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덧 서른. 현주엽은 ‘국내 최고 포워드’라는 자존심 회복을 위해 낮잠 시간도 아껴가며 운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아픈 만큼 성숙한 것일까. 그의 웃음 가득한 얼굴에 눈빛만큼은 매섭게 빛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동안 팀성적 부진, 무릎 부상, 상무 입대 등으로 프로농구판에서 이름을 제대로 내걸지 못한 현주엽(29·부산 KTF매직윙스)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와신상담중이었다. 올 시즌만큼은 ‘말’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며 인터뷰까지 거절할 정도였다. 이런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만 해도 인터뷰를 ‘의무’가 아닌 ‘방해’라고 생각하는 그의 벽을 넘기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쉬운 질문, 어려운 질문들을 적절히 섞어가며 진행하자 그는 쉽게 ‘오픈 마인드’가 되어 마음속에 담아둔 사연들을 하나 둘씩 끄집어내고 있었다. 어느덧 현주엽은 도도하고 거칠 게 없어 보였던 ‘청년’에서, 삶의 깊이가 묻어나는 ‘어른’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존심 - 화려한 과거 ‘기름기’ 쪽
“저 올해 진짜 잘해야 해요. 자존심도 회복하고 싶고 좋은 대우 받고 우승할 수 있는 팀으로 옮기고도 싶고, 하여튼 잘해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 강렬해서 낮잠 자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입니다.”
프로 데뷔 후 상무에서 보낸 2년을 빼고 모두 네 시즌을 치렀는데 단 한 번도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고 있는 모양이다. 더욱이 올시즌을 마치면 FA(자유계약선수) 신분이라 더더욱 농구에 올인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돌아볼 시간들이 많았다고 한다. 상무에서 보낸 ‘군바리’ 생활과 부상과 재활 훈련을 하는 동안 화려한 ‘과거’를 청산하고 잊어가며 기름기를 쫙 뺄 수 있었단다.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기자의 질문을 정확히 꿰뚫으며 ‘양념’ 섞지 않고 ‘재료’들만 쏟아낼 줄 아는 재치를 가졌는데, 현주엽은 기자들에게 그리 후한 점수를 받는 편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다’고 보시는 거죠. 전 그냥 농구 선수로 비치길 바라는데 언론에선 여러 가지 색깔로 절 포장해서 내놓더라구요. 농구할 때만 농구선수로 봐주고 코트를 벗어나면 그냥 평범한 남자로 봐주면 안되나요? 그런 일들이 쌓이다 보니 인터뷰를 꺼리게 되고 기자들과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고 그랬어요. 사실, 운동이 잘돼야 인터뷰도 신나게 할 수 있죠.”
프로운 - 패배한 숫자 세어보니
어찌 보면 운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는 프로생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환경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서부터 대학까지 제가 속한 팀은 항상 최고의 성적을 내는 팀이었어요. 전 그 안에서 득점만 올리면 자연스레 빛이 날 수가 있었죠. 편하게 운동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선. SK에서 골드뱅크로 팀을 옮기면서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했어요. 팀 분위기, 같이 생활하는 선수들에게 적응하기가 힘들었죠. 용병들 도움도 받지 못했어요. 해도 안 된다는 생각들까지, 정리가 안되더라구요.”
항상 이기는 데 익숙해 있다가 지는 일이 잦다보니 코트에 서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웠다고. 프로 와서 1년 동안 진 횟수가 그 이전의 농구 생활을 통틀어서 패배한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고 하니 그가 겪고 느꼈을 온갖 시련들이 그림으로 그려지는 듯했다. 그래서 그가 유독 FA 후 성적낼 수 있는 팀, 자기 자신이 강해질 수 있는 팀으로 옮겨가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른다.
서른 살 - 아픈 만큼 성숙했다
우리나라 나이로 어느덧 서른 살이 된 현주엽에게 나이를 실감하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한다.
▲ 고려대 시절 현주엽(왼쪽)과 연세대 서장훈과의 경기 모습 | ||
휘문고 시절 초고교급 스타로 부상했다가 고려대를 거쳐 SK에 지명돼 서장훈과 한솥밥을 먹을 때만 해도 현주엽은 남부러울 게 없는 톱스타플레이어였다. 그러나 데뷔 첫 해 ‘두 마리 용’을 보유했던 막강 전력 SK는 예상을 뒤엎고 내리막길을 달렸고 당시 최인선 감독과 불화설에 휘말린 현주엽은 99년 조상현과 트레이드돼 골드뱅크로 팀을 옮겨갔다.
“그때 SK에 계속 남았더라면 이렇게 힘들게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골드뱅크에서 절 굉장히 필요로 했기 때문에 트레이드될 수밖에 없었겠죠. 그래도 아쉬워요. 제 인생인데 제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없었다는 사실이.”
서장훈 - ‘두 마리 용’의 만남
‘만약’이라는 전제를 깔아놓고 또 한 마리의 ‘용’ 서장훈과 한팀에서 계속 생활했다면 현주엽의 농구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까. 당시 한국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빅맨’이자 라이벌로 꼽히는 두 선수가 함께 생활하는 부분에 대해 정작 선수 당사자들보다도 주위에서 더 흥미있게 지켜봤고 여러 가지 루머들을 양산해 내며 두 사람의 관계를 해부하는 걸 즐겨했었다.
“서로 조금씩만 양보했더라면 장훈이 형이랑 같이 뛰는 것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정말 강하고 힘센 팀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주엽은 우승에 대한 욕심 때문에서라도 서장훈과 한팀에서 뛰고 싶다는 속내를 처음으로 밝혀 기자의 귀를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SK시절에는 나이가 어려 서장훈과 섞이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지 몰라도 (나이를 먹은) 지금은 가능할 것 같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한 당시 선수들보다도 감독이 팀을 하나로 묶는 데 역부족이었다는 말도 거침없이 내뱉었다.
스캔들 - 솔직하게 만났을 뿐
조심스럽게 스캔들에 대한 질문을 꺼냈다. 그동안 여자 연예인들과의 열애설 등으로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한 화려한 이력들에 대해 한번쯤은 당사자의 설명을 직접 듣고 싶다는 부연 설명을 달며 현주엽의 입만 쳐다봤다.
“(‘올 것이 왔다’며 대답을 꺼리던 현주엽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사귀었든 안 사귀었든 안 만났는데 스캔들로 기사화된 사례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봤기 때문에 소문이 난 거고 기사로 확대된 거고. 전 제가 만나는 사람이 아무리 유명인이라고 해도 일부러 숨기거나 비밀 장소에서 남몰래 데이트하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가 불륜도 아니고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굳이 숨어서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두 사람이 공인이다 보니 원치 않는 ‘현장 목격담’이 기사화되고 필요 이상의 소문들이 포장되고 확산되면서 적지 않은 상처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헤어졌냐고 되물었다.
코리아텐더에서 이동통신업체 KTF로 문패를 바꿔 단 올시즌, 현주엽은 ‘팀 분위기가 일 내기 직전’이라며 애드벌룬을 띄운다. 상무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추일승 감독과 어느 때보다 막강해진 용병들의 파워 플레이, 그리고 애정과 열정으로 더욱 단단해진 팀워크도 현주엽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게 하는 부분들이다.
“말로 달라진 모습 보여주겠다고 떠들면 뭐해요. 직접 보여드릴 겁니다. 한국 최고의 포워드란 타이틀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서른 살 인생살이의 희비쌍곡선을 모두 담기엔 인터뷰 일정이 빠듯했지만 현주엽은 있는 모습 그대로, 느낌 그대로, 겪은 그대로, 진솔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사진촬영을 하면서 ‘매직 히포’가 ‘매직 에어’로 바뀐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현주엽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KTF팀측에서 현주엽의 트레이드마크인 ‘하마’란 별명을 없애고 새로운 대안을 물색하다가 고심 끝에 나온 타이틀이 ‘매직 에어’였고 기자들에게 ‘매직 에어’란 타이틀을 붙여달라고 특별 부탁을 했던 것.
“‘매직 에어’요? 아무리 색다른 별명을 갖다놔도 사람들은 히포를 더 좋아할 걸요? 처음엔 ‘히포’란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젠 괜찮아요. 제 이미지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거죠.”
올시즌 끝나고 술 한잔 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술자리에선 들을 말도, 할 말도 더 많을 것이다. ‘말술’로 유명한 그가 농구를 위해 몇 달째 술을 끊고 있다는 부분에서도 남다른 각오가 전달된다. 모든 걸 참고 포기하고 인내한 보람이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아픈 건 한 번으로 족하다. 현주엽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