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에 속터지고 ‘룰’에 울고
가장 큰 문제는 인터넷이다. IT강국 한국의 스피디한 인터넷에 젖어 있던 기자들은 이곳의 질 낮고 속도 느린 인터넷 접속에 모두가 기절 직전이다. 마감 때면 노트북을 들고 복도와 로비를 헤매면서 접속이 되는 지역을 찾아 헤매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기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항의가 폭주하자 호텔 측에서 회의실에 유선 랜을 끌어다 줬지만 고작 11개 밖에 안돼 기자들이 몰리면 유선 랜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인터넷보다 더 심한 건 취재 경쟁이다. 철저히 제한된 취재 환경 속에서 뭔가 특이한 기사를 생산해내야 하다 보니 기자들이 합의하에 정한 룰을 위반하면서까지 취재를 강행하려다 들통나는 일들도 비일비재하다.
6월 8일 대표팀이 오전 훈련을 15분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비공개로 훈련한다고 알려왔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바이아레나 경기장에 15분만 머물고 모두 철수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몇몇 기자들이 숨어서 대표팀 훈련을 지켜보다가 FIFA 관계자들에게 들켰고 이 문제가 대표팀과 기자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급기야 문제의 기자들은 공개 사과하기에 이르렀고 더 이상의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서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
태극전사들이 독일 베이스 캠프에 첫 발을 내딛은 6월 6일, 슐로스 벤스베르크 호텔에 취재를 갔던 한 기자가 주차장에서 나가는 길을 찾다가 그만 호텔 로비로 잘못 들어서고 말았다. 그 순간 핌 베어백 코치와 조우한 기자는 자신이 실수해서 로비에 들어오게 됐다며 그 자리에서 사과를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선수단 숙소에 접근하지 않기로 했던 게 기자들 사이의 룰이었던 터라 그 기자는 즉시 기자단에 자신의 실수를 알렸고 선수단 측에 공식 사과를 전한 것은 물론 경기장에 취재하러 모인 기자들 앞에서 또 다시 정중히 사과를 했다.
스코틀랜드에서 노르웨이 오슬로로 평가전을 치르기 위해 떠난 대표팀 선수들. 사진기자단은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공항 취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잘 모르고 있던 취재 기자가 소형 카메라로 선수들이 짐을 찾는 장면을 촬영했고 이 사진을 자사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가 사진기자단의 항의를 받게 됐다. 결국 그 기자는 기자단의 협의 결과 페널티를 받았고 전지훈련 기간 동안 더 이상의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됐다.
물도 돈 주고 사 먹어야만 되는 독일에서 기자들의 ‘살벌한’ 취재 경쟁을 느낄 때마다 월드컵이 현실로 다가온다. 기자들이 없었다면 메트만에선 월드컵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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