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배칠수(배): (관중석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하며) 여긴 진짜 오랜만에 올라와 보네요.
유지현(유): 저도 이렇게 관중석에 앉아 보기는 정말 오랜만인데요. 기분이 색다르네요. (사진기자가 모자를 위로 올려달라고 부탁하자) 모자를 이렇게 올려 쓰면 바보같이 보여요. 사실 얼굴 면적이 많이 나오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될 수 있음 가려줘야죠. 하하.
배: 개그맨 앞에서 더 재밌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그건 그렇고 뭐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열불나게 달려왔습니다. 아니,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은퇴해도 되는 겁니까? 지금 저렇게 (마침 삼성의 양준혁이 경기 전 팀 훈련에 한창이다) 열심히 뛰고 있는 선배들도 계시는데 벌써 은퇴를 한다는 게 좀 ‘거시기’하지 않을까요?
유: 개인적인 욕심만 앞세운다면 다른 팀에서 선수 생활을 연장할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11년 동안 잠실 운동장에서 이 유니폼을 입고 LG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유지현이라는 야구선수가 존재했기 때문에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뛸 자신이 없었어요. 가능하면 LG에서 마무리하고 다른 방법으로 LG를 위해 봉사하고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배: 저도 워낙 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다 보니 유지현 선수의 은퇴가 너무 아쉽네요. 처음 은퇴 소식을 접했을 때는 ‘설마’했었고 그 다음엔 혹시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데뷔 후 지금까지 지난해와 올해 빼놓고는 성적이 쭉 좋았잖아요. 혹시 은퇴 후 코치가 되면 뭐 더 좋은 조건이라도 있는 건가요?
유: 하하. 코치와 감독보다 더 좋은 게 선수라는 거 잘 모르시죠?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선수만 하겠어요. 물론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은퇴하는 건 아니에요.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거죠. 팀 입장에서도 제 존재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제 연봉이 적지 않잖아요.
배: 너무 결심이 확고하시네. 지금 같아선 돈 더 준다고 해도 안하시겠어요. 하하. 농담입니다. 지난 11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해를 꼽는다면 아마도 데뷔 첫 해가 되겠어요. 신인왕 수상에다 팀 우승까지 차지했으니까요.
유: 물론 그렇죠. 특히 신인왕 수상은 상 받은 데 대한 기쁨보다 유지현이라는 야구선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어요. 제가 대학 3학년 때까지 좋은 성적을 올리다 4학년 때 팔꿈치 부상으로 프로 입단할 당시 입단 조건이 별로 안 좋았거든요. 제 진가를 야구인들에게 보여줬고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아 기쁨이 두 배였죠.
배: 유지현 선수의 입단 동기인 김재현, 서용빈 선수와 한때 ‘LG 신인 3인방’으로 돌풍을 일으켰었는데 당시 추억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어요.
유: 솔직히 언제 그런 적이 있었나 싶어요. 희극이자 비극은 입단 첫 해를 빼놓고는 각자의 사정에 의해 3명이서 한 시즌을 풀로 뛰어 본 적이 없다는 거죠. 제가 방위 복무로 빠지고 재현이가 부상으로 못 뛰고 용빈이도 병역 문제로 빠지는 등 계속 돌아가면서 야구장으로 출근하지 못했어요.
배: 세 선수 중 누가 가장 인기가 많았나요?
유: 하하. 팬들의 부류가 각자 다 틀렸어요. 당시 재현이가 스무 살이고 나와 용빈이가 스물네 살이다보니 소녀팬들은 주로 재현이를 좋아했죠. 그리고 약간 화려하고 튀는 팬들은 용빈이를 찾았고 전 소녀팬도 있었고 남성팬들도 많았어요. 곱씹을수록 아! 정말 ‘옛날이여’네요.
배: 11년 동안 여러 감독님을 만나셨잖아요. 가장 잊지 못할 감독님을 꼽는다면?
유: 아무래도 이광환 감독님을 빼놓을 수가 없죠. 신인 때 제 가능성을 보고 신뢰를 보내주셨거든요. 그 신뢰가 아니었더라면 신인왕이나 좋은 성적도 없었을 거예요. 앞으로 제가 지도자를 한다면 이 감독님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인터뷰가 끝난 뒤 유지현은 야구공 4개를 구해와 은퇴 기념으로 자신을 빙 둘러 싸고 있는 취재진들에게 사인을 해줬다. 배칠수씨의 딸과 사진기자의 아들, 그리고 담당기자의 딸들에게 이름을 적고 사인을 하는 유지현. 아마도 내년에는 코치 배번을 달고 선수들과 파이팅을 외치는 그를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야구장을 나오는 발걸음이 오히려 가벼워졌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