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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1진출을 선언한 전 세계복싱챔피언 최용수는 “K-1에서도 챔피언이 되겠다”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엎어지고 자빠지는 쓰라린 인생살이는 두리뭉술한 성격 대신에 들짐승같이 거칠고 투박한 ‘싸움꾼’으로 변모케 했다. 그래서 그가 복싱 대신 격투기로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정말 그를 좋아하는 복싱 선배들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K-1 진출을 선언한 전 세계복싱챔피언 최용수(<일요신문> 717호 단독보도)를 기자회견 이후 장충동의 한 족발집에서 만났다.
지난 7일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터뷰 장소인 족발집까지 걸어가는데 최용수의 얼굴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마치 못할 짓을 한 사람처럼 힘차게 발을 떼기보다는 여전히 머뭇거리는 기색이 더 많았다. 이미 공식 기자회견까지 마친 탓에 이젠 ‘물릴 수도’ 없지만 짧은 시간 동안 깊게 고민했던 흔적들이 최용수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다.
“내가 잘 한 걸까?”
기자를 향한 물음이 아니었다. 독백이었다. 최용수의 옆에는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후배 지인진(전WBC페더급 챔피언)이 기자회견에서부터 줄곧 자리를 함께 하며 최용수가 안고 있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변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최용수는 자신을 K-1에 진출시킨 TMG 양명규 대표한테 우스갯소리로 “사장님, (경기에서)질 것 같으면 그냥 쓰러져 버릴 거예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러면서 “데뷔전 때는 손 안 쓸 거예요. 배우는 입장이니까 발로만 상대할 거야. 그래야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죠”라고 말을 잇는다.
복싱 통산 전적이 34전29승1무4패(19KO)인 최용수는 95년 12월 WBA슈퍼페더급 챔피언에 오른 후 98년까지 7차례나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3년여간 한국 복싱의 간판 스타로 활동했었다. 2003년 재기를 노렸지만 판정패당한 후 운동과는 인연을 끊었던 탓에 최용수의 몸 상태는 온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선수 시절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고 워낙 몸 관리를 잘 해서 체중을 늘리고 K-1 기술을 습득하는데 주력한다면 격투기 선수로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용수는 복싱에 데뷔할 때와 K-1 데뷔를 선언할 때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복싱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두려운 걸 몰랐어요. 맞는 데 대한 공포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두려워요. 복싱하면서 많이 맞아봤거든요. 그 느낌을 알아요 이젠. 그래서 아내가 많이 반대했어요. 더 이상 맞고 사는 직업은 택하지 말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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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회견장에서 ‘K-1 KHAN 걸’들에 둘러싸여 포즈를 취하는 최용수. | ||
그런데 지금, 이젠 상황 파악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초등학생 유찬이는 아빠가 격투기 선수가 되는 걸 이해 못한다. 격투기 하면 최홍만을 떠올리는 유찬이한테 아빠의 존재는 거구의 최홍만에 비해 너무 작은 존재인 것이다.
“유찬이한테 잘 설명해줘야죠. 최홍만과 아빠의 차이점을. 아빠가 훨씬 멋진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얘기해줄 거예요. 그런데 말을 잘 해야하는데 멋진 아빠로 보여야할 텐데… 유찬이가 잘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최용수는 K-1 진출을 결심하면서 언론을 통해 자신의 기사가 나가기 전에 복싱 선배이자 친형처럼 따르는 유명우(전 WBA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이해를 얻고자 했다. 그런데 세상에 먼저 알려지는 바람에 최용수는 유명우로부터 전화를 받아야 했다.
“어제 밤 명우 형이 전화를 하셨더라구요. 신문 봤다면서. 전 막 야단칠 줄 알았거든요. 복싱을 배신한 거니까. 그런데 이왕 결정한 거니까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주시는 거예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대요. 한없이 죄송했어요. 홍수환 선배도 처음엔 반대를 많이 하셨는데 나중엔 좋은 얘기로 용기를 주셨어요. 잘 할 수밖에 없어요. 잘 해야 되구요. 이미 테이프는 끊었으니까.”
복싱이 스포츠 전 종목 중 최고의 스포츠라고 자부하는 선배들을 믿고 따른 최용수는 어쩔 수 없는 생활고로 K-1 진출을 선택했다. 솔직히 돈 때문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K-1에 대한 매력이 없었다면 인생을 베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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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투선수’시절의 모습. | ||
최용수는 양명규 대표에게 데뷔전 상대를 ‘쎈 놈’과 붙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데뷔전이라고 해서 시시한 상대와 맞붙어 어영부영 이길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음을 거듭 강조한다. 그러면서 최홍만과 붙어도 자신있다는 의욕도 내비친다. 최홍만의 체격이 큰 데서 그와 상대하는 선수도 위압감을 느끼겠지만 빠르고 체격이 작은 선수를 상대하는 최홍만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파워냐 스피드냐의 싸움이라는 점에선 해볼 만하다는 것. 최용수의 진면목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족발에다 소주를 마시며 꽤 긴 시간의 인터뷰를 이끌어 갔다. 솔직히 기자가 인터뷰하기보단 주위에서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최용수와 지인진이 번갈아 답변해 나갔다. 처음부터 ‘취중토크’를 할 의도는 없었는데 운동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술자리’라는 타이틀 때문에 꽤 많은 술병들이 쌓였다. 속내를 꺼내 보이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린 최용수가 이런 에피소드를 전한다.
“복싱 그만두고 별 짓을 다 해봤어요. 체육관 운영으론 먹고 살기가 힘들어 건설자재 납품부터 일용직 노동자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그러다 버스 운전 기사가 괜찮을 것 같더라구요. 2번 시험 끝에 대형면허를 취득했고 실제로 수원의 한 운수 회사를 찾아갔었죠. 이력서를 써내라고 하는데 쓸 게 없는 거예요. 전 정말로 ‘전 세계챔피언’ 이런 건 안 쓰려고 했거든요. 너무 쓸 내용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걸 집어넣었는데 그래도 떨어지더라구요.”
당시 최용수는 그래도 세계챔피언까지 한 경력이라면 플러스 요인이 클 거라고 생각했단다. 면접까지 본 탓에 탈락은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불합격 통보를 받고 한동안 시름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고.
“한 스포츠 신문에 제가 버스 기사 되려고 운전면허 취득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신문을 본 수원의 운수 회사 경리부 과장이 전화를 걸어선 뭐라고 한 줄 아세요? 대형버스보다는 마을버스부터 몰아볼 생각 없느냐구요. 하하하.”
인터뷰하기 전까지만 해도 구름이 잔뜩 끼었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분명 술 탓은 아닐 게다. 지인진의 말 대로 K-1 진출을 결심하면서 이미 훈련 계획까지 세워놨을 정도의 치밀함이 최용수의 자신감을 업그레이드 시켜준 듯했다.
인터뷰하면서 상당히 마신 주량으로 인해 최용수의 마지막 멘트가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제 인생, 복싱 인생을 다 걸고 벌인 일이에요. K-1에서도 챔피언이 돼야죠. 그걸 보여줄 겁니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