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부산 수영만요트경기장 야외상영관서 개막된 부산국제영화제. | ||
만약 당신이 영화감독일 경우, 혹은 영화제작자라면 당신이 연출 또는 제작하는 영화에 어느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할 것인가. 또한 영화계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예를 들어 가수와 개그맨, 방송인 등) 혹은 스포츠 스타들 가운데 영화계로 스카우트하고 싶은 이들은 누구일까. 이번 스티커 설문조사는 관객 입장인 영화팬들에게 좀 더 적극적인 시각에서 영화계와 배우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그 결과를 살펴보는 방향에서 진행됐다.
이런 질문이 담긴 설문조사 판을 들고 <일요신문> 연예팀은 개막식이 열린 9일 개막식장인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 인근, 그리고 10일에는 해운대 백사장 등에서 영화팬들을 대상으로 스티커 설문조사를 벌였다. 전국각지에서 몰려든 영화팬들은 물론 부산 거주 중·고등학생, 그리고 해외 영화팬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스티커 설문조사에 동참했다.
감독 입장이라면 아무래도 연기력이 입증된 배우를 원하게 되고 제작자는 흥행력을 우선하게 된다. 결국 영화팬들이 감독일 경우 캐스팅하겠다고 밝힌 배우는 연기력이 입증된 배우이고 제작자일 경우 캐스팅할 배우로 손꼽은 배우는 흥행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총 12명의 주연급 배우를 설문 대상으로 선정했는데 최근 1년 사이 개봉된 영화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연기자들을 대상으로 올렸다.
▲ 이병헌 | ||
2위에는 최근 영화 <해운대>를 통해 또 한 번의 흥행신화를 일궈낸 설경구(17%)가 올라갔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요 무대가 바로 해운대라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간발의 차이로 3위를 차지한 하정우(16%)의 약진도 눈에 띈다. 1~2년 전에만 해도 충무로 최고의 기대주로 손꼽히던 하정우가 이젠 당당히 우량주 반열에 올라섰음이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입증됐다. 요즘 극장가 흥행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인 김명민이 4위(11%),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장동건이 5위(10%)에 이름을 올렸다. 연기파 배우 김윤석이 설문 참여 영화팬 9%의 지지를 받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아쉽게 5위권엔 진입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영화팬들이 제작자 입장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준 배우는 누구일까. 예상외로 하정우가 29%의 지지를 받았는데 <국가대표>를 통해 흥행력까지 인정받은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위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인 신민아가 이름을 올렸다. 신민아가 2위에 오른 것 역시 다소 의외다. 최근 활발한 활동을 보이며 주목받고 있는 데 반해 아직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기 때문. 그렇지만 영화팬들에게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음을 감안하면 좋은 작품만 만날 경우 흥행배우로 거듭날 잠재력을 충분히 갖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동건(19%) 설경구(8%) 이병헌(6%) 김윤석(6%)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스티커 설문조사 과정에서 만난 한 영화관계자는 다소 의외인 1, 2위를 두고 영화팬들이 예상외로 날카롭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제작자 입장에선 흥행력과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비교적 출연료가 저렴한 배우를 찾기 마련인데 하정우와 신민아의 경우 아직 출연료가 특 A급은 아니지만 연기력이나 흥행력을 두루 갖춰 실제로도 제작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배우라는 것.
그렇다면 설문대상에 오른 주연급 배우들 가운데 영화팬들이 가장 고평가된 배우와 저평가된 배우라고 생각한 이들은 누구일까. 우선 고평가된 배우 영역에선 예상외로 현재 영화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두 배우인 설경구(26%)와 송강호(18%)가 선정돼 눈길을 끌었다. 영화계에 세대교체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로 풀이해도 될 정도로 예상 밖 결과였다. 요즘 한창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제작자 입장에서 캐스팅 선호 순위’ 상위권에 오른 신민아(15%)와 하정우(12%)가 그 뒤를 이은 부분도 이채롭다. 영화팬들이 아직까지는 검증을 더 거쳐야 한다는 냉정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저평가된 배우 영역에선 김윤석(25%)이 1위 자리에 올랐다.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등의 영화에 연이어 출연해 연기력과 흥행력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기록한 김윤석에게 영화팬들이 높은 점수를 줬다. 고평가된 배우 부문에서 4위에 오른 하정우는 저평가된 배우 영역에선 2위(22%)에 올라 영화팬들에게 교차된 시선을 받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만큼 요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배우임을 알 수 있는 대목. 3위에는 <미인도> 이후 재평가를 받고 있는 김민선(17%)이, 4위에는 <해운대>의 또 다른 주역 하지원(14%)이 이름을 올렸다.
만약 영화팬이 캐스팅 디렉터가 돼 다른 영역에서 활동 중인 연예인을 캐스팅하려 한다면 누구를 가장 먼저 찾을까. 이런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이번 설문조사에선 아이돌 가수 12명을 비롯해 가수, 방송인, 스포츠스타 등 총 24명을 설문 대상으로 ‘영화계 진출을 찬성하는 이와 반대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물어봤다.
우선 영화계 진출을 찬성한다는 스티커를 가장 많이 받은 이는 동방신기의 유노윤호로 설문 참여 영화팬의 33%가 그를 지지했다. 드라마 <맨땅에 헤딩>에서 보여준 가능성에 10대 여학생들이 몰표를 줬다. 게다가 일본 여성 팬들 가운데에도 유노윤호를 지지한 이들이 상당수였는데 한 30대 여성 일본인 영화팬은 “한류 팬으로 한국을 종종 찾는 편인데 요즘 일본에서 동방신기의 인기가 매우 높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2위에는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통해 배우로도 스타 등극에 성공한 가수 이승기가 이름을 올렸고 3위에는 한 차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가수 이효리(14%)가 선정됐다. 가장 눈길을 끄는 주인공은 4위에 오른 허경영(8%)과 재범(6%)이다. 사회적인 이슈의 주인공인 이들 두 사람이 의외로 높은 관심을 끌며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재범의 경우 영화계 진출을 반대한다는 입장(9%로 4위)을 보인 영화팬도 많아 여전히 그의 컴백 여부가 뜨거운 이슈임을 보여줬다.
영화계 진출을 반대하는 연예인 순위에선 요즘 가요계에서 걸그룹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여성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소녀시대의 제시카와 애프터스쿨의 유이가 1,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직까지는 영화계에 진출하기보다는 가요계에서 더 활약하며 걸그룹 열풍을 이어가기 바라는 팬들의 바람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3위는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김연아가 이름을 올렸다. 최근 들어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은퇴하고 연예계로 진출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는데 팬들은 그가 은퇴하지 않고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좀 더 활동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반면 요즘 방송인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유재석 강호동 박명수 김구라 박미선 등은 영화계 진출의 찬반을 묻는 질문에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유재석이 유일하게 영화계 진출 찬성 부분에서 7위에 오른 게 전부다. 그만큼 영화팬들 사이에선 방송 스타들이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한편 롯데 자이언츠 선수였지만 최근 음주 논란으로 은퇴한 정수근 선수 역시 설문 대상에 올랐는데 영화계 진출 찬반 부분에서 모두 스티커를 거의 받지 못했다. 다만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50대 남성 부산시민은 “정수근 선수가 비록 은퇴했지만 그가 다시 사직구장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부산영화제 영화팬들에 묻다
최고의 조연 배우
흥행 1위 박철민 “주연 시켜줘도 안해!”
▲ 박철민 | ||
우선 최고의 조연배우가 누구인지를 묻는 영역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영화계에 불어온 조연배우 전성시대의 주역인 이문식이 1위(24%)에 올랐다. 현재는 영화가 아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지만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그가 영화에서 감초 역할을 했던 모습이 강렬하게 기억되고 있는 듯하다. 2위에는 박철민(21%)이 올랐다. 유해진 강신일 오달수 등이 그 뒤를 이었는데 요즘 한창 각광받고 있는 신예 조연스타들보다는 여전히 오랜 기간 조연배우로 활동해온 이들에게 영화팬들은 더 높은 점수를 줬다.
세부적인 영역으로 들어가 가장 흥행력 있는 조연배우로 구분된 이는 누구일까. 이 영역에선 박철민이 35%의 지지를 받으며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주연 배우는 시켜줘도 안 한다”며 조연 예찬론을 펴고 있는 박철민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음이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입증된 셈. 이문식(15)과 유해진(14%)이 근소한 차이로 2, 3위에 올랐고 <국가대표>의 흥행주역 성동일이 4위(12%)에 올랐다. 한편 인기 개그맨에서 영화배우로 변신한 임하룡이 비록 순위권 밖이지만 6%의 지지를 받은 부분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연기력 부문에서도 이문식(25%)과 박철민(18%)이 1, 2위에 올랐는데 오달수(15%) 윤제문(14%) 류승룡(12%) 김정태(10%) 등이 그 뒤를 이은 부분이 특이하다. 영화팬들이 흥행력 부문에서 드라마 출연 횟수가 높은 배우들 위주로 스티커를 붙인 데 반해 연기력 부문에선 영화 출연에 더 집중하는 이들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마지막 질문은 주연 배우로 변신해도 무방한 조연 배우가 누구인지였다. 이 질문에선 이문식이 57%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1위에 올랐다. 실제 이문식은 김수로와 함께 조연 배우로 큰 인기를 끌다 주연급으로 변신한 대표적인 배우로 분류되는데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에선 그리 좋은 평가와 흥행 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영화팬들은 여전히 그가 주연 배우로 변신해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예측을 보여주고 있다. 2위는 역시 박철민(13%). 하지만 박철민은 “홀로 극을 이끌어 가야 하는 주연배우보다는 내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는 조연배우가 좋다”며 주연 배우로의 변신에 대한 거부감을 분명히 나타냈다. 이 외에 유해진 강신일 성동일 등도 주연으로 변신해도 무방한 조연 배우 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스티커 설문조사 결과 조연배우 가운데에는 이문식과 박철민이 모든 부문에서 고른 지지를 받으며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을 필두로 수많은 조연배우들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한국영화의 흥행과 발전에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영화팬들 역시 그들의 활약에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부산 =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