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에라, 앙리, 지단(왼쪽부터) | ||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빈틈은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뛰어난 팀이라 해도 약한 부분부터 빈틈을 노려 집중 공략 당하면 실력 발휘가 쉽지 않다. 빈틈을 보려면 철저한 분석이 우선이다. 일본 프로야구의 각 구단 분석원들이 선수 개개인의 버릇까지 철저하게 데이터화하는 것처럼 프랑스 축구도 현미경 보듯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빈틈과 노림수를 찾아야 한다.
특히 프랑스 선수들은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들이다. 그런 만큼 선수간의 약속된 플레이는 물론, 선수 개개인의 스타일과 심지어 세세한 버릇을 미리 꿰차고 있어야 능동적인 대처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일요신문>은 프랑스 대표팀의 최근 평가전에서 나타난 주요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과 그들만의 독특한 버릇을 세밀하게 분석해봤다.
가장 대비해야 할 선수는 역시 전술의 축인 지단이다. 노쇠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긴 하나 넓은 시야, 정확한 패싱, 농익은 경기 운영 능력은 전성기 때 기량 그대로다.
일단 수비에 무게 중심을 두고 빠른 역습으로 경기를 전개할 우리로서는 공격의 시발점인 지단의 봉쇄가 최우선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멕시코, 덴마크,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나타난 지단의 플레이를 유심히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세 경기를 통해 지단의 움직임을 분석해 본 결과, 지단의 플레이에서 일정한 패턴과 동선 및 몇 가지 버릇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활동 영역을 주로 왼쪽으로 삼는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중앙 미드필드 지역에서 왼쪽으로 자리를 이동하면서 동료 수비수로부터 패스를 받는 장면이 오른쪽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았다.
패스를 받고 순간적으로 방향 전환을 해 상대 수비수와 마주보는 자세로 볼을 키핑한 지단은 짧은 패스로 상대 진영을 공략하는 서너 가지 패턴 플레이를 자주 선보였다.
왼쪽 터치라인 쪽으로 공간이 날 경우에는 거의 모두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아비달에게 패스를 연결했으며, 본인이 터치라인 쪽에서 볼을 키핑할 경우에는 중앙 쪽으로 드리블을 한 뒤 전방의 앙리나 트레제게에게 기습적으로 스루 패스를 넣거나 오른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 플레이가 주를 이뤘다.
또한 오른쪽 윙백인 사뇰의 기습적인 대각선 롱패스를 받을 때는 미리 왼쪽 미드필더인 말루다에게 측면 쪽으로 침투해 자신의 패스를 받도록 사인을 보내는 모습도 방송 카메라 앵글에 자주 잡혔다.
한편, 오른쪽 발바닥으로 볼을 키핑하고 왼손으로 등지고 있는 상대를 밀고 있는 경우에는 패스 타이밍이 늦어 대부분 볼을 뺏기는 모습도 나타났다.
지단을 가장 근접거리에서 방어하게 될 김남일과 오른쪽 윙백인 조원희 혹은 송종국이 유념한다면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부분이다.
왼쪽에서 상대의 강한 압박이 있을 경우 지단은 오른쪽으로 자리를 변경했다. 특이한 것은 오른쪽에서 동료로부터 전진 패스를 받고 드리블을 할 때 오른팔을 이용, 사뇰에게는 오버래핑을, 전방 공격수에게도 오른쪽 측면 공간으로 빠져 나가라는 사인을 보낸다는 점. 그러나 사인과는 다르게 지단은 100% 왼쪽으로 방향을 전환해 드리블하거나 중앙 문전 공간으로 침투하는 공격수에게 볼을 연결했다. 수비수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점이다.
골키퍼 바르테스가 상대의 크로스를 차단하고 속공을 전개할 때는 왼쪽 측면으로 공간을 찾아나가는 지단에게 던져둔다는 점도 작은 것이지만 알아두면 요긴하게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코너킥이나 세트피스 상황에서 미리 약속된 것으로 보이는 위치 선정도 주목할 부분. 특히 앙리가 코너킥을 시도할 경우에는 무조건 상대 문전에서 헤딩 경합을 하지 않고 페널티에어리어 바깥에서 볼을 달라고 손을 흔드는 장면이 많았다.
상대의 세트피스 상황 때 지단이 골키퍼 앞쪽에서 홀로 떨어져 수비하는 점은 우리 대표팀이 역이용해야 할 대목이다. 프리킥이나 코너킥 상황 시 1차적으로 공격수들이 킥 반대쪽으로 프랑스 수비진을 끌어낸 뒤 지단 쪽으로 크로스를 올려 공격에 가담한 최진철, 김진규 등과 경합을 시키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공격 패턴이다.
지단의 가장 큰 약점은 역시 체력이다. 세 경기 모두 후반 20분을 넘자 움직임이 둔화됐다. 지단이 볼을 잡았을 때 강한 압박으로 드리블이 많아지도록 하면서 공격 시에도 김남일, 박지성 등 미드필더들이 기민하게 움직여 수비 부담을 계속 늘려줄 필요가 있다.
지단 못지않게 한국 선수들이 경계해야 할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앙리 역시 몇 가지 고정화된 플레이 스타일을 세 차례 평가전에서 볼 수 있었다.
공을 오른발로 트래핑하는 것과 주로 활동하는 왼쪽 측면에서 드리블을 할 때는 무조건 두 번 볼을 터치한 뒤 방향 전환을 하거나 슈팅을 때린다는 점은 이미 노출된 플레이 스타일이다.
왼쪽 측면에서 공간 돌파를 해 상대 수비와 1 대 1 상황을 만든 경우 기습적으로 오른쪽 골포스트 방향을 노리고 볼을 감아 때린다는 점도 우리 수비수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왼발인 말루다가 왼쪽에서 코너킥을 할 경우에는 앙리가 문전에서 측면 쪽으로 내려와 패스를 받은 뒤 곧바로 반대편 골포스트 방향으로 슈팅을 때리는 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움직임이다.
상대 문전 중앙에서의 겹수비 사이 공간으로 빠져나가는 경우에는 조건반사적으로 여지없이 지단의 송곳 패스가 연결되는 장면도 간과해선 안 될 점. 앙리의 스피드가 붙기 전에 우리의 수비수들이 먼저 예상 침투 공간을 선점하는 움직임이 요구된다.
중앙에서 공수를 조율하는 비에라 역시 동료와 미리 약속된 움직임이 자주 나타났다. 미드필더 오른쪽에서 패스를 받은 비에라는 앙리나 트레제게가 순간적으로 상대 문전 중앙에서 수비 1명을 달고 왼쪽으로 빠져 들어갈 때마다 낮고 빠른 킬패스를 선보였다.
오른쪽 수비의 사뇰과는 수시로 ‘눈 맞춤’을 하며 패스를 주고받았는데 대부분 곧바로 전방 공격수 1명에게 연결된 뒤 다시 비에라가 리턴을 받아 재차 다른 공격수에게 연결하는 장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네 명의 수비 라인 중에서는 사뇰의 돌파 저지 능력이 다른 수비수들에 비해 처지는 약점이 드러났다. 특히 순간적으로 몸을 돌리는 스피드가 늦어 빨 빠른 상대의 돌파에 자주 공간을 내줬다. 이영표, 설기현 혹은 박주영의 스피드를 살린 측면 돌파를 노려봄직하다.
또한 상대가 미드필더에서 공격 패턴을 전개할 시에는 프랑스 미드필더인 비에라, 마켈렐레, 말루다가 역삼각형 형태로 빠르게 압박하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부분. 우리 미드필더들의 빠른 볼 처리가 필요하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