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성윤 | ||
# 손발 안맞는 SK
‘베스트5’ 중 3명의 얼굴이 바뀐 SK. 최근의 하염없는 연패가 주전 선수들끼리의 호흡이 아직 안 맞춰졌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임재현-전희철-방성윤으로 이어지는 토종 라인. 여기에 지난 시즌 안양 SBS(현 KT&G)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쥬니어 버로와 프로농구 각 구단의 눈길을 받은 바 있는 데이먼 브라운까지 합류하면서 SK는 우승까지도 가능한 라인업을 갖췄다는 평가다.
그러나 농구는 이름만으로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방성윤의 합류로 팀워크에 균열이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숙소 방 배정 문제. 경기도 용인 양지에 있는 SK전용체육관 겸 숙소는 10개 구단 중 최고로 꼽힐 만큼 쾌적한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다. 방 역시 1∼2년차 5∼6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1인1실을 쓸 정도로 넉넉한 편이다. 그러나 방성윤에게 유독 독방이 제공되면서 이상한 기운은 감지되기 시작했다. SK 구단 측은 “마침 방이 남아 있었고, 방성윤 역시 짝이 없었던 상황”이라며 특별 대우는 전혀 없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방성윤과 함께 KTF에서 트레이드돼 온 김기만(29)이 모 신인 선수와 방을 같이 쓰고 있다는 점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방성윤에 대한 ‘특별대우’는 방 배정뿐만이 아니다. 팀이 이동할 때마다 막내들이 가장 먼저 나와 갖가지 짐을 옮기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우리나라 구단들의 불문율. 전자랜드의 주전 포인트가드 정재호(23)는 팀의 주축 선수 중 한 명임에도 선배들의 빨래를 담당하고 있다. 국가대표팀이 소집되면 국내 최고의 가드 김승현(26·오리온스)이 두 손에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말고 코트에 떨어진 땀을 닦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SK에서는 방성윤에겐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가장 늦게 구단 버스에 올라타는 선수, 몸을 풀러 가장 나중에 모습을 드러내는 선수. 방성윤은 SK의 ‘간판스타’일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SK 선수들의 입에서 “이럴려면 전지훈련은 뭐하러 갔다 왔나” “내가 팀을 옮긴 것 같다” 등등 푸념 섞인 소리들이 나올 만도 하다. 모두 지나치게 방성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단 방침에 대한 볼멘소리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꼭 신인이라서가 아니라 베테랑 간판 슈터라도 한 경기에 14개의 3점슛을 마구 ‘날려대는’ 선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날려 스크린을 걸어주고 싶은 선수는 없을 것이다. SK의 팀워크를 위해서, 방성윤 자신을 위해서라도 겸허히 신인의 자세로, 팀의 막내로 돌아가는 것이 시급하다.
▲ 조상현(왼쪽), 황진원 | ||
반면 방성윤을 보내고 조상현(29)-황성인(27)을 데려온 KTF는 희희낙락. 시즌 초반 ‘슈터 부재’라는 치명적 약점으로 최하위 인천 전자랜드와 함께 ‘2약’으로까지 분류됐던 KTF는 두 선수의 합류 이후 4연승의 휘파람을 불며 중위권 순위 다툼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상태다. 지금과 같은 전력이라면 상위권 도약과 더불어 우승까지도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방성윤이 미국에 체류하던 시절, “국내에 돌아가더라도 절대 KTF 유니폼은 입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 깊은 시름에 잠겨있던 KTF로서는 방성윤의 국내 복귀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후폭풍’을 맞고 있는 셈이다. KTF 역시 조상현-황진원과 용병 나이젤 딕슨까지 주전 5명 중 3명의 얼굴이 바뀌었지만 SK와 같은 혼란은 찾아보기 힘들다. 조상현이 상무 시절 신기성과 함께 복무하면서 호흡을 맞춘 바 있고, 코리아텐더(현 KTF) 출신의 황진원은 KTF가 자신의 친정이나 다름없다. 조상현은 자신의 쌍둥이 동생 조동현(공익근무 중)과 한지붕 아래서 생활하게 됐고, 황진원은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 송영진(27)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KTF 구단뿐만 아니라 이 둘 역시 ‘방성윤 복귀’로 인해 반가운 후폭풍을 맞은 것이다.
물론 막상 트레이드가 발표됐을 때는 수치감도 들었지만 이제 모두 훌훌 털어버린 상황. 조상현은 KTF 유니폼을 입고 나서 무려 52%의 3점슛 성공률을 기록하며 생애 첫 개인타이틀(3점슛왕)을 노리고 있다. SK에서 경기당 평균 14분을 뛰었던 황진원은 KTF에서 단숨에 주전 자리를 꿰차고 매경기 평균 30분 이상 뛰며 공수에서 맹활약중이다.
‘방성윤을 버린’ KTF와 ‘방성윤을 데려온’ SK. 두팀 모두 막강한 ‘방성윤호 태풍’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 태풍이 진로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프로농구판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그 결과를 조금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허재원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