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친선경기에서 조원희가 공을 드리블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스웨덴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두 차례 평가전은 물론 국가대표 데뷔전이나 다름없었던 이란전에서 첫 골을 터트리며 화려한 신고식을 쏜 조원희의 플레이는 태극마크를 단 지 얼마 안된 ‘초짜’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흙속에서 캐낸 진주’ ‘혜성같이 등장한 신예’ 등 축구팬들은 물론 기자들의 찬사를 동시에 받고 있는 조원희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어린시절 우상은 고정운
어렸을 때 조원희의 우상은 FC서울의 코치로 있는 고정운이었다고 한다. 중3 때 축구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적토마’ 고정운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바람에 ‘제2의 고정운’이라는 ‘황송한’ 타이틀까지 얻었다면서 웃는다. 빠르고 파워 넘치고 눈에 띄는 돌파력 등 고정운 코치의 선수 시절 플레이 스타일을 닮고 싶어 보이지 않는 노력을 많이 했다는 조원희는 “(고정운 코치의 경기 스타일과) 닮아 보이느냐?”면서 지금도 열심이다. “그런데 지난번 FC서울과 게임 때 보니까 고 코치님이 무척 무서워 보이더라구요.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시던데요? 그 모습 보고 더 반했습니다.” 조원희는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이 없는 고정운 코치한테 자신이 팬임을 전해 달라는 특별 부탁을 건넸다.
강한 이미지 불만 없어요
10월12일 이란전을 통해 일약 스타로 떠오른 조원희는 네티즌들을 통해 손기정옹과 흡사한 외모라는 지적과 함께 두 사람의 얼굴이 같이 뜬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자신이 봐도 너무 닮았던 것. “유명하신 분과 닮았다고 하니까 기분 좋죠. 제 얼굴이 좀 강해 보이죠? 어렸을 때는 귀엽고 착해 보였다고 하던데 크면서 얼굴 형태가 변하나 봐요.” 그래도 불만은 없단다. 강한 이미지에 한몫하는 짧은 헤어스타일도 끝까지 고수할 참이다. 차두리 헤어스타일과의 차이점을 묻자, “많이 다르죠. 두리형은 아예 ‘바리깡’으로 밀잖아요. 전 그래도 머리카락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두리형은 얼굴이 갸름하고 머리통도 아주 예뻐요. 저랑 비교가 안돼요. 그 형이 훨씬 잘 어울리니까”라고 말한다.
미련 남은 대학 진학
조원희는 물론이고 조원희의 부모는 대학 진학을 우선 순위로 삼았다. 프로팀 입단보다 ‘간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축구선수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그러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대학 입학이 무산됐고 2002년 울산현대에 월봉 1백만원의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했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대학을 가지 못했던 게 더 좋은 결과를 낳고 말았지만 그 당시에 조원희와 부모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인지 조원희는 언젠가는 꼭 대학에 가고야 말겠다고 벼르고 있다. 설령 공부 실력이 뒤떨어져 대학에 갈 수 없다면 돈 벌어서 기부금 입학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그만큼 한이 된 것이다.
▲ 조원희 선수 | ||
조원희가 박지성을 처음 본 건 이란전이 열리기 전전날이었다. ‘김남일 패밀리’로 불리는 모임에 소속팀 선배인 안효연이 다리를 놔 강남 신사동의 한 베트남 쌀국수집에서 인사를 하게 된 것. 세계적인 명문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는 축구 스타를 사석에서 본다는 건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그날 만남 덕분인지 대표팀에서 다시 만난 박지성은 은근히 조원희를 잘 챙겨줬다고 한다. 박지성이 한국에 올 때마다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은 김남일, 안효연 등이 어울리는 ‘김남일 패밀리’. 조원희는 보스격인 김남일에 대해 ‘카리스마 대왕’이라고 평한다. “도통 말을 안 해요. 계속 듣기만 하다가 필요할 때 한두 마디씩 던지죠. 주위에서 하도 카리스마, 카리스마 하니까 더 그러는 것 같아요.”
안효연은 축구계의 진정한 ‘마당발’이란다. 골키퍼 김영광이 더 ‘마당발’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영광이는 좀 약하죠. 효연이형은 진짜 ‘짱’”이란다. 그러면서 살짝 비밀 한 가지를 털어놓는 센스! “지성이형은 항상 중간에 도망가더라구요. 끝까지 남아 있는 적이 없었어요. 어딜 가시는지 정말 궁금해요.”
송종국과의 경쟁?
조원희는 본프레레 감독이 대표팀에서 중도하차하는 걸 가장 가슴 아파했던 선수 중 한 명이다. 이유는 한 가지.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본프레레 감독이 처음 대표팀에 뽑아줬고 짧지만 태극전사들과 함께 생활하며 꿈 같은 시간을 보냈던 조원희는 새로운 감독이 올 경우 자신이 다시 발탁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김대업 대표팀 주무가 전화를 걸어선 ‘아픈 데 없냐’고 물으시더라구요. 그러다 다음날 아드보카트 감독이 절 뽑았다는 얘기를 듣게 됐죠. 정말 뛸 듯이 기뻤어요.” ‘아드보카트호’에 승선해 보니 해외파의 합류로 선수층이 상당히 두터웠다. 당연히 주전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이란전을 앞두고 경기가 있는 날 오전 11시30분, 선수단 미팅이 있었다. 이란전에서 선발로 뛸 선수가 발표되는 자리였다. “회의실에서 고트비 코치가 화면을 쏘면 포지션별로 선수 이름이 뜨거든요. 거기에 이름이 있는 선수가 경기에 뛰는 거죠. 그 순간 선수들 분위기가 묘해져요. 특히 전 (송)종국이형이 제외되고 제 이름이 올라가 있어 너무 놀랐어요. 전혀 상상을 못했거든요.”
라이벌은 없다!
송종국은 수원삼성은 물론 중·고등학교 선배로 평소 조원희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송종국의 플레이를 보고 배우려했던 ‘형’이었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는 관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리다툼을 벌이는 라이벌로 묘사되자 조원희는 너무 당황스럽고 민망했다고 털어놓는다. “종국이형은 제가 선발로 나가게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해줬어요. 경험담을 전하면서 떨고 있는 절 다독거려주기도 하셨죠. 형과는 라이벌이 될 수 없어요. 제가 어떻게 종국이형과 라이벌이 돼요?” 소속팀에서도 송종국의 옆방이 조원희 방이라 안 친하려야 안 친할 수가 없다고 한다.
▲ 지난 10월12일 자신의 대표팀 데뷔전이나 다름없던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58초 만에 첫골을 터뜨린 조원희가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아드보카트 감독 부임 후 세 차례 평가전을 통해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가 나오자 축구팬들은 도대체 본프레레 감독 때는 왜 지금과 같은 플레이를 하지 못했냐는 의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조원희는 독일월드컵이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선수들의 긴장감이 업그레이드된 탓이라고 설명한다. “최소한 16강, 아니 8강에는 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긴장감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경기를 통해 자신감이 상승했고 모든 일정이 월드컵에 맞춰지면서 ‘월드컵’이란 단어가 실감나게 다가온 거죠.” 2002년 월드컵 때는 선수가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는데 지금은 독일월드컵에 참가하는 선수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는 조원희는 ‘가문의 영광’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역시 ‘큰물’에서 놀아야
유럽파 전원이 합류하면서 조원희는 외국에서 활약하는 선배들의 움직임을 통해 너무나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됐다. 실력이 월등하리란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경기장에서 보이는 여유와 자신감은 조원희가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 당장 이룰 수 없는 것들이라 너무 부러웠다고 한다. 이을용이 합류하면서 조원희는 편하게 축구를 할 수 있었다. 많이 뛰지 않아도 중간에서 이을용이 워낙 커트와 패스를 잘해주는 바람에 오른쪽 측면 돌파가 수월했던 것이다. “역시 선수는 ‘큰물’에서 놀아야 하겠더라고요. 달라도 너무 달라요. 이번에 대표팀 소집 때 전 지성이형 방에서 살다시피했어요. 두리형이랑 지성이형이랑 같은 방을 썼거든요. 그 형들한테 프리미어리그와 분데스리가 얘기 듣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으니까요. 제가 맨날 TV로 보는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과 함께 뛰는 형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저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죠?” 조원희도 해외 진출을 소원한다. 박지성 이영표처럼 네덜란드리그를 거친 다음 빅리그에 도전하고 싶다고 밝힌다. 처음엔 자신이 없었지만 박지성을 통해 ‘나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일주일 전에 여친과 이별
여자친구 얘기가 나오자 대뜸 “일주일 전에 헤어졌는데요”라고 말한다. 농담인 줄 알았더니 사실이었다. 세 살 연상의 여자였다고 한다. 이유는? 축구에만 집중하고 싶어서라고. “당분간 헤어진 거예요. 월드컵 끝나고도 서로 계속 좋아하고 있다면 그때 다시 만나고 싶어요. 에이 근데 이런 얘긴 그만해요.” 결혼은 서른 살에 부모님이 정해주는 여자와 하겠다는 ‘요즘 애들’답지 않은 멘트를 한다. 속 깊은 남자, 조원희의 핑크빛 스토리가 월드컵 이후에도 쭈~욱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