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7일 결혼을 공식 발표한 김동문-라경민 커플. 예비커플답지 않게 닭살멘트도 없고 애정표현도 적었지만 그런 묵묵한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해 보였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12월25일 성탄절에 웨딩마치를 울리는 ‘배드민턴 최강 커플’ 김동문(30·삼성전기) 라경민(29·대교눈높이)은 얼핏 보기엔 도통 ‘예비 커플’같지 않다. 닭살 돋는 멘트나 애정 표현도 없고 그저 ‘대~충’하는 식으로 무덤덤하기 짝이 없다. 결혼식을 앞두고 집 대신 연구실과 팀 숙소를 오가며 마음만 바쁘다는 배드민턴 커플의 미공개 러브스토리를 들어본다.
2년 또는 3년?
‘언제부터 연애를 시작했나요?’ 두 사람의 결혼이 발표된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각자 고민을 했다. 과연 우리가 언제부터 연애를 했는지에 대해. 그러나 그 시기가 참으로 애매하다. 96년 혼합복식 파트너로 만나 자연스럽게 친해진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부터 서로에 대해 이성 감정을 느꼈다. 때문에 여느 커플처럼 언제부터 본격적인 데이트를 시작했는지 콕 찍어서 말하기가 곤란하다.
그런데 나름대로의 계산법에 의해 산출한 시기가 한 사람은 3년이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2년이라는 틀린 대답이 나온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김동문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겉으로 표현한 부분에서 시간 차이가 생긴 것 같다”면서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 만났든 결혼하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니냐”고 말한다. 둘 중에 누가 2년을 말했고, 누가 3년이라고 대답했는지 두 사람의 ‘부탁으로’ 설명하지 않겠다.
‘과거’ 덕분에…
김동문한테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성격 차이로 헤어진 게 2002년 초였다. 그때 김동문은 혼복 파트너였던 라경민에게 실연의 아픔을 전하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라경민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나도 오래 전에 오빠(김동문)의 여자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오빠랑 운동 선후배로만 지냈던 시절, 오빠의 여자친구가 찾아오면 오빠가 날 데리고 나가서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런 사이였기 때문에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난 뒤에 나한테 그 아쉬움과 힘든 마음들을 다 털어놓았던 것 같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오빠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라경민은 선배이자 파트너인 김동문이 심리적인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는 게 당연했고 김동문이 힘들어할 때마다 라경민은 손을 내밀어 김동문의 아픈 가슴을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만남이 사랑이 되고 결혼으로까지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라경민은 “그 여자친구분과의 관계가 전혀 신경이 안 쓰인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지금 그분은 결혼했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가끔 오빠랑 통화도 하는 것 같다”며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보여준다.
하고 가든가 끝내고 가!
라경민은 결혼 날짜를 잡기 전까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김동문이 박사 학위 논문 준비로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데다 논문 심사가 끝나면 곧장 어학연수를 떠날 계획이라 김동문과의 관계가 불안하기만 했던 것이다.
라경민은 김동문과 지금 헤어지면 영영 인연을 맺을 수 없을 것 같은 심정이었단다. 김동문은 이런 라경민의 반응에 대해 충분히 공감했고 이해했다고 한다. “경민이를 놔두고 그냥 가면 내가 나쁜 놈이 될 것 같았다. 다행히 유학 문제도 빨리 결정됐고 논문 심사도 마무리 단계라 경민이가 하고 싶어하는 대로 12월에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됐다.”
국가의 지원을 받아 떠나는 김동문의 유학 일정은 1년이지만 김동문은 자비를 들여 2년을 더 머물 계획이다. 3년 동안 약혼식조차 안하고 떨어져 지낼 생각에 라경민은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라경민의 용기가 크리스마스에 웨딩마치를 울리는 근사한 이벤트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이다.
힘들었던 올림픽 이후
라경민은 지난 아테네올림픽 이후 극도의 슬럼프를 겪었다. 10년 넘게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염증을 느꼈고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데 대해서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잠시 동안 잠적, 대표팀 관계자들을 가슴 졸이게 만들기도 했는데 그때 라경민이 찾은 것은 애인이 아닌 여행이었다.
“오빠한테 가고 싶었다. 오빠를 만났더라면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선뜻 마음이 움직이질 않았다. 왠지 오빠한테 짐이 될 것만 같았다. 오빤 올림픽 남자복식에서 금메달을 따고 여러 가지 행사에 다니는 중이라 내가 옆에 있으면 불편해질 것 같았다.”
김동문의 입장을 배려한 라경민은 올림픽 이후 당분간 연락을 접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지냈다고 한다. 김동문은 라경민의 그런 마음 씀씀이에 크게 감동했다는 후문이다.
김동문은 만약 자신만 금메달을 따고 라경민이 아무 색깔의 메달도 목에 걸지 못했다면 더더욱 힘들었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다행히 마지막날 라경민이 여자복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라경민 입장에선 동메달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나중에서야 오빠가 올림픽 혼합복식에서 멋지게 금메달을 목에 걸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발표하려 했다는 계획을 얘기하더라. 그래서 혼복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한 게 내내 마음이 걸렸다. 그러다 올림픽이 끝날 때 쯤 선수촌에서 오빠의 프러포즈를 받고 기분이 풀렸다. 솔직히 이전까진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오빠의 프러포즈에 ‘아, 이 사람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도 있었다
김동문에게 교제하면서 위기가 있었는지를 묻자 얼마 전에 위기 아닌 위기를 겪었다고 고백한다.
“원래 날 잡아놓고 조금씩 흔들린다고 하지 않나.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과연 이 사람이 내 평생 배우자가 맞을까’하는 고민이 있었다. 경민이랑 결혼하는 게 정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사랑해서인지 자꾸 헷갈리더라. 성격이 정반대인 사람들이 만나야 잘 산다는데 우린 서로 내성적인 게 너무 비슷하다. 경민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이든, 사랑이든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경민이밖에 없고 경민이가 내 아내가 되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두 사람의 교제가 알려지면서 주위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공통적인 반대 이유가 배우자를 운동선수로 맞이하는 부분이었다고. 김동문은 “지금까지 배드민턴만 하고 살았는데 재미없게 결혼을 배드민턴 선수랑 하냐며 반대를 많이 했다”면서 “그러나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설명한다.
라경민은 얼마 전 19일 웨딩촬영에 앞서 웨딩드레스를 처음으로 입어봤다. 소감을 물었더니 그냥 창피했다고 한다. 결혼식 때 하객들의 반응이 걱정되면서도 마냥 쑥스러운 기분이었다고.
유니폼을 벗고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로 한껏 멋을 내며 복식 파트너에서 인생의 동반자로 ‘신분 상승’을 이루는 김동문 라경민 커플. 내성적이고 말수 적은 두 사람의 사생활이 심히 궁금하지만 침착하고 묵직함 속에서 맺어진 신뢰와 사랑이라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해 보이기도 한다.
술을 좋아하는 두 사람의 주량이 궁금했는데 라경민이 소주 3병이라고 실토. 두 사람이 함께 마신 술의 양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애교 없는 제가 유일하게 말이 많고 애교부릴 때가 바로 술 마셨을 때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