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체력 단련 모습. | ||
그러나 마냥 탄탄대로만 보장된 게 아니다. 요미우리 4번 타자가 갖는 함정도 도처에 숨어 있다. 그 내용을 알아본다.
이승엽이 지바 롯데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차지하는 요미우리의 무게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본 프로야구의 태동과 함께 깃발을 올린 요미우리는 9년 연속 일본시리즈 정상의 신화를 낳았던 1970년대에 일찌감치 일본 국민의 절반이 거인 팬이라고 말할 정도로 확실히 국민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왕정치) 등 기라성 같은 4번 타자들은 늘 국민적 열기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 같은 요미우리 4번 타자의 열기는 아직도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요미우리 4번’은 ‘미스터 자이언츠’ 또는 ‘일본 프로야구의 간판’이라는 정서가 살아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이승엽이 요미우리 4번 타자의 중압감을 잘 극복하고 시즌 스타트를 멋지게 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먼저 지바 롯데에서 2년간의 경험이 더 없는 보약이었다. 이승엽은 지바 롯데에서 ‘잃은 게 너무 많았다’고 ‘잃어버린 것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왼손 투수와 왼손 타자의 대결을 피하는 보비 밸런타인 감독의 플래툰시스템에 막혀 홈런을 친 다음 경기에서도 벤치에 앉아 있어야 했고 1루수와 외야수를 겸해야 하는 치명적인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예 수비 자리를 빼앗긴 채 지명타자로 나선 적도 많았다.
사실 이승엽에게 외야수로의 보직 변경은 본인 스스로에게도 큰 충격을 안겼다. 기본적으로 외야 수비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늘 가슴 한편에 불안감을 떠안은 채 타석에 서야만 했던 이승엽이다. ‘1루수로 풀타임 출전하지 못했다’는 게 이승엽이 말하는 잃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 시절처럼 마음대로 야구를 할 수 없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요미우리에서는 이런 고민이 사라졌다. 지난 2월 스프링캠프 때까지만 해도 하라 다츠노리 감독은 이승엽을 내야는 물론 외야수로도 기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며 새로 영입한 1루수 조 딜론(미국)과의 무한 경쟁을 부추겼다. 그러나 조 딜론은 현재 허리 통증의 재발로 2군에서 시즌을 맞았다.
이승엽은 “매 경기 1루 수비를 하며 타석에 서니까 어떠냐”라는 질문에 “야구의 즐거움을 다시 찾은 느낌이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이승엽은 2년간의 쓴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프로야구에서의 생존법을 절실히 깨달았다. 물론 야구에 대한 열정도 한국 시절만큼 다시 회복됐다.
또 한 가지의 호조건은 자신의 평생 꿈인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자신감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을 통해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기량을 떨쳐 보인 이승엽은 사실 지바 롯데에서 뛰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상태였다.
수비를 하지 못하는 ‘반쪽 선수’가 된다면 외국인으로서 메이저리그를 꿈꿀 수 없다고 판단한 이승엽은 지난해 말 지바 롯데와의 재계약 협상에서 1루수가 안되면 좌익수라도 보장해달라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이승엽이 지바 롯데보다 불리한 요미우리의 조건을 수용한 것도 1루 수비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또한 요미우리는 146게임 중 도쿄돔에서 치르는 홈경기는 야간에만 치르게 돼 있어 이승엽이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 유리하다. 요미우리 계열인 니혼 TV가 전 경기를 생중계하는데 팬들을 위해 야간 경기로만 일정을 잡아놔 지바 롯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이점이 되고 있다.
▲ WBC대회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뽑아낸 이승엽. 이때의 활약으로 그는 큰 자신감을 얻게 됐다. 로이터/뉴시스 | ||
요미우리는 기본적으로 재벌 팀이다. 그래서 구단은 물론 사령탑 역시 선수에 대해, 특히 외인 부대에 대해 조바심을 내기 마련이다. 금방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면 매몰차게 등을 돌리는 팀이다.
하라 감독은 다른 일본인 감독들에 비해 비교적 합리적인 성품을 갖고 있고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상당히 관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하라 감독이 이승엽이 슬럼프에 빠졌을 경우 끝까지 참고 기다려줄 것으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요미우리의 4번 타자는 어마어마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조금만 부진해도 곧 집중포화를 받는 좌불안석의 자리다.
지금까지 요미우리에서 이승엽을 포함한 4번 타자는 모두 70명이 있었다. 그러나 ‘4번다운 4번’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었다. 요미우리 중압감이 늘 걸림돌이 됐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1980년대 일본프로야구를 호령했던 오치아이 히로미츠는 요미우리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음에도 불구하고 4번 타자의 중압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현역 말년에 기대만큼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요미우리에서 4번 타자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먼저 팬들이 들고 일어선다. 팬들의 비난 목소리에 이어 언론의 집중 포화가 쏟아지고 아무리 뚝심 좋은 사령탑이라도 팬과 언론의 외압을 버티기는 힘들다. 한 번 슬럼프에 빠지면 자신에 대한 고민에 빠져드는 이승엽에게 요미우리의 이런 분위기는 커다란 짐이 될 수도 있다.
하라 감독이 기본적으로 지바 롯데의 보비 밸런타인 감독보다 궁합이 잘 맞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플래툰시스템의 위험은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다.
이승엽은 시즌 초반 멋진 활약으로 급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왼손 투수에 대한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요미우리는 개막 초반 5명 이상의 왼손 타자를 스타팅 라인업에 대거 배치했는데 어디까지나 ‘워밍업 라인’에 불과하다. 물론 밸런타인 감독 정도는 아니지만 하라 감독 역시 왼손 투수와 왼손 타자의 대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언제 이승엽에게 불똥이 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또 요미우리는 전통적으로 이적 선수들에게 무척 배타적이다. 선후배를 떠나 철저하게 실력 지상주의의 분위기가 강한 요미우리라 이방인이 중심을 파고들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주전 3루수이자 주장인 고쿠보는 다이에(현 소프트뱅크)에서 이적한 이후 많은 따돌림을 당하다가 2004년 41홈런, 2005년 34홈런을 친 뒤 동료들로부터 대접을 받기 시작해 결국 주장이 됐다. 요미우리에서 타팀 출신이 주장이 되기는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다. 이승엽 역시 요미우리의 배타적인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력으로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
일본의 야구 전문가들은 “이승엽이 지바 롯데에서 2년간 많은 경험을 한 게 다행”이라며 “요미우리에서 4번의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실력뿐”이라고 말한다.
양정석 일본 데일리스포츠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