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3월 23일 현대·기아차 양재동 본사에서는 WBC 4강 주역인 기아 타이거즈 선수들에게 특별 격려금 전달식이 있었다. 모든 행사를 마친 뒤 주인공인 선수들과 회사 직원들의 대화의 시간이 마련됐다. 그중 한 직원이 이종범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제가 야구 광팬인데 8회에 안타 치고 세리머니하는 선수는 이번에 처음 봤거든요. 그거 안 하고 그냥 달렸으면 3루에서 죽지 않았을 텐데 그때 왜 그러셨어요?”
순간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고 이종범도 폭소를 터트리다 다소 ‘뻘쭘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8회 제가 친 파울 타구에 복숭아뼈를 맞고 전라도 말로 정말 ‘허벌나게’ 아팠거든요. 그런데 1점이 소중한 박빙의 승부에서 2루타를 때렸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너무 손을 오래 들고 있었어요. 손을 오래 들고 있다가 뒤늦게 달리는 바람에 죽었죠. 일본에 워낙 복받친 게 많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하하.”
직원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멘트였지만 이종범은 자칫 잘못했으면 ‘영웅’에서 ‘역적’이 될 수도 있는 그때 그 순간이 여전히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일본전을 연달아 치르면서 자꾸 제 개인적인 부분이 부각되는 걸 느꼈어요. 기자들도 그런 쪽으로 질문을 많이 했구요. 물론 한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일본에서 고생한 아픈 추억만큼은 영원히 남을 거예요. 그래도 그 아픔이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요. 아픔으로만 기억된다면 너무 슬펐을 텐데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종범은 WBC 대회를 마치고 이승엽과 헤어지기 전에 ‘잘 헤쳐 나가라’는 진심어린 부탁을 건넸다고 한다. 자신은 일본에서 쓸쓸히 돌아와야 했지만 이승엽만은 부디 성공해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달라는 간절함을 담은 것이다.
1998년 일본 주니치에 진출할 때만 해도 이종범은 탄탄대로였다. ‘바람의 아들’로 화려하게 일본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야구 천재’의 진가를 유감 없이 발휘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잇따른 부상과 부진으로 2군으로 떨어져 숱한 마음 고생 끝에 결국 2001년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 뒤 이종범한테는 ‘일본에서 실패한 야구천재’라는 그림자가 계속 따라 다녔다.
이번 WBC 본선 대회 동안 이종범은 아내 정정민 씨로부터 특별한 ‘민원’을 받았다. 다른 팀은 몰라도 일본전에선 꼭 최선을 다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일본에서 고생할 때 정 씨 또한 만만치 않은 경험들을 했던 터라 미국, 멕시코전보다도 일본전에 가장 많은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의 ‘야구 천재’로 불리는 이치로는 이번에 또 다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런저런 망언들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애국심에 불을 질렀다. 선수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에 대해 이종범은 약간은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털어 놓았다.
“별로 신경은 쓰지 않았어요. 그러나 메이저리그 선수라면 인터뷰 내용도 메이저리그 선수 답게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망언을 퍼붓는 선수라면 메이저리그 선수 자격이 없는 거죠. 어떻게 그런 감정 상태에서 시합을 뛰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정말 이해 안 되는 선수예요.”
▲ 지난 3월 15일 WBC 2라운드 일본전 8회 2루타를 치고 1루로 질주하는 이종범. 그는 이날의 세리머니에 대해 “일본에 워낙 복받친 게 많아 그랬다”고 밝혔다. 로이터/뉴시스 | ||
“그 친구랑 저랑은 네 살 차이가 나요. 저랑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가 안 돼요. 이치로가 저보단 천재죠. 실력도 뛰어나고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으니까요. 서로 야구하는 환경이 다르고 일본이 야구 수준은 우리보다 앞서 있는 게 사실이니까. 한때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서 그 부러움이 없어졌어요. 전에도 얘기했지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됐으니까요.”
이종범은 본선 대회를 위해 미국으로 자리 이동을 하면서 걱정이 앞섰다고 고백했다. 일본을 다시 상대한다는 두려움이 아닌 메이저리그 투수들 앞에서 제대로 방망이나 휘두를 수 있을지, 혹시나 창피나 당하는 건 아닌 지, 주장으로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까지 보태져 밤잠을 설치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던 것이다.
“그쪽 투수들 볼이 굉장히 세다고 들어왔거든요. 공이나 맞힐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되더라구요. 그런데 경기에서 직접 붙어 보니까 한국 투수들 볼과 거의 비슷하더라구요. 역회전하는 볼은 많지만 컨트롤이 별로라서 칠 수 있었어요.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점점 자신감이 붙더라구요.”
멕시코에 이어 미국전에서까지 승리를 거머쥐자 몇몇 야구 전문가들은 시즌 중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한 탓이라고 폄하한 적이 있었다. 이종범은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우리도 시범 경기 중이잖아요. 우리 선수들도 지금은 몸이 채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구요. 몸이 안 만들어진 건 거기나 우리나 똑 같은 입장이예요. 전 분명히 실력 대 실력으로 붙었다고 봐요. 미국이 아시아 야구를 너무 홀대한 데 따른 결과예요. 메이저리그 최고의 멤버로 구성됐다는 미국팀이 이 정도밖에 성적을 못 낸 건 정말 반성해야 해요. WBC가 의외로 한국과 일본의 기를 살려준 계기가 됐어요.”
이종범은 대표팀 주장을 맡을 당시만 해도 김인식 감독 못지 않게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워낙 개성 강한 선수들이 모이다보니 그들의 ‘끼’를 어떻게 하나로 모을지 근심이 끊이질 않았던 것.
“정답은 없었어요. 선수들 성격을 다 맞추려면 한도 끝도 없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결론 내렸고 대표팀 선수들을 기아 타이거즈 선수들 다루 듯이 대했어요. 찬호, 희섭이, 승엽이에게 심한 욕도 했고 장난도 쳤는데 동요하지 않고 잘 따라주더라구요. 그런 선수들이 솔선수범 해줬기 때문에 제가 많이 편했어요. 정말 고마운 후배들입니다.”
이종범은 WBC 대회를 갔다 오니까 인기가 치솟았다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이전 ‘바람의 아들’로 부활하기 보단 오랫동안 야구를 하고 싶은 소망이 더 컸다.
“야구를 그만둬야 할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는 게 참 많이 아쉬워요. (전)병두처럼 나이가 어리다면 못 다 이룬 거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승엽이나 희섭이한테 부러운 건 다른 거 없어요. 딱 한 가지, 바로 제가 노력해도 안 되는 젊은 나이예요. 그래도 웃어요.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팬들을 위해 열심히 뛰고 치고 훔치다 보면 ‘종착역’에 도달해 있겠죠?”
하루 빨리 WBC를 잊고 싶은 이종범이었다. 진짜 중요한 시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억대의 격려금 까지 받고 보니 더더욱 팀 성적에 대한 부담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김인식 감독님이 더 이상 대표팀 감독직은 사양하겠다고 말씀하셨더라구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젠 팀과 가족들을 위해 살고 싶어요. 아시안게임요? 12월인데 그땐 가족들과 함께 해야죠. 태극마크는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