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진출과 관련한 주변의 성화와 달리 정작 임창용은 여유를 갖고 기다리고 있다며 일본에 꼭 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휴대폰 2개의 용도
샤워를 마치고 나온 임창용과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임창용의 차에 올라탔다. SAAB 컨버터블카였다. 익숙한 솜씨로 사람 많고 비좁은 명동길을 빠져나와 신세계백화점 뒤편에 자리한 고깃집으로 향했다. 탁자 위에 놓여진 휴대폰 2개가 눈에 띄었다. 1개는 기자용, 2개는 사생활용이란다. 즉 공적인 전화와 사적인 전화를 나눠 쓴다는 설명이다.
“사실 이렇게 인터뷰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애써 기자들의 전화를 피하는 편이에요. 뭐라 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할 말이 없는 제 입장도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그래서 이 자리도 그리 편치만은 않아요. 그냥 밥이나 맛있게 먹어요.”
만나기 어려운 선수를 앞에 두고 식사만 하고 헤어질 수는 없었다. 민감하지 않은 질문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했다.
겉모습만 '날라리'
임창용에 대한 선입견 한 가지. 다분히 놀기 좋아하는 ‘방랑과’라는 이미지다. 그러나 임창용은 최근 운동을 시작한 뒤 가급적 술을 멀리한다. 술을 마시긴 해도 조금 과하게 마시면 바로 잠이 드는 스타일이라 허리띠 풀어놓고 폭음하는 건 1년에 한두 번이 전부란다.
“서울에 아는 형들이 많거든요. 전화 오면 먼저 밥 먹자고 선수를 쳐요. 술자리를 피하려는 ‘꼼수’죠. ‘밤무대’ 행차도 좋아해요. 한때 자주 갔었죠. 지금은 안 그래요. 역시 술 때문이에요. 나이 들면서 체력이 떨어진다는 걸 절감하고 될 수 있으면 술을 멀리하려고 해요.”
서른 즈음에
내년이면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 살에 접어든다. 아직은 실감을 못하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조금씩 ‘힘이 달린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나이 드는 게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는 그이다. 특히 올 시즌 권오준, 배영수 등 쟁쟁한 신인들이 치고 올라오는 걸 목격하면서부터 점점 자신감이 상실되고 자신의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음을 느꼈다고 토로한다.
“후배들이 겁나더라구요. 어릴 때는 내가 선배를 앞서갔잖아요. 열심히 안 해도 다 됐어요. 마운드에 서면 거칠 게 없었죠. 지금은 안돼요. 내 자리 빼앗기지 않으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 돼요. 자꾸 옛날 생각에 빠져 신세 한탄만 하다간 무너지기 십상이더라구요.”
그래서 12월 초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고 한다. 해태(현 기아)에서 활동할 때만 해도 12월 훈련은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삼성으로 이적 후 12월에 훈련해 본 기억이 없다고 한다.
“스물세 살 이후 겨울은 무조건 휴식기였어요. 그동안 못 놀았던 거 한꺼번에 몰아서 놀러다녔어요. 그때 놀지 않고 체력훈련에 신경 썼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모습이었겠죠. 후회는 안해요. 지금부터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운동에 매달리고 있는지도 몰라요.”
일요일만 빼놓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임창용은 매일같이 휘트니스클럽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하루 4시간씩 땀을 흘리다보면 복잡한 생각들이 일시에 정리되는 기분이란다.
“솔직히 지금까지 빠른 볼 하나로 여기까지 온 셈이에요. 작년부터 나만의 신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절감하고 있었죠. 그래도 여전히 직구는 최고로 자신있어요. 그러다 두들겨 맞으면 가장 자신없는 구질이 되는 거고. 날 좀 더 단단히 만들어야 해요.”
잊을 수 없는 해태 시절
군기 세기로 유명한 해태에 입단할 때만 해도 선배들의 ‘잔소리’쯤은 쉽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설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운동할 수 있을 거란 상상에 가슴이 설렐 정도였다. 그런데 현실은 이상과 따로 놀았다.
“선배들이 정말 무서웠어요. 선배들이 말하면 무조건 대답만 해야 돼요. 감히 질문하는 건 상상도 못했죠. 라커룸 청소는 신인들이 당번인데 담배 꽁초 하나라도 나오면 한 대씩 맞았어요. 선배들 말이 무조건 법이었죠. 그러다 결국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어요.”
“상진이가 와서는 ‘도망가자’고 하더라구요. 혼날 게 두려웠던 거죠. 상진이가 자꾸 옆구리를 찌르는 거예요. 9회가 되니까 나까지 불안해지데요. 일단 튀고 보자고 생각했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경기 끝나기 전에 운동장을 빠져나왔어요. 다음날 경기장에 나갔다가 죽지 않을 만큼 맞았습니다. 선배들한테 돌아가면서 맞았죠.”
그날 밤 ‘도망자’들은 포장마차로 향했다. 쓰디 쓴 소주를 약 삼아 위로를 주고받으며 선배들을 사정없이 씹어댔다고 한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임창용이 김상진에게 가볍게(?) 보복을 가했다. 자리를 지키려던 선배를 유혹한 죄목 때문이다.
아~김응용 사장
해태에 있을 때만 해도 임창용은 김응용 사장의 아들이나 다름없었다. 하와이 전지훈련지에서 꼬깃꼬깃 접은 1백달러짜리 지폐를 아무도 모르게 손에 쥐어 주며 간식 사 먹으라고 감동을 선사할 때만 해도 두 사람은 오랜 ‘허니문’을 즐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임창용의 ‘머리’가 커지면서 김 사장한테 그는 상대하기 벅찬 선수가 되고 말았다. 특히 삼성에서 다시 만난 사제가 더 이상의 밀월 관계를 유지하기엔 많은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1년인가요? 대구 한화전이었어요. 8회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쓰리볼 상황이었죠. 주자가 3루에 있어 공 하나만 잡으면 다음 이닝으로 넘어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고의4구로 타자를 내보내라고 사인을 내시더라구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못본 척하고 일어서 있는 포수에게 앉으라고 신호를 보냈죠. 벤치에선 일어서라고 하고 난 앉으라고 하고, 포수가 아마 대여섯 번은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했을 거예요. 그러다 강판당했어요. 분을 참을 수가 없어 로진팩을 발로 차고 더그아웃에서 글러브를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는 감독실 문짝까지 걷어찼어요. 그러곤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다음날 선배들을 일일이 찾아가 용서를 구한 임창용은 선배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비난하기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너그럽게 받아준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감독님을 찾아갔죠. 어제 일은 죄송했지만 이런 기분으론 1군에 있기 힘드니 2군으로 보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랬더니 지금 2군으로 가면 더 시끄러워진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러다 다음 한화전에서 완봉승을 거뒀어요.”
불투명한 해외진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연일 보도되고 있는 해외 진출과 관련된 기사는 ‘맑음’보다는 ‘흐림’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국내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말 말이 많데요. 기자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이승엽보다 더 받아야 한다는 기사가 나중엔 심정수보다 더 받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변하더라구요. 정말 열 받았습니다. 난 나일 뿐이에요. 누구와 비교 당하는 것도 싫고 비교하고 싶지도 않아요. 난 여유가 있는데 주변에서 더 성화인 것 같아요. 어차피 1월 말까진 시간이 있어 부담 없이 기다리려고 했지만 너무 심하게 관심을 쏟으니까 참 힘들어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에이전트 문제를 해결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부분도 솔직히 시인했다. 아버지가 정한 두 명의 에이전트와 그가 같이 일하고 싶은 에이전트와 의견 차이가 있어 두 사람 중 한 명은 포기해야 일의 진행이 가능했다.
라쿠텐 거절 이유
임창용의 해외 진출과 관련해서 가장 진도가 많이 나갔던 일본 신생팀 라쿠텐 골든 이글스의 입단 제의를 거절한 진짜 이유가 궁금했다.몸값만도 옵션을 포함해서 3년에 50억원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더더욱 아리송했다.
“액수는 만족했어요. 그런데 신생팀인데다 계약 기간이 길어서 부담스러웠어요. 솔직히 신생팀이다보니 아무리 잘해도 좋은 성적을 내기가 힘들잖아요. 타격도 뒷받침되고 성적을 낼 수 있는 팀이었다면 무조건 계약을 했을 거예요. 지금도 내 결정이 잘된 것인지 잘못된 판단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돈을 벌었을지는 몰라도 적응하기에 무척 힘들었을 거란 사실입니다.”
'아직도 내 사랑' 요미우리
임창용은 인터뷰 말미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대해 진한 애착을 나타냈다. 에이전트 문제가 얽히지만 않았어도 벌써 계약했을 거라는 말 속엔 아쉬운 미련을 담아내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밝히지만 전 처음부터 일본이었어요. 오라는 데도 많았고. 물론 미국 메이저리그가 최종 목표이긴 하지만 일본을 거쳐서 가고 싶었죠. 미국의 에이전트로부터 이런 저런 얘기를 전해 듣긴 해도 별로 와 닿지가 않아요. (성사되기가) 힘들 것 같아서죠. 요미우리는 그런 점에서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협상의 끈은 남아 있고 계속 진행중이거든요. 잘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임창용에게 ‘만약 해외진출에 실패하면 국내 다른 팀으로 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임창용은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전혀요. 국내에 남을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몇몇 팀이 거론되는 걸로 아는데 난 무조건 나갈 겁니다. 한국에선 더 이상 이룰 게 없다고 생각해요.”
삼성에 섭섭하다!
삼성에 6년간 몸담으면서 67승 1백38세이브를 올렸다. 임창용은 경기장 밖에선 몰라도 경기장에서만큼은 몸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러나 삼성이 FA 재계약 포기 의사를 밝혔을 때는 서운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고 털어놨다.
“만약에 내가 이승엽이었다면 이런 대접을 받진 않았을 거예요. 정말 열심히 몸 바쳐 뛴 선수를 한마디 말도 없이 잘라 버릴 땐 무척 섭섭하더라구요. 내 복이 이거밖에 안되나 싶었어요. 다 내 탓이죠 뭐. 난 이미지가 별로 안 좋잖아요. 승엽이는 자기 관리를 정말 잘한 선수인데 반해 난 이미지 관리에 소홀했어요. 그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식사하면서 인터뷰하는 게 불편했던 모양이다.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절로 배가 부르다며 툴툴거렸다. 마지막 질문 한 가지. “결혼 안 해요?” “아직은 이렇게 (혼자) 지내는 게 편해요. 서른 중반이나 후반쯤 선수 생활을 완전히 끝내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외로움요? 그런 거 안 느껴요. 솔직히 여자 만나기가 두려워요. 워낙 크게 겪어서 그런가 봐요.”
여자보다는 야구 생각밖에 안한다는 임창용은 기자가 권한 맥주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사이다만 홀짝거리는 걸로 목을 축였다. 서른 살 전 야구를 제대로 사랑하게 됐다는 그가 ‘제대로’ 철이 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