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이 지바 롯데와의 재계약 의사를 밝힌 뒤 대구의 한 헬스클럽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빅리그 진출 꿈을 잠시 미룬 그는 1년간 미친듯이 야구만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승엽은 2년째 대구 지산동의 세진헬스클럽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트레이너는 오창훈 관장이다. 일요일을 빼곤 매일같이 이곳에 출근해서 몸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기자가 헬스클럽을 찾았을 때는 이번에 또다시 SK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은 ‘저니맨’ 최익성이 이승엽과 함께 운동중이었다. 심하게 운동을 한 뒤라 이승엽은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최근 자신을 둘러싼 이런저런 의문점에 대해 솔직히 대답해 나갔다.
―요즘 아들 은혁이가 자주 언론에 소개된다. 아내 이송정씨와 함께 있는 가족 사진을 매스컴을 통해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
▲결혼 후 4년 만에 가진 아이라 그 감회가 남다르다. 아버지가 야구선수다보니 카메라 앞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것 같고, 어차피 알려진 얼굴인데 굳이 은혁이를 숨겨두거나 카메라를 피해 다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은혁이는 야구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준 아이다. 지지부진한 일본 생활에서 분위기를 바꿀 필요성이 절실했는데 그때 임신이 됐고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은혁이를 처음 본 순간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말자’라고 결심했다.
(이승엽은 은혁이가 태어난 이후 웃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웃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아이의 존재로 생활 방식이 많이 바뀌었고 자꾸 웃는 일이 생긴다고 한다.)
―지난번 박찬호 선수의 1백 승 사은회 및 피로연에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었다. 그날 분위기가 어땠나.
▲와, 정말 대단했다. 박찬호 선배의 인맥이 아주 다양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언제 그 분들을 다 만나는지 궁금했을 정도다. 난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 이승엽 선수 | ||
▲세부적인 협상에서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다. 연봉이나 경기 수당, 옵션 등 다양한 부분들이 포함될 것이다. 또 내가 지난 2년 동안 생활하면서 불편했던 부분에 대한 보완 수정 사항도 집어넣었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롯데와 재계약 조건에서 수비 보장 문제를 중요 조건으로 내세웠다가 결국 포기하는 걸로 정리했다.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지 않았나.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래도 한번 얘기해 보고 싶었다. 용병이 지명타자로 뛰게 되면 정말 힘들다. 그래서 구단에 내 사정을 호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크게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용병이 감독의 스타일을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어려울 줄 알면서도 지바 롯데를 향해 수비 보장을 들이댄 것은 이승엽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승엽은 지바 롯데 대신 다른 팀으로 옮겨 수비 보장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항간에선 돈 때문에 롯데와 재계약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런 이상한 얘길 들을 때마다 정말 안타깝다. 만약 내가 돈만 생각했다면 롯데에서 원하는 대로 2년이나 3년 계약을 했을 것이다. 내 꿈은 메이저리그다. 그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롯데의 요구를 저버리고 1년 계약을 고집했다. 제발 돈 얘기로 날 내몰지 않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얘기해 보자. 1년 후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고 있나.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른다. 설령 가족들이 말린다고 해도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할 것이다.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1년간 다시 한번 미친 듯이 야구만 하고 싶다.
(이승엽은 얼마 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 도중에 메이저리그 2개 구단으로부터 오퍼를 받았다고 말한 부분과 관련해선 잘못 전달됐다고 수정하면서 내년 1년은 무조건 일본에서 뛸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만약 메이저리그에서 이전 LA다저스 때처럼 좋지 않은 조건을 제시할 경우 그래도 갈 의향이 있나.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무작정 뛰어들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마이너리그부터 시작하는 조건이라면 큰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내가 뛸 자리가 있고 날 뛰게 해줄 팀이라면 주저없이 선택하겠지만 굳이 무리해서까지 미국 진출을 고집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의 자리 경쟁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 지난 11월16일 부인 이송정씨 아들 은혁군과 함께 입국한 이승엽. 그에게 아들의 탄생은 야구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고 한다. | ||
▲정말 속상하다. 아니 안타깝다. 난 단 한번도 선동열 감독님한테 섭섭하다고 말 한 적이 없다. 그냥 삼성에서 혹시나 불러 주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연락이 없었다고만 말 한 건데 ‘콜’이 없어 섭섭해 했다는 내용으로 와전이 됐다. 내가 삼성을 떠난 이후 삼성은 준우승과 우승을 차지했다. 내가 없어도 우승을 한 팀인데 굳이 날 데려갈 이유가 있겠나. 연락이 없는 게 당연하다.
―만약 삼성으로부터 ‘콜’이 왔다면 한국으로 복귀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얘긴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삼성에서 날 필요로 한다면 들어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날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잡지 않은 것이라고 본다. 정을 떼야 한다. 그 정 때문에 이런 생각도 하게 된 것 같다.
―일본에서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면 ‘외롭다’ ‘힘들다’ 이런 단어가 자주 등장했던 것 같다. 용병 생활의 고단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원정 경기 때가 제일 힘들었다. 우리 팀에 용병이 3명 있는데 2명은 모두 밸런타인 감독이 데려온 미국 용병이다. 그러다보니 어디를 가면 혼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외로움을 진하게 느끼게 된다. 앞으로 한 달 정도 더 있다가 일본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지금 이렇게 한국에서 아는 사람들 만나고 운동하고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내년 10개월 동안은 또 다시 한국을 잊고 살아야 한다.
(이 대답을 하면서 이승엽은 ‘진짜 얼마 안 남았네’라고 말하며 허공을 쳐다봤다. 일본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기보단 한국에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이 가득했다.)
―시즌 중에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 같다.
▲야구하고 처음으로 2군 생활을 해봤다. 물론 잠깐 당황하기도 했지만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속상해할 여유가 없었다. 그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쫓겨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면 너무 비참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눈물 겨운 사투를 벌였다. 2군에서 생활하며 7시 출근을 해봤다. 9시30분부터 연습이 시작되는 탓에 일찍 나와야 했다. 가끔은 오전 11시에 게임을 할 때도 있었다.
(이승엽은 일본 프로야구의 큰 차이점 중의 하나로 투수들의 스타일을 꼽았다. 한국 투수들은 정면 승부를 즐기는 반면에 일본 투수들은 피해가는 걸 즐긴다는 것. 이승엽은 나쁜 볼을 고르기보단 무조건 치려고 덤벼들었고 이런 시행착오가 슬럼프를 가져오게 했다고 한다. “방망이 휘두르기보다 마음 다스리기가 더 힘들었어요.”)
―세계야구월드컵대회(WBC) 대표로 뛰게 됐다. 최희섭, 김태균 등 주전 자리 경쟁이 만만치 않다.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가.
▲첫 게임 상대인 대만뿐 아니라 일본과의 경기도 이겨야 한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과 맞장을 뜨고 싶다. 개인적인 욕심도 있지만 우선 팀을 위해 선수들의 개성이 한데 뭉쳐 발휘돼야 한다. 지난 올림픽 예선에서 맛봤던 참담함을 이번 대회에서 제대로 보상받아야 한다. 아시아에서 넘버원 소리는 들어야 하지 않겠나.
이승엽은 마지막으로 병상에 있는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부디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어머니가 직접 일본 야구장에서 아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봤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도 덧붙였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 부모에 대한 감사함을 더욱 크게 갖게 됐다는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