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1시 30분, 세상을 떠난 정원 양의 아버지인 염 씨와 인터뷰 장소를 정하기 위해 약속 시간 30분 정도를 남겨두고 전화를 걸었다. 기자는 피해자 유족의 거주지 인근에 위치한 작은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커피까지 미리 주문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염 씨는 “그곳은 우리 정원이가 사망한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가기가 두렵습니다. 집 바로 옆에 작은 커피숍이 한 군데 있으니 이곳으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처럼 초조하고 불안하게 느껴졌다. 염 씨가 지목해준 커피숍까지의 거리는 불과 50여m에 불과했다.
염 씨의 첫인상은 지금껏 기자생활을 해오며 접한 취재원들의 모습과는 또 다른 인상을 남겨줬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탓인지 눈은 퀭해보였고, 퀭하다고 단정하기엔 눈이 많이 충혈되고 부어 있었다. 염 씨는 “정원이가 죽은 이후 아내와 첫째 딸 희원(가명·3세)이를 처가에 보내고 홀로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라며 ”정원이가 가지고 놀던 유아용품들을 볼 때마다 애써 울음을 참아보려 하지만 막을 길이 없네요. 슬픔에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해 많이 초췌해보일 겁니다”고 말했다.
염 씨는 정원 양이 사망했던 지난 10일을 애써 떠올렸다. 같은 회사에 재직 중인 염 씨 부부는 출근 시간이 매일 아침 8시라서, 아침 7시경 두 딸을 어린이집에 맡겼다고 한다. 염 씨는 출근하기에 앞서 아직 뒤집기를 못하는 정원 양에게 항상 두 손가락을 내민다고 한다. 아버지의 새끼손가락을 양손으로 잡고 있는 힘을 다해 스스로 일어서는 정원 양의 모습을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출근 직전 염 씨는 정원 양에게 양 손의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 정원 양은 있는 힘을 다해 아버지의 손가락을 잡고 일어서 아버지에게 밝은 미소를 보여줬단다. 염 씨는 “스스로 일어선 후 환하게 웃던 정원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는 애를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 겁니다“라며 ”언니보다 얌전하고 순했던 정원이가 지금 제 곁에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 웃음이 무척이나 그립네요”라고 말했다.
사망하기 4일 전에 촬영한 정원 양의 100일 기념 사진.
염 씨는 “아내는 정원이도 같이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했지만, 혹시나 언니에게 감기가 옮을까봐 어린이집에 그대로 맡겨두라고 했었어요. 마침 어린이집 유 아무개 원장도 정원이가 잘 놀고 있다면서 사진까지 보내줘서 안심을 했었던 거죠“라며 ”근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원장에게서 딸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게 된 겁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날 오후 2시 58분. 염 씨는 아내 김 씨로부터 딸 정원 양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들었다. 유 원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김 씨가 통화를 마친 직후 염 씨에게 딸의 사망을 알려온 것이다. 오후 4시 10분, 장례식장에 도착한 염 씨 부부는 차가운 시신으로 정원 양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장례식장에 유 원장과 보육교사는 없었다.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 원장은 저녁에야 10여 명의 어린이집협회원들을 대동한 채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족실에서 피해자 부모를 마주한 유 원장은 “오전 11시 30분에 이유식을 먹였고 오후 2시 30분에 정원이를 재웠는데 20분 뒤 확인해 보니 정원이가 숨을 쉬지 않더라”고 당시 정황을 설명해줬다고 한다.
장례식장 단상에 올릴 영정사진은 정원 양이 사망하기 4일 전에 촬영한 100일 기념사진이었다. 염 씨는 “정원이의 100일이 2월 9일인데 찍지 않으려다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한 달 후에야 찍게 됐어요“라며 ”그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아직도 밝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정원이를 다시는 못 본다는 현실에 가슴이 아픕니다”라고 심경을 드러냈다.
3월 11일, 염 씨 부부는 정원 양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과수에 부검을 요청했다. 그리고 익산경찰서에서 염 씨 부부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됐다. 경찰로부터 건네받은 정원 양의 옷에서 구토의 흔적이 발견됐고, 보육교사가 정원 양에게 이유식을 먹인 시간을 오후 2시라고 진술했다는 것. 유 원장이 염 씨 부부에게 설명한 분유 먹은 시간(오전 11시 30분)과는 무려 2시간 30분의 차이가 있었다. 또 유 원장이 정원 양의 사망을 인지한 시간은 오후 2시 40분경인데 119에 신고 접수된 시간은 13분 뒤인 2시 53분이라는 점, 그리고 당시 출동한 구급대원으로부터 “아이의 옷이 모두 벗겨져 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던 점 등도 놀라웠다. 게다가 정원 양의 사망과 관련해 결정적인 증거가 될 CCTV 영상은 지난 3월 4일 이후 작동되지 않은 사실도 알게 됐다.
염 씨는 “119에 신고할 때까지 13분이라는 시간이 비는데, 원장과 보육교사는 그 시간 동안 뭘 했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정황상 뒤집기를 못하는 정원이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바로 재우는 바람에 구토를 하다 기도가 막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라며 ”그게 아니라면 정원이의 옷을 벗길 이유가 없었겠죠. 그리고 CCTV 영상 기록을 일부러 삭제했던 것은 아닌지도 의심이 되네요”라고 밝혔다.
정원 양이 사망 당일 착용했던 의상. 옷에 구토 흔적이 남아있다.
해당 보육교사에 대해 익산시청에 문의해본 결과, 채용된 지 14일이 되지 않아 익산시청에 등록돼 있지 않았다. 또 이 어린이집의 CCTV는 지난해 12월 18일 익산시청의 안전점검에서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지난 8일 익산시청에서 이 어린이집에 CCTV 작동 의무와 관련된 공문도 발송했었다. 익산시청 관계자는 “일주일 동안 CCTV를 작동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과태료 50만 원이 부과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염 씨 부부는 정원 양의 시신을 화장한 후 유골을 군산 새만금 바다에 뿌렸다고 한다. 염 씨는 “첫째 희원이가 ‘정원이 어디 갔어? 정원이 보러 가자’라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파요. 원장에게서 그날의 진실을 듣고 싶은 것뿐인데 보육교사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정황과는 엇갈린 진술만을 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네요”라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기자는 유 원장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대신 유 원장 아들과 연락이 됐다. 유 원장의 아들은 “유족 측에서 어머니와 연락하는 게 힘들다면서 연락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일들에 대해서는 경찰에 모두 진술했고, 추가적인 진술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숨김없이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유족 측에 다시 한 번 정원 양의 사망에 대해 깊은 사죄의 뜻을 전합니다”고 전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