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매리너스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이대호는 “홈런 타자가 되기보다는 적응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몸매는 슬림해졌지만 표정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초등학교 동창, 추신수와의 회동
지난 2월 21일 오전, 시애틀 매리너스 훈련장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였다. 텍사스 스프링트레이닝 캠프가 있는 서프라이즈와 피오리아의 거리는 승용차로 25분 정도 소요된다. 이날 추신수의 등장은 한 마디로 ‘깜짝쇼’였다. 이대호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상황에서 추신수가 ‘짠’하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대호는 생각지도 못한 친구의 출현에 반가움과 함께 놀라움을 나타냈다.
추신수가 친구 이대호를 응원하기 위해 시애틀 매리너스 훈련장에 깜짝 등장했다.
훈련 교대 중에 추신수를 발견한 이대호는 “어휴 메이저리거께서 여긴 어인 일이십니까?”라며 모자를 벗고 꾸벅 인사를 했다. 서로 웃음을 터트리며 포옹을 나눈 두 사람은 가볍게 안부를 묻고 곧장 점심 약속을 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MBC스포츠플러스 허구연 위원까지 가세한 추신수와 이대호의 점심 식사 자리. 이대호는 친구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해 마이너리그 루키시절부터 단계를 밟아 올라간 친구의 야구 히스토리를 곱씹으며 자신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기도 했다. 추신수는 “스프링캠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주전들의 자리가 결정돼 있지만 그래도 이대호니까, 이대호이기 때문에 충분히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이후 약 6년 만에 처음 만난 부산 친구들은 한동안 수다를 떨며 길고 긴 점심 식사를 이어갔다. 이대호와 헤어진 뒤 추신수가 기자에게 한 말. “사람 인생은 참 묘하다. 내가 미국 오면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던 시애틀에 대호가 들어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정말 돌고 도는 인생인 것 같다.”
# 이대호의 도우미, 이와쿠마와 아오키
이대호가 애리조나의 시애틀 훈련장에 처음 합류해서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눈 선수는 이와쿠마 히사시였다. 이대호의 라커와 이와쿠마가 있는 곳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 그러나 이대호는 이와쿠마를 발견하고 일부러 다가가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이와쿠마는 이대호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WBC 대회(2009년) 때 이대호 선수를 상대하느라 아주 힘들었다”며 타격폼을 흉내냈다. 이대호는 손사래를 치며 “과찬이다. 하여튼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다시 악수를 청했다. 이와쿠마의 환대에 이대호는 긴장했던 얼굴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와쿠마 히사시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한 잭 그레인키를 대신해 LA 다저스와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메디컬 테스트 이상으로 계약이 무산되면서 이전 팀이었던 시애틀 매리너스와 재계약을 맺었다.
야수에선 일본의 아오키 노리치카가 눈에 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통산 타율 0.329, 1284개의 안타를 기록한 아오키는 2012년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에 입단하면서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뒤 캔자스시티 로열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거쳐 올해 시애틀에 새 둥지를 틀었다. 아오키나 이대호나 시애틀이 처음인 건 맞지만 메이저리그 커리어 면에선 위아래가 분명한 셈이다.
이와쿠마가 다소 딱딱한 이미지라면 아오키는 일본 기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을 만큼 친화력이 뛰어나다. 한국 기자들한테도 스스럼없이 인사하고 팀 동료들하고도 대화하는 걸 즐겨한다. 26일 선수단 전체 훈련이 시작되기 이틀 전에 피오리아 캠프장에 입성한 아오키 노리치카는 이대호와 클럽하우스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며 “대표팀 시절, 이대호 선수를 볼 때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는 말과 함께 “우리 팀에 들어왔으니 팀 메이트로서 잘 지내보자”는 얘기를 전했다고 한다. 이대호는 아오키와 식사도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 이대호의 궁금증, “빠른볼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이대호를 처음 시애틀 클럽하우스에서 만났을 때, 그는 기자에게 “다른 두려움은 없다. 단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빠른 볼을 어떻게 공략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는 말과 함께 “아무리 빠른 투수라고 해도 170, 180km을 던지는 게 아니지 않나.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대호는 스프링캠프 소집 이후 일주일 만에 시범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이나 일본은 캠프에서 한 달 이상을 훈련한 뒤 연습경기나 시범경기를 치른다. 그런데 이곳은 합류하자마자 곧장 경기에 나선다. 캠프가 열리기 전에 ‘알아서’ 몸을 만들어 오지 않으면 ‘죽음’이나 마찬가지이다. 훈련 분위기는 굉장히 자유로워 보이는데 그에 대한 책임감이 살벌하기까지 하다. 이런 분위기가 굉장히 새롭지만, 그래서 더 깊게 알고 싶어진다. 한 마디로 재미있다. 이런 떨림 자체도.”
아직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시범경기가 시작돼도 이대호는 출전하지 못한다. 그는 “가급적 경기 나가기 전에 이곳 투수들의 빠른 볼을 많이 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마이너리그 계약? 그래도 내 갈 길 간다!
이대호는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계약 조건이 알려지면서 줄곧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데 대해 안타까운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더욱이 25인 로스터에 진입하지 못할 경우 3월 말 FA로 풀리는 옵트아웃 조항이 삽입돼 있다고 밝혀지면서 그의 진로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이대호는 이대호였다. 어떤 비난도,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메이저리그 캠프 초청 신분으로 왔다고 해서 후회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후회도 안할 것이다. 무엇보다 시즌 시작하기 전까지 부상당하지 말고 몸 잘 만들어서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이대호는 주전들과 훈련하지 못하고 빅리그 진입을 꾀하는 후보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데 대해선 “주전이라고 해서 항상 주전이 아니듯 마이너리그라고 해서 모두 마이너리그에만 머무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가능성에 더 많은 무게를 뒀다.
시애틀의 제리 디포토 단장은 이대호의 진로와 관련해서 “1루수로 좌투수를 상대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이라며 남다른 기대감을 나타냈다. 설령 그 말이 ‘립서비스’라고 해도 이대호의 입지가 그리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훈련 중에 보이는 이대호의 환한 표정만 봐도 디포토 단장의 말이 ‘허튼소리’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일본 기자가 본 이대호 “경쟁자 몬테로보다 낫다”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나가오 카츠시 기자는 시애틀과 스플릿 계약을 맺은 이대호의 입지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시애틀은 1루수에 아담 린드라는 좌타자가 있지만 좌투수에게 약점을 보이기 때문에 우타자가 절실하다. 헤수스 몬테로가 이대호의 경쟁자가 될 수 있겠지만 지난 3년간 몬테로를 지켜봐온 나로선 이대호가 일본에서 보여줬던 꾸준한 모습과 일본시리즈에서의 활약을 미국에서도 펼쳐 보인다면 몬테로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스프링트레이닝과 시범 경기에서 이대호가 보이는 성적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가오 카츠시 기자가 꼽은 몬테로의 약점은 불확실성. 양키스 시절에는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뽑혔지만 꾸준하지 못하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한다. 반면에 이대호는 다양한 국제대회를 통해 쌓은 경험이 중요한 ‘무기’이다. WBC, 올림픽, 아시안게임, 프리미어12 대회 등 국제 경기에서 다양한 커리어를 쌓았고, 매 대회마다 중심타자로 출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시애틀은 이대호를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나가오 기자의 설명이다. [영] |
애리조나 삼겹살파티 뒷얘기 “현진아 SNS에 올릴 땐 형한테 허락 받아야지” 사진=류현진 인스타그램 그 모임은 누가 먼저 얘기하지 않는 이상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다. 기자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현진이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수십 개의 매체에서 해외파 선수들의 모임에 대해 자세히 다뤘고, 기사는 계속 재탕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다. 그중에서 한 매체는 이들이 모인 장소가 류현진의 LA 다저스 집이라는 오보까지 냈다. 애리조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류현진이 LA 자신의 집에 선후배들을 초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추신수는 이에 대해 “난 현진이가 SNS에 사진 올린 걸 전혀 모르고 있다가 다른 사람의 귀띔으로 알 수 있었다”면서 “형들이랑 함께 자리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현진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덧붙인다. “현진아, 그런 사진 올리려면 형한테 먼저 허락받고 올리는 걸로. 알았지?^^”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