우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가장 대표적인 연예 전문 변호사는 단연 법무법인 두우의 최정환 변호사다. 현재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학회장을 맡고 있는 최 변호사는 지난 2월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연예매니지먼트 법안을 기초한 법조인이기도 하다. 지난 93년 고 최진실의 고문 변호사를 역임하며 국내 첫 연예인 고문변호사가 된 백지영 비디오 사건, 싸이 병역비리 사건 등 굵직한 연예인 관련 사건을 맡아왔다. 그는 “연예인 사건의 경우 승소도 중요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를 얼마나 잘 지켜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이를 위해 최대한 빨리 사건을 매듭짓고 언론과의 관계도 좋게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리스크 매니저 수준을 떠나 아예 일선에 직접 나서는 변호사들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종무 변호사와 표종록 변호사다. 이종무 변호사는 지난 2000년 안재욱의 소속사 분쟁에 대한 변호를 맡으며 연예 전문 변호사의 길에 들어서 장동건 원빈 배용준 김희선 등 톱스타들의 전담 고문 변호사로 활동한 바 있다. 또한 고 최진실의 법적 대리인을 맡아 전 남편 조성민과의 이혼 분쟁을 담당하기도 했다. 톱스타들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며 이 변호사는 당시 거세게 불던 한류 열풍을 주목했다. 그는 “한류 열풍이 거세지면서 일본 미국 등 시장 규모가 급성장하고 있다”며 “초상권 등에 대한 세세한 법률적 해석이 필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들보다 먼저 한류를 통한 해외 리스크를 주목했던 이 변호사는 지난 2006년 톱스타 장동건의 소속사인 스타엠엔터테인먼트가 스타엠을 통해 우회상장하면서 대표이사에 선임돼 눈길을 끌었다. 이 변호사는 그해 8월 스타엠 대표이사 자리에서 사임했지만 그 이후에 변호사보다 사업가로서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편 표종록 변호사는 지난 2008년 5월 연예기획사 키이스트와 그 자회사인 BOF의 대표로 취임해 눈길을 끌었다. BOF는 배용준을 필두로 소지섭 이나영 최강희 박예진 이지아 등이 소속된 기획사다. 표 변호사는 법무법인 신우의 엔터테인먼트 팀장으로 활동하며 ‘전지현 결혼설 손배소’ ‘<실미도> 영화상영금지가처분 및 손배소’ 등 연예계의 굵직한 사건을 맡아왔으며 여러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자문 변호사로도 활동했다. 싸이더스HQ, JYP엔터테인먼트, BOF 등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그의 고객이었다. 이런 그가 배용준의 제안을 받아들여 5년 연속 적자에 최근 일부 연예인의 이탈 등 악재까지 겹쳐 있던 BOF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것. 지난 7월에 자진 퇴임할 때까지 1년 넘게 BOF를 이끌어온 표 변호사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으로 업계에 정평이 났을 정도로 회사를 훌륭히 경영했다.
지난 1월 배용준의 BOF와 박진영의 JYP엔터테인먼트가 손을 잡고 공동 사업을 벌인다는 소식이 알려져 연예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는데 그 뒤에도 표 변호사가 있었다. 연예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배용준 박진영 등과 두루 친분이 두터웠던 그가 이들의 사업적 만남을 주선한 것.
표 변호사는 변호사의 연예기획사 대표 취임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얘기한다. “한국의 경우 매니저 출신 내지는 M&A 전문가 혹은 펀드 매니저가 대표를 많이 맡고 있지만 해외의 경우 변호사 출신이 많다”면서 “우리나라 변호사들도 연예 산업에 많이 진출할 시기로 보인다”고 얘기한다. 이는 이영애의 결혼 보도자료를 법무법인에서 발송한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해외의 경우에는 이미 연예기획사가 고문변호사를 통해 보도자료를 발송하는 등 민감한 사안의 언론 접촉 등의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의 반응도 달라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연예 전문 변호사가 ‘딴따라 변호사’로 불릴 정도로 법조계의 시선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연예 산업 관련 영역이 인수ㆍ합병(M&A)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변호사들 사이에 유망 직군으로 급부상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지난 2006년에는 ‘엔터테인먼트법학회’까지 발족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