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은 통상 공개된 스케줄이 중단될 만큼 대형 사고가 아닌 이상 촬영 도중에 벌어진 사고와 부상 사실을 웬만해선 쉬쉬하고 넘어가려 한다. 주된 까닭은 바로 출연 중인 작품 일정에 차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수십 명의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이 자신의 부상으로 인해 피해를 받지 하기 위해서 어지간한 부상은 스스로 감내하곤 하는 것.
배우 안재모는 드라마 촬영 도중 생기는 부상 사실을 숨기는 것으로 유명한데 2년 전 그는 대하드라마 <왕과 나>에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격투신을 소화하다 수십 차례의 사고를 당하며 다양한 부상을 입게 됐다. 그럼에도 안재모는 부상을 당할 때마다 인근 병원에서 응급치료만을 받고 금세 촬영에 복귀했다. 골반에 입은 타박상 등으로 거동조차 힘들 정도였지만 스태프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는 그의 투혼은 결국 시청자들에게 좋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기회로 연결됐다.
그런가하면 지난 2006년 특집 드라마를 촬영 중이던 탤런트 손현주는 극중 캐릭터인 알츠하이머 병 환자를 연기하던 도중 바닥에 넘어져 무릎이 골절돼 조각나는 중상을 입은 바 있다. 당시 손현주는 긴급수술을 받는 등 전치 16주 이상의 진단을 받아 드라마의 정상적인 방영 여부가 불투명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손현주는 정해진 촬영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는 욕심에 사고 한 달여 만에 촬영현장에 복귀하는 투혼을 보였다. 결국 당시 제작된 특집 드라마는 정해진 일정보다 약 한 달여 늦춰진 시점에 정상 방영돼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가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새 앨범이 나왔거나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는 시점에서 입은 부상은 활동에 커다란 제약을 주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부상 정도는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이야기다. 원조 ‘롱다리 가수’ 김현정은 지난 2001년 4집 타이틀곡 ‘떠난 너’ 활동 도중 수많은 부상을 입은 바 있지만 그 사실을 아는 팬들은 극히 드물다. 그는 당시 <목표달성 토요일>이라는 프로그램 촬영 도중 2m 높이의 놀이기구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전신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연예계 활동에 임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촬영 도중 구급차에 실려 가는 부상까지 당했는데 그럼에도 그가 입원치료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해외 프로모션을 비롯한 이미 정해진 일정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당시 그는 무대 위 섹시의상과 병원제공 특수의상(?)인 보호대를 번갈아 입으며 4집 활동을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중인 예능인들은 부상으로 인한 또 다른 고충을 토로한다. 바로 자신의 출연 분량이 적어져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때문에 웬만한 부상이 아니면 꾹 참고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할 수밖에 없다고. 현재 인기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연예인 A는 얼마 전 촬영도중 발목부상을 입었으나 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사실을 제작진에 알리지 않았다. 그리곤 남몰래 진통제를 맞으며 촬영에 임했다. A는 “촬영 도중에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프로그램까지 구설수에 오르게 되고, 여론의 비난 화살이 쏟아지면 출연 자체가 힘들어 질 수도 있다”며 “부상투혼도 프로정신도 아닌 그저 생존을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연예인들의 부상이 노이즈 마케팅에 이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요즘 한창 잘나가는 영화배우 B는 얼마 전 출연한 영화에서 촬영 도중 손에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팬들의 걱정을 샀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영화 홍보사의 마케팅 전략이었다고 한다. 그 사실은 B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그건 영화 촬영 도중 발생한 부상이 아니라 귀가 도중 주차장에서 넘어진 지극히 개인적인 사고였다”고 솔직히 밝히며 진실이 알려졌다.
이런 행태의 홍보는 연예계에 무척 심하게 만연돼 있다. 최근에는 영화 등을 홍보하는 홍보대행사뿐 아니라 연예기획사에서도 발 벗고 부상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우선 부상 사실이 알려지면 팬들의 우려가 집중되면서 금세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가 급상승하는 효과가 가능하다. 이후 치료 과정과 부상 정도를 연이어 보도자료로 발송하며 대중의 관심을 이어가다가 막판엔 ‘부상을 극복하고 다시 촬영에 복귀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로 해당 연예인의 프로의식을 내세워 이미지까지 올릴 수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연예관계자들 사이에선 “머리카락 한 올만 빠져도 입원시키려 하는 연예기획사들도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 정도다.
더 큰 문제는 부상 사실을 숨기는 연예인들의 투혼과는 다르게 연예인들의 부상에 대한 대책이 현재까지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상해보험에 가입돼 있는 촬영 현장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주연급 스타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출연 연예인들은 부상을 당한 뒤 치료비를 개별 부담하고 있다. 그나마 부상으로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해 부상 사실까지 숨기는 연예인들도 많다.
몇 년 전부터 영화계에선 촬영 도중 부상에 대비해 배우들이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영화 <역도산>의 설경구는 촬영 당시 최고액 3억 원, <인어공주>의 전도연은 약 4억 원 가량의 상해보험에 가입한 바 있다. 또한 몇 년 전 <엑스맨> 촬영 도중 일어난 개그맨 김기욱의 십자인대파열사고는 연예기획사에서 소속 연예인의 보험을 가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빅뱅 2NE1 등이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는 5년 전부터 매달 300만 원가량의 보험료를 지불하며 100억 원대의 상해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제작진의 안전 불감증에 고민한 나머지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선언한 연예인도 있다. 유독 부상 연예인이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연예인 C는 호기심에 섣불리 출연을 결정했다가 눈앞에서 동료 연예인이 부상당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이내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현장에 출연자의 부상에 대비한 시설이 매우 미비했던 것을 보고 실망했다는 C는 그날 이후 해당 프로그램의 섭외에는 절대 응하지 않고 있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