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드보카트 감독 | ||
일간지의 한 기자는 “대표팀의 결과에 대해 비판기사를 쓰면 매국노가 되는 분위기”라면서 “아마 2002 월드컵의 학습효과 같다”고 말했다.
언론에 끌려가지 않겠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능수능란한 언론 대처방안은 주위의 핌 베어벡 수석코치와 홍명보 코치의 작품으로 보인다.
4년 전 같은 시기 골드컵 대회에 참가했던 히딩크 감독은 언론으로부터 거센 사임 압력을 받았다. 대회기간중임에도 체력훈련을 계속했고 골드컵 대회 결과 4위라는 실망스런 결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전지훈련에 함께했던 언론들의 비판은 연일 계속됐다. 오죽하면 이용수 당시 기술위원장이 히딩크 감독에게 언론의 분위기를 전하며 체력훈련의 실효성을 물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훈련 계획을 변경하지 않는 뚝심을 보였고 결국 월드컵 4강의 영광을 안겼다.
히딩크 감독이 얼마나 언론에 시달렸는지를 옆에서 지켜본 핌 베어벡과 홍명보 코치가 어떤 조언을 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학습 효과’ 때문인지는 몰라도 2006년 1월부터 2월까지 아드보카트 감독이 진행하고 있는 전지훈련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알 수 있듯 아드보카트 감독은 히딩크 감독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표팀 엔트리 조기 확정
아드보카트 감독은 전지훈련이 끝날 즈음인 2월15일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 해외파를 제외한 국내파 주전 멤버를 확정짓겠다고 밝혔다. 국내파와 J리거들로 구성된 전훈 참가 선수들에게는 엄청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발언이다. 사실상 해외파들에게는 주전자리가 미리 확정된 상황에서 국내파들이 전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알 수 있다. 한발 더 뛰는 노력과 집중력은 시키지 않아도 선수들이 솔선수범하고 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을 한 달 앞두고 23명의 월드컵 전사들을 선택했다. 황선홍 현 전남 코치는 “누가 뽑힐지 몰라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히딩크 감독은 63명의 선수들을 테스트해 결국 23명으로 압축했다. 히딩크 감독에 비판적이었던 축구전문가들은 “베스트 11을 빨리 확정해 전술과 조직력 훈련을 해야 한다”고 질타를 보냈으나 히딩크 감독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럼 아드보카트 감독은 왜 이렇게 빨리 엔트리를 확정하려는 것일까. 2002년과의 차이는 해외파이다. 2002년 유럽파는 설기현(당시 벨기에)와 안정환(당시 이탈리아)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차두리 안정환 이을용 등 6명이다. 해외파는 이미 기량을 검증받은 상태로 봐도 무방하다. 최근 차두리가 부진하지만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이고 특히 6월13일 토고와의 첫 경기는 차두리의 홈구장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기 때문에 차두리가 아웃될 확률은 별로 없다. 최전방 공격수에 3명, 미드필더 1명, 수비수 1명의 해외파들이 엔트리에 포함된다고 가정할 경우 골키퍼 3명을 제외한 14곳의 자리는 국내파와 J리거들이 채우게 된다. 특히 가장 취약한 포지션인 수비수들을 미리 정해 자신감을 심어주고 조직훈련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수비수로 기용할 수 있는 선수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해외파는 이영표 김진규가 있고 국내파는 최진철 김상식 김영철 장학영 조원희 김동진 등이다. 각 포지션별로 2배수를 선발한다는 원칙에 비춰보면 포백시스템을 고려, 8명의 수비자원이 필요하다.
흥미로운 점은 포백시스템을 사용하는 성남의 수비진이 3명이나 포함돼 있다. 김상식 김영철 장학영은 소속팀에서도 호흡을 맞출 수 있어 조직력을 우선시하는 수비 포지션을 고려할 때 최종 엔트리에 잔류할 확률이 무척 높다. 이런 마당에 월드컵을 한 달 앞두고 주전을 확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파워프로그램 달라진다
월드컵 4강 신화의 근원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파워프로그램’을 꼽는다. 2002년 1월 골드컵대회 중 사퇴압력까지 받으면서도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지옥 훈련이라 불렸던 체력훈련을 강제했다. 히딩크 감독은 당시 “한국 선수들이 투지와 기량은 어느 정도 올라섰지만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혹독하게 바벨을 들게 했다.
그러나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지훈련에는 파워프로그램이 보이지 않는다.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스트레칭, 러닝, 패싱연습, 미니게임 등이 전부다. 히딩크 감독 시절 입에서 단내 나는 파워프로그램을 옆에서 지켜봤던 기자들의 입에서 “선수들을 너무 풀어 주는 게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핌 베어벡 수석코치는 “1월 전지훈련에서 체력훈련은 따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프로구단 관계자는 “한해 농사를 짓기 위해 동계전지훈련 중 체력훈련은 기본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체력훈련을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황선홍 전남 코치의 의견은 다르다. 황 코치는 “파워프로그램이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알려져 있는데 갑자기 파워프로그램을 한다고 체력이 끌어올려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1월 미국 전지훈련에서는 근력 보강훈련에 열중했고 월드컵이 다가올수록 심폐 기능향상으로 파워프로그램의 초점을 이동시켰다는 게 황 코치의 설명이다.
파워프로그램이란 명칭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전지훈련 기간 중 선수들은 숙소의 휘트니스 센터를 찾아 자체적으로 근력강화 운동을 하고 있다. 자발적인 파워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는 게 대표팀 관계자의 전언이다.
김현철 대표팀 주치의는 “선수들이 알아서 체력관리를 잘 하고 있다. 체력이 떨어지면 대표팀에서 탈락한다는 위기감이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한 번 더 휘트니스 센터를 찾는다는 설명이다.
물론 월드컵을 한 달 앞두고 정식 파워프로그램도 기다리고 있다. 히딩크 감독과 함께했던 레이몬드 피지컬 트레이너가 공포의 저승사자로 대표팀에 합류한다. 황 코치의 설명처럼 레이몬드 트레이너는 근력강화보다는 단거리 반복 러닝으로 대표되는 셔틀런을 위주로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직업도 축구 취미도 축구
전지훈련을 다니다 보면 반복되는 일정에 지친다. 히딩크 감독은 전지훈련 기간중 골프와 테니스를 치면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코칭스태프들과 스쿼시를 하며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전지훈련지에 여자친구를 불러들여 구설수에 오를 만큼 즐길 때는 즐겼다. 이천수는 “자기만 여자 있냐는 불만이 선수들 사이에 있었다”고 2002년 전훈을 돌아봤다.
이처럼 전훈지의 긴장된 분위기를 적당히 풀어주기도 하는 등 히딩크 감독은 여유로운 낭만파의 기질을 지녔다.
반면 아드보카트 감독은 축구 외에는 다른 취미가 없어 보인다. 쉬는 시간에는 선수들의 플레이가 담긴 비디오를 보거나 코칭스태프와 차를 마신다. 히딩크와 같은 다양한 취미생활도 없다. 야구 선수 출신으로 야구 얘기를 가끔 하지만 전훈지에서는 오직 축구뿐이다. 골프채를 잡을 계획도 없다. 하지만 다정다감하다는 게 전체적인 평이다.
히딩크 감독은 언론의 생리를 잘 알고 ‘나는 아직 배고프다’, ‘킬러 본능’이란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항상 인터뷰를 앞두고는 분위기를 편안하게 하는 농담을 던진다. 너무 딱딱하지 않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그 속에는 나름의 칼날을 갈고 있다는 게 두 감독의 닮은 점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히딩크 감독의 뒤를 따라 월드컵 4강까지 내달렸으면 하는 게 전훈을 바라보는 팬들의 마음일 것이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