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선홍, 유상철, 김태영(왼쪽부터) | ||
“이젠 못하잖아요. 하고 싶어도 못하잖아요.”(유상철 KBS 해설위원)
“내가 부상만 안 당했더라면 지금쯤 대표팀에서 뛰고 있을 거예요.”(김태영 MBC 해설위원)
2002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인 황선홍, 유상철, 김태영이 이번 독일월드컵에서 유니폼 대신 마이크를 잡고 팬들 앞에 인사를 한다. 모두 현역에서 은퇴 후 프로팀과 대학팀 코치로 활동하거나 앞으로 지도자 생활을 준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일월드컵 ‘본 게임’을 앞두고 한국에서 두 차례의 ‘예비고사’를 치른 2006독일월드컵 대표팀에 대해 2002월드컵 3인방들이 직격탄을 날렸다. 자신의 주전공이었던 포지션별로 현 대표팀에 나타난 문제점과 그 해법들을 <일요신문>에 솔직하게 털어놨다.
[황선홍] 좀 더 다양한 공격패턴과 약속된 플레이 절실
[공격수 황선홍의 쓴소리]
일단 지금의 대표팀 공격수들은 너무 측면만 고집하는 것 같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에서 (안)정환이가 전반 14분 만에 처음으로 볼을 만져봤다는 것 자체가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좀 더 다양한 공격 패턴이 절실하다. 특히 측면이 아닌 가운데서 이뤄질 수 있는 공격 스타일은 선수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김)남일이가 정확하고 깊은 패스로 정환이에게 볼을 띄울 경우 다른 선수들이 비어있는 정환이 자리로 들어가서 커버를 해줘야 한다. 상대의 거친 수비에 공격 루트가 막혔다면 상대방의 촘촘한 조직력을 무너트릴 만한 공격수들의 두뇌 플레이가 필요하다. 공격수들이 공격만하는 것이 아니다. 중앙에서 수비수들을 끌고 다니면서 공간을 만들고 수비수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것도 주 임무다.
토고전 해법 우선 변화있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스리톱에 서 있는 선수들이 상대의 공격 진영을 향해 약속된 플레이로 움직이지 않으면 경기가 시종일관 답답해질 수 있다. 정환이가 튀어 나올 때 상대적으로 비어있는 뒷 공간을 침투하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로는 스피드와 사이드 쪽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는 점이다. 보스니아전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설)기현이가 공을 받으러 가면 정환이가 서서 기다리는 장면이 포착된 부분들이다. 이런 자세로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길 기대한다는 게 무리다.
후배들이여! 먼저 보스니아전에서 정환이의 플레이가 상당히 아쉬웠다. 두 차례의 완벽에 가까운 슈팅 찬스가 있었는데 그걸 살리지 못했다. 그런 좋은 찬스는 월드컵에서 맛보기 힘든 기회다. 부디 냉정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찬스가 올 때까지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리다 보면 반드시 한두 번의 좋은 찬스가 오기 마련이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공격수들이 모두 두 골 씩만 넣어준다면 너무 좋겠다^^.
[유상철] 탄력적 허리 아쉬워 압박 위해 조직력 키워야
[미드필더 유상철의 걱정?!]
세네갈전에서 중원 장악에 실패한 미드필더들이 보스니아전에선 어느 정도 자신감과 조직력을 찾아가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다. 그러나 몇 가지 눈에 띄는 단점이 있어 짚고 넘어가야겠다.
먼저 미드필더들이 경기 운영을 똑같은 템포로 가져간 부분에 대해선 강하게 지적을 하고 싶다. 템포를 늦추고 빨리하는 걸 조절하면서 허리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런 탄력적인 대응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황선홍, 유상철, 김태영이 후배들에게 조언을 했다. 사진은 위부터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경기 모습. | ||
토고전 해법 세네갈전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좋은 시합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상대의 거친 압박에 의해 힘들게 경기가 운영된 부분들은 간과해선 안 된다. 현대 축구는 미드필드에서의 압박이 중요한 ‘숙제’이자 ‘해결책’이다. 그걸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개인 기술이 특출나서 잘 뚫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축구는 혼자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같이 하는 쉽고도 어려운 종목 아닌가.
2002년 때는 조직력이 워낙 탄탄해서 프랑스, 잉글랜드처럼 강팀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 대표팀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점이 조직력이다. 물론 시간이 짧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도 거의 비슷한 조건에서 팀을 구성했고 훈련을 했기 때문에 우리만 특별히 손해 보는 건 아닐 것이다.
후배들이여! 미드필드를 책임질 우리 후배들 중에서 남일이나 을용이, 지성이 등은 모두 2002년을 경험한 선수들이라 경기 운영의 템포 조절만큼은 잘 끌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누가 출전하게 되더라도 미드필더에서의 기 싸움만큼은 결코 져서도 안 되고 물러서서도 안 된다. 내가 4년 전에 잘 했던 건 바로 이거 한 가지였다.
[김태영] 미드필더와 포백 유기적 커버 플레이 계속돼야
[수비 김태영의 평가]
전체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와 포백 라인의 유기적인 커버 플레이가 돋보이는 두 차례의 평가전이었다. 예를 들어 이영표나 조원희가 자리를 비우고 앞으로 나오면 수비형 미드필더 쪽에서 을용이나 남일이가 사이드 커버를 해준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중앙 수비수가 전진을 하지 못할 때 수비형 미드필더 쪽에서 약간 더 뒤로 처지면서 중앙 수비수 앞에 위치하면 밸런스를 잘 맞춰갈 수 있다. 보스니아전에서 어려운 상황을 만들지 않은 부분도 바로 이렇게 수비와 중원에서의 협력 플레이 덕분이었다.
토고전 해법 현재 선수들이 체력 훈련을 해온 상태라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스코틀랜드에서 두 차례의 평가전을 치르며 컨디션 조절에 집중해야 토고전에서 좋은 결과를 나오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아데바요르처럼 스피드와 개인기가 탁월한 선수한테는 결코 1 대 1 상황으론 커버가 안 된다. 항상 2 대 1 상황이 될 수 있게끔 체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집중력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토고전만 잡으면 분위기가 상승돼 그 어렵다는 프랑스전에서도 예상 외의 결과를 얻을지 모른다. 매번 기적과 이변이 일어나는 게 월드컵 아닌가.
후배들이여! (최)진철아 그리고 (김)영철아! 노장인 데다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이끄는 최고참 선수로 발돋움한 부분이 자랑스럽다. 원정 경기로 치르는 이번 월드컵에서 후배들이 한마음으로 뭉칠 수 있도록 솔선수범해서 팀을 부드럽게 잘 이끌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의 (김)진규와 (김)상식이는 나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해서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진규, 상식아! 상대가 강하게 나올 경우엔 우린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걸 절대 잊지 말자. 내가 4년 전에 밀어붙였던 건 이런 오기였다. 상대가 세면 셀수록 내 근성과 오기가 체력으로 뒷받침됐다. 물론 코는 주저앉았지만 말이다^^.
해설을 해보니까 이상하게도 수비수들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제스처가 커지면서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진철아! 역시 ‘출신 성분’은 속일 수가 없나 보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