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성루머에 시달렸던 변정수(왼쪽)와 권상우. 이들의 루머는 증권가 사설 정보지로부터 퍼졌다. | ||
연예계 악성 루머는 연예계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하고 있다. 애초 ‘카더라 통신’이라 불리며 구전을 통해 술자리 안주거리나 티타임 수다거리이던 연예인 악성 루머가 최근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급속도로 이뤄진 인터넷의 발전이 연예계 악성 루머의 확산 속도를 확연히 높여놨다. 인터넷 망을 통한 악성 루머의 확산은 단 몇 시간 만에 사람을 죽이기도, 또 살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변정수 사망 루머다. 한 네티즌이 재미삼아 작성한 변정수의 사망 기사는 급속도록 확산돼 단 몇 시간 만에 살아있는 변정수가 사망자가 됐다. 당시 메가톤급 영향력을 보여준 것은 증권관계자들의 정보 유통 경로로 알려진 한 메신저다. 이 과정에서 변정수 사망 루머는 인터넷과 ‘증권가 사설 정보지’(정보지)가 향후 연예계 악성 루머의 ‘급속한 발전(?)’을 책임질 것임을 암시하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또한 연예계 악성 루머에 대한 본격적인 경찰 수사가 시작된 것 역시 이즈음부터다. 변정수는 악성루머 유포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며칠 뒤 해당 루머를 최초로 유포한 변 아무개 양이 자수했다. 변정수는 이들의 사과를 받아들여 소송을 취하했다.
이후 연예인의 악성 루머 관련 고소가 줄을 잇기 시작한다. 하리수 문희준 진재영 권상우 고소영 김태희 고 최진실 등 수많은 연예인이 악성 루머를 퍼트린 이를 고소했고 경찰 수사를 통해 최초 유포자 등이 검거됐다.
서초 경찰서 관계자는 “얽히고설킨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추적해 최초로 관련 글이 올라온 곳을 찾아내 최초 유포자와 여러 사이트에 해당 글을 퍼 나르는 등 루머 확산에 기여한 행태가 악의적으로 보이는 이들을 수사 대상으로 한다”면서 “IP 추적 등을 통해 이들을 검거하는데 어디선가 들은 소문이라는 입장을 보여 루머를 처음 만들어낸 이들까지 찾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이혼설 등 가족 관련 악성 루머에 휘말린 권상우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악성 루머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연예계 악성 루머 온상으로 알려진 정보지와의 대대적인 전쟁을 선언한 것.
속칭 ‘찌라시’라 불리는 증권가 사설 정보지는 증권가를 중심으로 증권업계 및 정보기관 관계자를 비롯해 정치인에 기자까지 정보 확보가 필수인 이들을 독자층으로 한다. 벌써 20년 넘게 유통되어 온 정보지는 본래 비싼 값에 거래되는 그들만의 매체였다. 이런 정보지에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은 기업 정보팀, 전·현직 사정기관 정보맨, 금융기관 관계자, 국회의원 보좌진, 전·현직 기자 등이다. 정보지 제작 업체에서 이들을 관리하며 주기적으로 정보를 제공받는 경우도 있고, 정보 제공자들이 주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증시에 영향을 미칠 만한 기업 관련 정보, 국회 청문회 등에서 불거질 예정인 사안, 검찰이나 경찰발 사정설, 대기업 임원의 동향 및 인사 이동설 등의 고급 정보들이 주로 오간다. 그렇다고 모두 믿을 만한 정보만 모이는 것은 아니다. 정보는 정보일 뿐 사실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30%가량의 정보만이 사실로 판명된다. 최고급 정보지라 할지라도 50%를 넘기긴 힘들다.
그런데 여기에 엉뚱하게 연예계 악성 루머가 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대부분은 가십성이다. 지루한 정재계 및 사정기관 정보가 대부분인 정보지에 재미삼아 볼 수 있도록 연예계 정보가 실리다 보니 아니면 말고 식의 자극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정보지에 이런 연예계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 새 이런 정보지에 실린 연예계 관련 정보가 악성 루머가 아닌 사실로 드러나 눈길을 끌곤 한다. 최근 몇 달 사이 연예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장동건 고소영 열애설, 유해진 김혜수 열애설 등은 매스컴보다 정보지가 먼저 세간에 알렸다. 다른 분야처럼 전문적으로 정보 제공자도 없는 상황에서 작성된 정보지가 연이어 연예계 핫이슈를 선점하게 된 까닭은 ‘사실 여부의 확인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정보 유통’에 있다.
정보는 특정 사안의 사실 확인을 거치기 전 상태를 지칭한다. 증권업계 관계자, 정보기관 관계자, 정치인, 기자 등은 모두 이런 정보를 입수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직업군이다. 그 과정을 통해 일부 정보는 사실로 분류되고 일부는 거짓, 그리고 또 일부는 미확인 정보로 남게 된다. 이런 탓에 정보지 업체들은 정보를 모아 유통시킬 뿐 사실 여부를 확인하진 않는다. 그러다 보니 흥미 차원에서 자극적인 연예인 관련 악성 루머가 여과 없이 실리는가 하면 경쟁 기업체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기 위한 악의적인 거짓 정보도 종종 실린다.
현재 권상우는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악성 루머를 유포시킨 정보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 중이며 이를 바탕으로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루머를 유포한 10대 여고생을 잡았지만 미성년자라 용서해준 권상우는 상업적 목적으로 관련 루머를 유포한 정보지만큼은 끝까지 책임을 물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권상우의 정보지와의 전쟁 선포에 대해 한 정보지 업계 관계자는 “정보지는 악성 루머를 비롯한 연예계 정보의 유통 경로일 뿐 근원지는 아니다”라며 “정보지에 오른 악의적인 정보로 인해 기업인이나 정관계 인사 등이 피해를 입어 사정기관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기도 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고 얘기한다. 특히 정보지에 실린 최진실 사채설이 고인의 자살로 이어지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자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 불법 정보지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지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보지는 여전히 성황 중이다. 게다가 최고급 정보지를 제작하는 업체들은 정보기관에 맞먹는 정보력과 영향력까지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