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야구에서 검증을 마친 ‘동갑내기’ 이대호와 오승환이 나란히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일단 방아쇠는 당겨졌다. 프리에이전트(FA) 정국이 시작됐다. KBO는 11월 18일 FA 자격선수 24명의 명단을 공시했다. 야구 규약 제165조에는 ‘총재는 매년 한국시리즈 종료 후 5일 이내에 당해연도에 FA 자격을 취득한 선수 및 당해연도까지 FA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의 명단을 공시한다’고 돼 있다. 올해 한국시리즈는 10월 31일에 끝났다. 규약대로라면 11월 5일에 공시가 끝났어야 한다. 그러나 올해는 프리미어 12 때문에 2주 넘게 늦춰졌다. 프리미어 12 대표팀에 차출된 예비 FA 선수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FA 협상 때문에 국가대표팀 훈련과 경기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했다.
11월 20일에는 FA 권리행사 승인 신청이 마감됐다. KBO가 이튿날인 11월 21일 공시한 FA 신청 선수 명단에는 총 22명이 이름을 올렸다. 총 24명의 FA 자격선수 가운데 이미 은퇴를 발표한 SK 박진만과 최근 몇 년간 부진했던 kt 장성호만 자격 행사를 포기했다. 22명의 명단도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다양하다. 각 구단의 얼굴 격인 베테랑 스타들부터 시장을 좌지우지할 초대형 주전들, 그리고 대박은 아니라도 ‘중박’은 노려 볼 만한 알짜배기 FA까지 다 시장에 나왔다. 두산 김현수 오재원 고영민, 삼성 이승엽 박석민, 넥센 손승락 유한준 이택근 마정길, SK 정우람 윤길현 채병용 정상호 박정권 박재상, 한화 김태균 조인성, KIA 이범호, 롯데 송승준 심수창, LG 이동현, kt 김상현이 그들이다.
원 소속구단 우선 협상 기간은 11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일주일간, 원 소속구단을 제외한 타 구단(해외구단 포함)과 협상 기간은 29일부터 일주일간, 그리고 12월 6일부터 2016년 1월 15일까지는 원 소속구단을 포함한 모든 구단과 협상이 가능하다. 야구 규약 제173조 ‘FA 획득의 제한’ 조항에 따라 그해 공시 선수가 20명을 초과하면 타 구단 출신 FA 선수를 3명까지 영입할 수 있다(20명 이하면 2명, 10명 이하면 1명으로 영입이 제한된다). 따라서 올해는 구단별 3명까지 외부 FA 영입이 가능하다. 원래 소속 선수였던 FA는 인원수에 관계없이 잡을 수 있다.
FA 선수의 잔류나 이동만큼이나 관심을 모으는 게 바로 계약 규모다. 지난해에는 무려 총액 630억 원이 넘는 거대한 시장이 열렸다. 미국에서 유턴한 KIA 투수 윤석민이 4년 90억 원을 받은 것을 비롯해 SK 내야수 최정이 4년 86억 원, 롯데 출신 투수 장원준이 두산으로 이적하면서 4년 84억 원, 삼성 투수 윤성환이 4년 80억 원을 받으면서 몸값 80억 원이 넘는 선수를 4명이나 배출한 덕분이다. 선수들의 몸값은 한번 올라가면 잘 내려오지 않는다. 시즌 중반부터 각 구단이 통 큰 지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이유다.
# 메이저리그 도전
2012년 말 한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통해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뒤, 한국 프로야구의 스토브리그 풍속도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스케일이 커졌다. 일본 프로야구를 넘어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던지는 선수들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선수들의 눈높이는 좀처럼 일본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이승엽, 이대호, 오승환 등 한국에서 최정상의 자리에 섰던 선수들이 대부분 일본으로 눈을 돌렸던 까닭이다. 그러나 류현진이 포스팅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메이저리그 진출 첫 해부터 성공적으로 안착하자 다른 선수들도 조금씩 꿈을 키웠다. 2013년 말 윤석민이 볼티모어와 계약했고, 2014 시즌이 끝난 뒤에는 넥센 강정호, SK 김광현, KIA 양현종이 모두 포스팅을 통해 빅리그를 노크했다. 이들 가운데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선수는 피츠버그가 큰 금액을 적어낸 강정호뿐. 대신 강정호 역시 류현진처럼 한국 프로야구 출신 첫 야수 메이저리거의 위용을 뽐냈다. 시즌 막바지에 불의의 무릎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내셔널리그 신인왕 후보로도 거론될 만큼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류현진과 강정호의 성공은 특히 올해 스토브리그에 가장 강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메이저리그로 향하는 줄이 더 길고, 선수들의 이름값도 더 비싸다. 넥센 4번타자 박병호는 일찌감치 포스팅에 나서 미네소타의 부름을 받았다. 시즌 내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기에 포스팅 성공은 예견됐던 결과다. 한국 프로야구에 역사를 남기고 일본으로 떠났던 투수 오승환과 내야수 이대호도 나란히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앞서 메이저리그로 간 류현진과 강정호가 해외 진출 가능 기한(7년)을 채운 뒤 구단의 허가를 얻어 포스팅 과정을 거쳐야 했다면, 오승환과 이대호는 포스팅이 필요 없는 FA 선수다. 이들에게 관심 있는 구단이 굳이 포스팅 금액을 따로 지출하지 않아도 되고, 이들 역시 자신이 원하는 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둘은 한국은 물론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검증을 마친 선수들이라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최근 미국의 한 매체가 발표한 스토브리그 FA 순위에서도 나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대호는 1루수와 지명타자 가운데 볼티모어의 크리스 데이비스와 박병호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홈런이 많지 않은 일본(오릭스·소프트뱅크)에서 4년 통산 홈런 98개, 348타점을 기록한 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오승환은 불펜 투수 가운데 볼티모어의 대런 오데이, 캔자스시티의 라이언 매드슨, 피츠버그의 호아킴 소리아에 이어 4위로 평가받았다. 일본 한신에서 2년 통산 80세이브를 올리면서 센트럴리그 구원왕을 2연패했다. 이 매체는 오승환을 ‘한국의 마리아노 리베라’라 부르기도 했다.
왼쪽부터 김현수, 황재균. 사진제공=두산 베어스·롯데 자이언츠
# 2차 드래프트
이뿐만 아니다. 2년에 한 번씩 진행되는 세 번째 2차 드래프트도 11월 27일에 마무리됐다. 2차 드래프트는 전력평준화와 유망주의 기회 보장, 중복 자원의 효율적 재분배를 위해 2011년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메이저리그의 ‘룰5 드래프트’가 모델. 각 구단이 2차 드래프트에 앞서 의무적으로 40인 보호선수 명단을 제출하면, 다른 구단들이 그 40명을 제외한 선수들 가운데 최대 3명까지 데려갈 수 있다. 1라운드에서는 3억 원, 2라운드에서는 2억 원, 3라운드에서는 1억 원을 각각 지명 선수의 원 소속구단에 지급해야 한다. 단 선수 지명은 의무가 아니다. 일례로 2011년 열린 첫 2차 드래프트에서 넥센은 단 한 명도 지명하지 않았다. 또 신인 드래프트와 달리 2차 드래프트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40인 보호선수 명단도 철저히 외부 공개를 금지한다. 자칫 그 안에 포함되지 못한 선수들에게 박탈감을 안길 수 있어서다.
각 구단은 2년에 한 번 돌아오는 2차 드래프트의 기회를 제대로 잡기 위해 치열한 머리싸움을 펼쳤다. 그동안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쏠쏠한 실익을 거둔 팀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NC는 2011년 2라운드에서 두산 투수 이재학을 뽑았다. 이재학은 2013년 NC의 창단 첫 승 투수였고, 그해 신인왕이 됐다. 롯데 김성배와 심수창, KIA 김민우, 두산 허준혁, 삼성 박근홍, kt 김사연 등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이적한 뒤 팀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뽐낸 선수들이다. 잘만 지명하면 웬만한 트레이드보다 훨씬 팀 전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 제도에 대해 일부 구단들은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유망주를 많이 보유한 팀과 그렇지 못한 팀 사이에 형평성이 너무 어긋난다는 까닭에서다. 메이저리그는 만 18세 이하 선수는 입단 4년, 만 18세 이상 선수는 입단 3년 이후에야 룰5 드래프트 대상자가 된다. 팀이 공들여 뽑은 신인선수를 마이너리그에서 육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은 군 보류 선수와 FA 선수를 제외한 등록 선수 전원이 2차 드래프트 대상자다. 일부 구단 단장들과 프런트들 사이에서 “세부 규정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떠날 용병, 남을 용병 NC 투타 ‘에릭 듀오’ 재계약 도장 꽝! 한 현역 감독은 “용병 셋이 사실상 팀 전력의 50% 이상을 차지한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한 구단 관계자 역시 “좋은 용병을 뽑은 팀이 안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있지만, 성적이 좋은 팀에는 무조건 좋은 용병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토브리그에 용병 라인업을 잘 구축하는 것이 각 구단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바로 기존 외국인선수들 가운데 보낼 용병과 안 보낼 용병을 잘 구분하는 일이다. KBO가 11월 25일 각 구단 외국인선수 재계약 의사 통지를 마감하면서 일단 옥석 가리기의 기초 작업이 끝났다. NC는 다승왕 에릭 해커(왼쪽)와 정규시즌 MVP 에릭 테임즈(오른쪽)를 붙잡아 만족스러울 만한 성과를 올렸다. 사진제공=NC 다이노스 이 외에도 각 구단이 “내년에도 함께 뛰자”며 손을 내민 기존 용병들은 여럿 있다. KBO 외국인선수 재계약 의사 통지 마감 시점을 기준으로, 한화는 시즌 막바지에 혜성처럼 등장해 연일 완투쇼를 펼쳤던 에스밀 로저스를 꼭 잡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다른 외국인투수 미치 탈보트도 붙잡는다. 삼성은 일본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야마이코 나바로를 눌러 앉힐 방법을 찾고 있다. KIA는 모범 용병 브렛 필과의 재계약에 성공했고, 시즌 도중 대체 선수로 투입돼 좋은 활약을 펼쳤던 kt 댄 블랙도 구단의 잔류 의사를 전달 받았다. NC 역시 해커와 테임즈에 이어 남은 한 명인 재크 스튜어트와의 재계약까지 성사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 하고 있다. 두산은 포스트시즌의 영웅인 더스틴 니퍼트와 재계약에 대한 교감을 끝내고 금액 조율만 남겨 놓고 있다. 물론 올해 준수한 성적을 내고도 팀을 떠나야 하는 용병들도 많다. 넥센 앤디 밴 헤켄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로 이적하는 케이스. 그래도 넥센은 세이부에서 이적료 30만 달러를 받게 돼 빈손으로 용병 에이스를 떠나보내는 불상사는 피했다. 시속 150㎞대 강속구를 던지는 삼성 알프레도 피가로는 끝까지 팀을 고민에 빠뜨렸지만, 어깨 상대에 대한 의문 탓에 결국 삼성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kt 역시 올해 12승을 올린 장수 용병 크리스 옥스프링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KIA도 고심 끝에 조쉬 스틴슨과의 결별을 결심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