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 2일 압구정 CGV에서 열린 영화 <용서는 없다> 제작보고회에서 설경구가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해운대>에 이어 이번 작품도 “흥행 실패는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연합뉴스 | ||
바지런하게 2009년을 보낸 설경구는 분주하게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2010년 영화계를 여는 첫 한국 영화 <용서는 없다>(감독 김형준ㆍ제작 시네마서비스)가 그의 몫이다. 설경구는 대뜸 “흥행 실패도 없다”며 눙쳤다.
―‘하늘의 뜻’(<해운대> 1000만 관객 달성)을 이뤘다.
▲사실 그 때 말한 ‘하늘의 뜻’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정말 1000만은 꿈도 못 꿨다. 그래서 더욱 기뻤다. 시간이 많이 지난 것도 아닌데 굉장히 오래 전 이야기 같다.
―<실미도>로 1000만 관객을 달성했을 때랑 느낌이 다르던가.
▲달랐다. 그때는 <실미도>에 이어 곧바로 <태극기 휘날리며>가 연이어 1000만을 넘지 않았나. 솔직히 조금 맥이 빠졌던 게 사실이다.
―당시 <국가대표>가 무섭게 <해운대>를 따라붙었다. 혹시 <국가대표>는 봤나.
▲(웃으며) 의도적으로 안 보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1주 차이로 개봉돼서 사실 좀 당황스러웠다. 옹졸한 생각인데 왜 우리 영화끼리 치고받아야 하나 싶었다.
―특별한 축하 파티는 없었나.
▲<해운대> 관련 뒤풀이가 참 많았다. 두 달 전에는 제작진과 출연진이 모여서 파티를 하며 기념패를 나눠 가졌다. 아직도 영화 관련 시상식이 끝나면 종종 뒤풀이가 열린다.
―<해운대>의 1000만 달성이 좀 더 특별했던 이유가 있었다고 들었다.
▲<해운대>는 사회적 이슈 없이 영화 자체의 힘으로 갔다. 사실 난 <해운대>는 순수 오락 영화가 이렇게 흥행할 것이라고 생각 못했다. 또한 평범한 민초들의 이야기가 통했다는 사실이 더욱 기쁘다.
―<용서는 없다>를 곧바로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용서는 없다>의 제작사 대표가 나랑 <실미도><광복절 특사><공공의 적> 등을 같이 한 친구다. 함께 작업하며 내가 싫지 않았나 보다. 고맙게도 항상 맨 처음에 나한테 시나리오를 보내더라.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나.
▲원래 제목이 ‘단서’였다. 선뜻 손이 안 가더라. 2~3일 정도 있다가 소파에 누워서 읽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단숨에 끝까지 봤다. 그리고 출연을 결정했다.
―무엇이 마음에 들었나.
▲무늬는 스릴러인데 내용에는 강한 드라마가 있었다. 사연이 있는 두 남자(설경구와 류승범)의 이야기가 좋았다. 마음이 아프고 잔상이 오래 남더라. 정확한 관계는 스포일러인지라 말 못하겠다.
―은사나 다름없는 강우석 감독이 투자를 한 작품이다. 그래서 출연을 결심한 건 아닌지.
▲내가 먼저 출연을 결정한 후 강 감독님이 투자로 합류했다. 그렇지만 반대로 내가 출연한다고 해서 투자를 결심하신 거냐고 물으면 그분은 아니라고 하실 거다(웃음).
―이번 작품에서 부검의로 출연한다. 실제 부검 장면도 봤는지.
▲난 의외로 강심장이 아니다. 부검 장면이 너무 강렬해 기억에 오래 남을까봐 걱정됐다. 참관할 기회가 있었지만 싫더라. 참관은 못하고 실제 부검의의 도움을 받아가며 촬영했다.
―예고편에서 더미(인체 모형)를 칼로 가르는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다.
▲진짜 피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라텍스 재질인데 칼을 대면 쩍 갈라졌다. 진짜 살도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내장 기관은 실제 동물 내장을 사용했다. 촉감이 썩 좋지 않았다.
▲ 사진 위부터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실미도> <해운대>, 오는 1월 개봉을 앞둔 <용서는 없다>의 한 장면. | ||
▲상황이 셀 뿐이다. 역할 자체는 세지 않다. 내가 독기를 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딸이 납치되지 않나?
―최근 <그놈 목소리><해운대><용서는 없다> 등 아이 아빠 역할이 많다. 부담은 없나.
▲(웃으며) 내가 실제로 아이 아빠이지 않나.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애써 총각 역을 하려고 하면 추해진다. 그건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류승범과의 호흡은 어땠나.
▲원래 친분이 있었다. 가끔 술자리에서도 만난다. 그런데 실제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보니 연기 스타일은 생각과 달랐다. 나와 마찬가지로 시나리오 신경 안 쓰고 현장에서 해결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촬영 전 개별적으로 배우들과 만나 일일이 체크하더라. 류승범이 부지런해서 가능했다. 철저하더라. 난 그렇게 못한다. 많이 배웠다.
―<용서는 없다>를 촬영하면서도 술을 많이 마셨겠다.
▲이 영화는 술을 많이 먹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난 영화 분위기에 많이 따라가는 편이다. 극중 앙숙이지 않나. 둘이 약속이나 한 듯 현장에 나가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나는 촬영에 들어가면 영화 속 캐릭터가 머릿속에 남아 현실에도 그런 모습이 반영되는 편이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살을 뺐다고 들었다.
▲조금 뺐다. 많은 양은 아니었다. 원래 일을 시작하면 살을 좀 빼는 편이다. 혼자 달리기나 줄넘기,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마치 체급 운동선수처럼 몸을 조절한다.
―지난해 <강철중 : 공공의적1-1>을 찍으면서는 과도한 체중 조절로 몸이 안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심각했다. 원형탈모까지 오더라. (머리를 만지며) 지금은 좋아졌다. 살을 갑자기 찌우는 것이 정말 안 좋다고 하더라.
―또 급격하게 살을 빼거나 찌울 생각이 있나.
▲강우석 감독님이 또 <공공의 적>을 찍자고 그럴 것 같다. (웃으며) 하지만 강철중도 나이를 좀 먹지 않았을까? 예전처럼 무리하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너무 몸을 혹사시킨다. <해운대> 이어 곧바로 <용서는 없다>를 찍는 등 쉴 틈 없이 달린다.
▲충분히 많이 쉰다. <해운대> 끝나고 쭉 쉬었다. <해운대>는 2008년 찍은 작품이니 2009년 엔 <용서는 없다> 하나 찍었다. 한 해에 한 편 정도 해 왔다.
―배우들은 유독 다작(多作)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 같다.
▲난 다작하고 싶다, 하하. 다작한다고 하면 성의 없어 보여서 그런 것 같다. 예전에 선배 배우들은 200~300편씩 했다. 요즘은 다작도 아니다. 하긴… 두 작품을 동시에 찍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드라마도 한 편씩 찍으면 어떤가.
▲이제는 제안도 안 온다. 사실 드라마 스케줄을 소화할 능력도 안 된다. 영화 촬영장이랑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고 들었다. 그래서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지 궁금하다.
▲내가 말이 어눌하지 않나. 내가 듣기에도 괴로운데 듣는 사람은 얼마나 괴롭겠나. <공공의 적> 시사회 끝나고 연예 정보 프로그램 찍으면서 “재미있게 해달라”고 하기에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재미있게 할 자신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PD의 부인이 직접 섭외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삼청동에서 인터뷰 끝나고 후배 전시회에 갔는데 젊은 부인이 옆에 오셔서 ‘무릎팍도사’ PD 부인이라고 하시더라. 남편께 전화하려고 하시기에 만류했다. 정말 적극적이시더라(웃음).
―배우 설경구도 자신과 관련된 기사를 검색해 보나.
▲일이 있을 때만 본다. 그냥 검색창에 ‘설경구’를 쳐 본다. 그게 다다. 그 이후에는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컴퓨터가 잘 안 되면 매니저를 부른다. 가끔은 코드가 빠져있을 때도 있는데 그걸 못 보고 매니저를 찾게 된다. 굉장히 미안해지는 부분이다. 사실 컴퓨터를 비롯한 가전 기기들을 대체로 잘못 다룬다.
―연기 외에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연기도 잘한다고 생각한 적 없다. 다만 싫증이 안 난다. 나는 싫증이 빠른 편인데 연기는 좋더라. 그래서 다른 일은 다 못한다. 남들이 다 좋다는 골프나 당구에도 안 빠져들더라. 그래서 연기를 계속한다.
―본인의 연기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나는 내 연기를 제대로 눈 뜨고 못 본다. 내 목소리도 듣기 싫다. 아주 낯설어 죽겠다. 극복이 안 된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이런 자세로 본다, 하하.
―영화 <해결사>가 차기작이라는 얘기가 있다.
▲아마도 하게 될 것 같다. 아직 도장은 안 찍었지만. 전직 형사로 출연한다. <용서는 없다> 상영 끝나고 촬영에 들어갈 것이다. 내년 추석에 맞춰 개봉될 것 같다. 그때가 연휴가 길다고 하더라. 아마도 대부분의 영화들이 추석에 개봉을 맞출 것 같다.
부부생활 관심 꺼주삼~
“사실 우리처럼 노출하고 사는 사람도 없지 않나. 결혼하고 일하는 얘기들이 기사로 다 나온다. 신문을 사면 볼 수 있지 않나. 그것 자체가 우리들의 사생활이라고 생각한다. 노출시킬 만큼 충분히 노출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설경구다운 답변이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이미 일정 부분 사생활이 공개돼 있는 상황에서 그 이상 노출시킬 필요가 없다는 그의 얘기에는 더 이상의 논리를 가져다대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왜 결혼 이후에 더 그런 경향이 짙어졌다는 평이 나오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결혼 이전부터 사생활과 관련된 얘기를 잘하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원래 그런 얘기를 잘하던 사람이었다면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겠지만 난 예전부터 한결같이 그래왔다.”
더 이상의 사생활 관련 얘기를 꺼내기 힘든 상황. 다시 이번엔 영화 얘기로 돌아와 부인 송윤아에 대해 물었다. 설경구가 출연한 영화 <용서는 없다>와 송윤아가 출연하는 <웨딩드레스>가 딱 한 주 차이로 개봉된다. 사실상의 맞대결인 셈.
“서로 그런 얘기는 잘 나누지 않는 편이다. 두 영화는 장르가 다르다. 그리고 <용서는 없다>는 18세 이상 관람가고 <웨딩드레스>는 전체 관람가다. 영화를 찾는 관객층도 다를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 할지라도 부부 사이에 격려의 얘기 정도는 건네지 않았을까. <해운대> 개봉 당시 일부러 경쟁작인 <국가대표>를 보지 않았다는 설경구의 부인이 출연하는 경쟁 영화에 대한 반응은 무엇이었을까.
“얼마 전 <용서는 없다> 제작보고회가 열린 날 미용실에서 <웨딩드레스>에 송윤아와 함께 출연하는 아역 배우 김향기를 만났다. 그래서 내가 ‘용서는 없다’고 말해 줬다(웃음).”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